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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용중인 나의 가민 엣지 25와 심박 스트랩


가민(Garmin)은 GPS 기반의 사이클링 컴퓨터 시장을 대표하는 미국계 다국적 기업이다. 자전거에 부착하여 속도, 거리, 심박수, 파워, 케이던스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할 수 있는 디바이스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외 GPS 기반의 제품들을 주력으로 한다. 물론 별도의 장치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가벼운 취미 수준에서는 스트라바(Strava)나 엔도몬도(Endomondo) 같은 스마트폰 앱으로도 대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자전거 취미를 붙이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눈이 가는 제품이 바로 가민이다. 가히 자전거 덕후들에겐 필수품이라고 할 정도지만 가격은 결코 만만치 않은데, 아래로는 20만원 정도의 컴팩트형 제품부터 위로는 100만원에 육박하는 제품까지 다양하게 출시된다.


가민 엣지 25 (출처: Garmin 본사 홈페이지)


내가 가민 엣지(Garmin Edge) 25를 구입한 것은 지난 2015년이다. 그 전까지는 아이폰의 스트라바 앱을 켜고 다녔지만, 출발 전에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앱을 키고, GPS를 잡는 일련의 불편함이 싫었고 배터리가 빨리 닳아버리는 문제도 있었다. 가민 엣지 25는 자전거 제품군 중 가장 저렴한 것으로 약 20만원의 저렴한 가격 대신에 가장 기본적인 기능만을 탑재한 컴팩트 버전이다. 이후 나의 자전거 생활은 눈에 띄게 편해졌다. 집을 나서며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연스럽게 가민의 기록이 시작되고, 라이딩을 마치면 간단한 동기화 만으로도 스트라바 업데이트까지 완료가 된다.

가민을 사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심박, 케이던스 등의 기록을 정밀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 가민과 함께 번들 스트랩 심박계를 구매해서 사용해왔다. 운동을 하며 심박을 체크한다는 건 그만큼 나에게 알맞은 강도와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물론 심박 그래프의 변화를 살펴보는 즐거움 또한 대단히 크다. 그런데 사용한지 2년이 조금 안되어 갑자기 심박계 인식이 안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터리가 닳아서 그런 줄 알았지만 새 것으로 교체해도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가민 한국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생각보다 담당자와 연결은 쉬웠다. 하지만 일련번호를 불러주고 제품을 확인을 한 뒤에 들은 대답은 다소 어이없었다. ‘가민 엣지 25는 출시된 지 너무 오래된 제품이고, 이미 단종이 되었기에 보증기간과 관련없이 A/S가 일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황당한 회사가 또 어디 있을까? 한 10년전에 출시된 것도 아니고, 불과 3년도 안된 제품임에도 소비자가 돈을 내서 수리하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혹시 한국 본사만의 문제인가 싶어 대만에 있는 본사에 직접 연락해봐도 같은지 물어봤지만, 대만 본사의 정책자체가 ‘수리 불가’이기 때문에 같은 결과일거라는 대답이었다. 왜 그런 정책을 고수하는지는 한국 담당자도 잘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라이카의 기업정신 (출처: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bullpen2&id=364190)


대놓고 본사의 정책이 그렇다고 하니 더 이상 할말이 없어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다른 제품도 아닌 정밀 전자제품을 파는 회사가 자신들이 제조하고 판매한 제품을 불과 몇 년 만에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순간 불현듯 떠오른 회사가 있었는데 바로 독일의 카메라 기업 라이카(LEICA)다. 예전에 시청했던 라이카의 기업정신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본사 담당자는 무려 80년도 더 된 라이카 수동 카메라의 부품을 본사차원에서 확보해놓고 있다고 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고객의 수리 요청을 응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말하는 담당자의 자부심 같은게 느껴져 인상 깊었다. 

물론 기업의 규모나 역사 면에서 가민과 라이카를 비교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기대하는 건 몇 십년이 지난 전자제품을 고쳐달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당신들의 회사 제품을 구매하여 애착을 가지고 써온 고객이 그 제품을 더 오래 사용하고 싶다는 바람을 원천적으로 봉쇄 해서야 되겠냐는 항의인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 고장난 건 심박 스트랩 뿐이라 심박수 기록만 포기하면 가민 본연의 기능은 계속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심박계도 불과 10번도 안쓰고 고장이 나버린 셈이니 본품의 수명이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마저도 고장이 나게 된다면? 돈이 있어도 수리받을 수 없으니 그냥 버려야한다는, 일종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다. 그때에는 과연 내가 가민을 다시 구매하게 될까? 결코 아닐 것이다. 참 좋아하는 제품과 브랜드에 대해서 한순간에 변심하게 만든 회사 정책에 상당히 깊은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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