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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도가는 권력 뒤에 숨고, 광대는 탈 뒤에 숨고, 칼잡이는 칼 뒤에 숨는다는데, 나는 칼 뒤에 숨는기 싫드라고...' -영화 중 이몽학(차승원 분)

 요즘 시절이 하 수상하다. 연일 뉴스에서는 큼직한 사건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해가며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고, 그 이면에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은 분개하며 쉴새없이 울분을 토해내지만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것만 같다. 답답한 현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그렇게 바라봐야만 하는 힘없는 우리.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어쩌면 먼 조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주 가까이, 매일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 답답한 내 마음을 대신해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칼을 휘두르는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는 29일 개봉에 앞서, 감독과 함께하는 시사회에 다녀왔다.


 
구름을 벗어난 달, 그리고 구르믈 버서난 달


 황산벌, 왕의 남자 이후 세번째 사극으로 대중앞에 찾아온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임진왜란 직전, 민심은 흉흉한데 조정은 동인과 서인으로 갈려 무의미한 탁상공론만을 거듭한다. 이에 이몽학(차승원 분)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무리, 그를 막으려는 맹인검객 황정학(황정민 분)과 견자(백성현 분)가 등장한다. 뿌옇게 끼어 앞을 가리던 구름을 벗어나 세상을 밝게 비추는 달이 되고 싶었던 이몽학. 하지만 누가 달이고 누가 구름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이미 혼란해진 세상. 영화는 내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가 달이고 누가 세상을 진정 생각하는 자인가. 그리고 당신은 그중 누구인가.

재치있는 입담으로 관객들을 웃게 만들어주던 이준익 감독님

 
이준익, 신명나는 한판 놀음을 만들다

 황산벌에서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속 시원히 할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대중을 대신해 이준익 감독은 신명나는 한판 놀음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영화 내내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는 재치있는 배우들의 입담과 연기에 하하하 웃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면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이야기. 영화 속의 세상은 곧 우리들이 사는 이 사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무능력한 왕을 두고 편가르기만 하는 조정 대신들. 어처구니 없는 풍경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관객도 웃고 영화도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많은 생각이 따라온다. 이야기가 조금씩 진행되면서 점점 사람들은 극중 한 캐릭터에 자기 모습을 대입해보게 된다. 그의 몸짓 하나, 휘두르는 칼의 궤적을 따라 울기도 웃기도 하며 주먹을 꽉 쥐게 만든다. 이몽학과 황정학, 그리고 견자. 영화가 끝난 후에도 누가 진정한 달이었는지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준익 감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달인가, 그저 구름인가.

시종일관 산만한 모습으로 관객을 맞이하던 구수한 외모의 황정민씨


황정학, 눈이 멀었지만 세상을 볼 줄 아는 맹인 검객

 극중 황정학(황정민 분)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검객으로 등장한다. 늘 꾀죄죄한 차림에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말투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지만 그는 이몽학과 견줄 수 있는 당대의 검객이기도하다. 그가 내뱉는 촌철살인의 입담과, 시원스런 검술은 답답한 백성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시원스럽게 만들어 준다. 시사회가 끝나고 황정민씨가 고백하기를, 극중 대사의 1/3 이상은 애드립이라는데... 영화 속에 참 많은 액션 씬이 있지만 신기하게도 와이어 액션은 한 장면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액션이 화려하지 않은 것도 절대 아니다. 홍콩 영화처럼 하늘을 날아 다니지 않아도, 장님이라 앞을 볼 수 없어도 단칼에 베어버리는 그의 칼솜씨는 영화의 또다른 재미다. 

여린 외모, 하지만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백성현씨


견자, 세도가의 서자로 태어난 비운의 사내

 굳을 견, 기둥 주. 자기도 이름이 있다고 크게 소리쳐 보지만, 영화 속에서 그는 견자, 개새끼라고 불린다. 아직 상투도 틀지않은 어린 소년은 비록 기생의 자식이기는 해도 아버지를 죽인 이몽학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그리고 맹인검객 황정학을 따라 이몽학을 찾아 나선다. 
 견자를 분한 배우 백성현은 여린 외모를 지닌 풋풋한 배우다. 하지만 모성애를 자극하는 그런 외모 덕분에 극중에서 그의 연기는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다음 작품이 참으로 기대되는 배우다.


 모두 같은 생각으로 백성을 위한다지만 걷는 길이 달랐던 세 사람. 왜 그들은 서로 죽고 죽여야만 했는지, 무엇이 진정 그들이 원한 세상인지. 먼 과거의 이야기를 빌려서 이준익 감독은 2010년의 우리 사회를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빨간 해는 이미 져버린 세상. 희뿌연 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구름을 벗어난 달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 하지만 누가 구름이고 누가 달인지 알 수 없는 어지러운 속에서, 진정 해는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해는 지고 달은 떠오르는데, 구름에 가린 저 달이 몽학이냐, 구름이 몽학이냐' -영화 중 황정학(황정민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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