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미술관에서의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서둘러 시나가와를 빠져 나왔다. 내가 담당하는 다른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스카이트리 답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전시 관련 일정만으로 잡힌 출장이었지만, 내가 도쿄에 있는 시간에 맞추어 스카이트리 답사 일정이 추가된 것이다. 특히나 이날은 두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4박5일 일정 중 가장 정신없이 뛰어다닌 날로 기억된다. 도쿄 스카이트리는 지난 2012년 완공된 높이 634m 짜리 거대한 방송탑이다. 스카이트리가 개장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도쿄타워가 333m이니 무려 300m나 더 높은 셈이다. 도쿄타워와 동일하게 방송전파 송출용으로 세워져 실제로도 도쿄타워가 감당하지 못하는 음영지역에 전파를 송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외로운 출장지에서의 한줄기 희망과도 같은 저녁 약속이 생겼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까지 내리 동창인 친구와 신주쿠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녀는 꽤 오래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지금은 도쿄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부터 출발 전부터 약속해놓은 일정이었지만 미술관에서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확답을 못하던 차였다. 다행히 실력 좋은 설치 엔지니어들을 만난 덕분에 무사히 일을 마치고 예정대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도리어 약속시간 까지 여유가 조금 생겨버린 상황.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시부야부터 신주쿠까지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하라미술관에서 제일 가까운 역인 기타시나가와에서 시나가와까지 한 정거장, 다시 JR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타 다섯 정거장만 더 가면 시부야 ..
포르투(Porto)는 포르투갈 북부의 항구도시다. 리스본 다음가는 제 2의 도시지만 어쩐지 한국 웹상에서는 포르투보다 FC포르투가 상위에 검색된다. 실제로 인구는 약 24만명 정도로 대한민국 수도권 인구밀도와 규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제 2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들릴 정도의 규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는 과거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무역의 중심지이자 포르투갈의 기원이 된 역사적인 도시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세계 각국의 수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을 찾고있다. 비몽사몽 아픈몸을 이끌고 간밤에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 힘겨운 여정이었다. 미리 앱으로 검색해놓은 값싼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왔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문은 닫혀있었고 얼떨결에 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싸구려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
퇴근길에 외투를 벗어 손에 들었다. 정말 봄이 오려나 보다. 일부러 몇 정거장 전에 버스를 내려 밤공기를 쐬며 걸었다. 간만에 여유가 생기니 차곡차곡 밀려있는 여행기들부터 떠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교환학생 시절의 유럽 여행기는 리스본의 차디찬 겨울에 머물러 있다. 마침 그 무렵 아팠던 터라 즐거운 기억도 딱히 없었다. 써지지도 않는 글 때문에 스트레스받기엔 아까운 밤이다. 작년 추석, 그러니깐 9월 초 날씨가 딱 지금 같았다. 기분 좋을 만큼 시원한 바람과 적당한 햇빛. 자전거를 타기엔 더없이 완벽한 조건이다. 물론 그 좋은 계절을 그냥 흘려보낼 리 없는 우리였다. Y와 난 추석 명절을 지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대로 경부선 하행 기차에 올랐다. 연휴를 이용해 1박 2일로 짧게 다녀오는 라..
크리스마스, 스키장, 쾰른여행 그리고 방 한구석에 쌓여있는 빈 맥주병들. 뒤셀도르프에서의 꿈같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12월 29일 베를린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사는 것'과 '여행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교통비가 아닐까. 유레일 패스가 있으면 또 모를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의 기차 탑승은 늘 예상치 못한 초과 지출을 불러온다. 더군다나 뒤셀도르프에서 베를린까지는 거리가 꽤 되는지라 걱정을 좀 했었다. 다행히 파울이 찾아낸 기가막힌(?) 대안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싼 가격으로 기차를 타고 베를린까지 갈 수 있었다. 오전 11 54분, 우린 뒤셀도르프 Hbf에서 완행열차에 올랐다. 베를린 도착 예정 시간은 무려 오후 8시. Düsseldorf Hbf -> Minden(Westf) -> Hann..
건축학도인 내가 여행을 한다고 하면 흔히들 '답사'를 위한게 아닐까 하고 으레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오히려 내 여행은 그 반대다. 사실 '답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여행'에서 만큼은 그런 강박관념을 버리고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유유자적 유랑하는걸 즐기는 편이다. 물론 인도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답사'할 거리가 널렸다. 꼬르뷔제가 설계한 계획도시 찬디가르나, 2학년때 과제로 만들었던 쇼단하우스 같은 건물들 외에도 참 많다. 하지만 내가 진짜 보고싶은건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 자체, 가장 낮은 곳에서 눈높이를 맞추고 바라보는 그들의 삶 그 뿐이었다. 바라나시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내가 보고싶었던 인도와 가장 흡사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눈앞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