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의 강추위가 연일 계속되던 한국의 2월. 두툼한 점퍼와 목도리를 풀어 헤치고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아프리카에서의 여정도 이제 마지막 몇 시간만을 남기고 있다. 아직 비행기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지만 천천히 짐을 챙겨 케냐에서 만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하며 시간을 보냈다. 갑작스럽게 바뀐 날씨에 적응을 못하고 잠 못 이루던 잔지바르에서의 첫 날 밤, 비포장 도로에서 덜컹거리며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먼지를 뒤집어 쓰던 기억, 난생 처음 맛보는 악어 고기로 배를 두둑히 채웠던 마지막 저녁식사. 처음엔 너무나 불편하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모든 일이 어느새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있었다. 공짜 항공권이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계획조차 하지 않았을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그래서 ..
'커피는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과 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키스 처럼 달콤하다' - 탈레랑 그는 짧은 한 문장으로 커피를 묘사했다. 티스푼 네 개 분량의 원두와 한 잔의 물이 만들어 내는 마법, 커피. 이 악마의 음료는 어느새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탈레랑의 묘사 처럼 커피 한 잔에는 수많은 맛과 향이 담겨있다. 처음엔 혀끝이 찌릿하도록 쓰다가도 이내 새콤한 향이 입안을 맴돌다가, 목구멍을 타고 흐른 뒤에는 달콤한 뒷맛이 여운처럼 남는게 바로 커피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기쁨, 슬픔, 고통, 환희, 모든 감정이 뒤섞여 만들어 내는 인생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달콤한 커피향은 추억을 만드는 묘약이다. 그래서 또한 여행하며 마셨던 커피의 맛은 쉽게 잊혀지질 않는다. 하늘빛이..
'아이 원 잇 썸 스페셜 미트, 라잌 어 사파리 애니멀!' 숙소에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사파리 동물들을 먹고 싶다는 나를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 부터 케냐에 가면 꼭 신기한 고기들을 먹어보겠노라 다짐했던 터라 다른 메뉴들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 게다가 국경을 넘어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아무것도 못 먹어서 그런지 코끼리 한마리도 통째로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스페셜 미트'를 염소 고기라고 알아 들었는지 자꾸 이상한 레스토랑을 알려주길래, 어제 사파리에서 만났던 동물들 이름을 떠올려가며 다시 천천히 설명을 했다. 코끼리, 타조, 악어, 사자... 나는 이런걸 먹어보고 싶다구! 한참을 더 설명한 끝에 드디어 주인장을 이해 시킬 수 있었다. '카니보..
뜨거운 증기와 강한 압력으로 추출하는 커피, 에스프레소. 사람들이 흔히 즐겨 마시는 커피 베리에이션 대부분의 베이스가 되는 에스프레소는 어쩌면 우리가 아는 커피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인공적인 힘이 아닌 자연의 힘, 중력에 의해 천천히 시간을 두고 내려지는 핸드드립 커피의 그윽하고도 깊은 향은 그래서 더 그립고 아련하다. 세계적인 커피 원두 생산지인 케냐의 원두는 생두의 크기에 따라 AA, A, B로 구분되어진다. 스스로 커피를 즐긴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식도 별로 없고 혀끝은 무뎌져 맛의 차이를 잘 느끼지도 못하는 나. 좋아하는 핸드 드립 커피보다는 인스턴트를 마시는 일이 더 많긴 해도, 언젠가 꼭 한번 'KENYA AA' 원두 커피를 본 고장에서 핸드 드립으로 마셔보고 싶다는 낭만적인 꿈이 있었다. 어..
잠보! 맘보! 하쿠나마타타! 언제 어디서 마주치더라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과장된 몸짓으로 나를 반가히 맞이해주던 그들. 적도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그들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 모든게 그립다. 짧은 일정이라 떠나기도 전에 아쉬움이 먼저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여운이 더 길었던 아프리카의 기억. 그 짧지만 뜨거웠던 10일간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려 한다. 여행하며 사진찍기 처음으로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떠나는 여행이었다. 나보다 10년은 먼저 태어난 오래된 수동 카메라의 필름을 끼우고 첫 배낭여행길에 나섰을 때에는 사진의 '사'자도 모르는 말 그대로 애송이었던것 같다. 하루하루 필름을 새로 갈아끼우고 라벨을 붙여 정리하면서도 부담같은건 전혀 없었으니깐. 렌즈교환식 카메라라고는 하지만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