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의 강추위가 연일 계속되던 한국의 2월. 두툼한 점퍼와 목도리를 풀어 헤치고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아프리카에서의 여정도 이제 마지막 몇 시간만을 남기고 있다. 아직 비행기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지만 천천히 짐을 챙겨 케냐에서 만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하며 시간을 보냈다. 갑작스럽게 바뀐 날씨에 적응을 못하고 잠 못 이루던 잔지바르에서의 첫 날 밤, 비포장 도로에서 덜컹거리며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먼지를 뒤집어 쓰던 기억, 난생 처음 맛보는 악어 고기로 배를 두둑히 채웠던 마지막 저녁식사. 처음엔 너무나 불편하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모든 일이 어느새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있었다. 공짜 항공권이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계획조차 하지 않았을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그래서 ..
답답한 지하철 보다는 시원스런 기차가 더 좋고, 제 갈길로만 가는 기차보다는 어디로든 달릴 수 있는 버스가 그저 좋았다. 서울에서 가장 혼잡하다는 2호선 신도림역. 매일 아침 그곳을 지나며 짜증이 나다가도 이내 터널을 빠져나와 신나게 고가위를 달리기 시작하면 창 밖으로 사람 구경하는 재미에 다시 기운이 나곤 했다.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달리는 이 길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또 어떤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질 지. 한 명, 또 한 명 일일히 눈을 마주쳐가며 넋을 잃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면 멀게만 느껴지던 목적지도 한 달음에 닿곤 한다. 그래서 였을까. 다르에스살람에서 아루샤까지는 버스로 6시간이나 걸린다는 말을 듣고 한숨을 먼저 푹 내쉬는 후배녀석을 앞에 두고 괜히 혼자 또 설레..
간밤에 내내 잠을 설쳤다. 찐득찐득한 땀냄새가 진하게 베어있는 침대커버는 몸이 닿을 때 마다 찰싹 달라붙어 따라 올라오고, 침대를 통째로 감싸는 모기장은 어디가 뚫려있는건지 당최 제 기능을 못한다. 윙윙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손을 휘젓다 보니 어느새 창밖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아직 전날의 피로가 풀릴리 만무하지만 한번 떠진 눈은 다시 감길 생각을 안한다. 대충 고양이 세수로 눈꼽을 떼고는 조금 이른 시간 밖으로 나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깜깜하지만 15달러인 숙소와 가격이 두배긴 해도 선풍기가 돌아가는 숙소, 그래도 첫날이니 더워서 잠을 못자는 일은 없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비싼 돈을 주고 짐을 풀었건만 밤새도록 돌아가는 발전기 소리때문에 선풍기가 돌고있는지 내가 돌고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