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섬진강 종주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내 낡은 자전거 종주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는 벌써 4년도 전에 배알도 수변공원에서 찍은 도장 이후 내내 덮혀 있었다. 돌아오는 현충일 날 자전거를 타자고 먼저 청해온 것 Y였다. 그는 내 오랜 친구이자 벌써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자전거로 함께 달린 여행 단짝이다. 서울 근교는 이제 질렸고, 차를 가지고 산악 코스를 찾아가기엔 살짝 부담이라 고민하던 찰나 잊고있던 오천 자전거길이 떠올랐다. 그날로 우린 고속버스 티켓을 예매했다. 출발 하기도 전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려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천 자전거길은 충청북도 괴산에서 출발하여 다섯 개의 작은 천을 따라 증평, 청주를 거쳐 세종시에서 끝이 나는 약 100여 km의 길이다. 정식 종주루트라기 보다는 국토종주나 4..
금강의 둘째 날 하늘 역시 맑았다. 아침나절엔 바람도 제법 선선하게 불어오는 것이 자전거 타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었던 부여에서 금강 하굿둑이 있는 군산까지는 아직도 70km 정도 남아있다. 하지만 바람도 없고 길도 좋아 큰 무리 없이 예정대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운 터라 아침은 가볍게 먹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커피를 샀다. 학생 때는 커피를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부터 확실히 늘었다. 평소엔 아주 연하게 내린 원두커피를 여러 번 푸짐하게 먹는 걸 좋아하지만 길 위에서만큼은 달달하고 걸쭉한 게 끌린다. 부소산성 근처에 숙소에서부터 남쪽으로 부여 시내를 가로질러 곧바로 금강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차도 ..
퇴근길에 외투를 벗어 손에 들었다. 정말 봄이 오려나 보다. 일부러 몇 정거장 전에 버스를 내려 밤공기를 쐬며 걸었다. 간만에 여유가 생기니 차곡차곡 밀려있는 여행기들부터 떠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교환학생 시절의 유럽 여행기는 리스본의 차디찬 겨울에 머물러 있다. 마침 그 무렵 아팠던 터라 즐거운 기억도 딱히 없었다. 써지지도 않는 글 때문에 스트레스받기엔 아까운 밤이다. 작년 추석, 그러니깐 9월 초 날씨가 딱 지금 같았다. 기분 좋을 만큼 시원한 바람과 적당한 햇빛. 자전거를 타기엔 더없이 완벽한 조건이다. 물론 그 좋은 계절을 그냥 흘려보낼 리 없는 우리였다. Y와 난 추석 명절을 지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대로 경부선 하행 기차에 올랐다. 연휴를 이용해 1박 2일로 짧게 다녀오는 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