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증기와 강한 압력으로 추출하는 커피, 에스프레소. 사람들이 흔히 즐겨 마시는 커피 베리에이션 대부분의 베이스가 되는 에스프레소는 어쩌면 우리가 아는 커피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인공적인 힘이 아닌 자연의 힘, 중력에 의해 천천히 시간을 두고 내려지는 핸드드립 커피의 그윽하고도 깊은 향은 그래서 더 그립고 아련하다. 세계적인 커피 원두 생산지인 케냐의 원두는 생두의 크기에 따라 AA, A, B로 구분되어진다. 스스로 커피를 즐긴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식도 별로 없고 혀끝은 무뎌져 맛의 차이를 잘 느끼지도 못하는 나. 좋아하는 핸드 드립 커피보다는 인스턴트를 마시는 일이 더 많긴 해도, 언젠가 꼭 한번 'KENYA AA' 원두 커피를 본 고장에서 핸드 드립으로 마셔보고 싶다는 낭만적인 꿈이 있었다. 어..
간밤에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은 마냐라 호수.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세렝게티 사파리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그래도 캠프사이트에서 두 밤을 자고 나니 처음에는 불편하게만 느껴지던 샤워실도, 등이 뻐근하도록 딱딱했던 텐트 바닥도 이제는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셀 수 없이 많은 동물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해볼 여유도 없이 어느새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널부러진 침낭을 말끔히 개고, 차곡차곡 배낭에 짐을 다시 챙겨 넣어보는데 덤불 속에서 벌레 한마리가 튀어나와 내 손등위에 앉았다. 자연 속에서 그들과 함께 숨쉬며 함께했던 시간들을 아쉬워 하듯 좀처럼 내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는다. 다른 손으로 벌레를 들어서 원래 있었던 풀숲에 살며시 놓아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폴짝..
유난히 골목마다 이슬람 사원이 많던 아루샤의 아침. 싸구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모를 노래와 종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고 나를 깨운다. 조금씩 밖은 밝아오지만 왠지 몸이 침대에 찰싹 달라붙어서 꼼짝도 하질 않는다. 어제의 여독이 아직 덜 풀린걸까. 세렝게티 사파리를 떠나면 두 밤은 텐트에서 자야만 한다. 샤워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기는 또 얼마나 많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벽을 등지고 돌아 누웠다. 머리맡에는 지난 밤에 보던 론니 플래닛이 펼쳐진 채로 놓여져 있다. 그래,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만나고 싶었던 세렝게티를 만나는 날이구나. 바로 오늘이구나.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샤워를 미리 해두기 위해 겨우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수건을 챙겨 화장실로 향한다. 이곳에..
답답한 지하철 보다는 시원스런 기차가 더 좋고, 제 갈길로만 가는 기차보다는 어디로든 달릴 수 있는 버스가 그저 좋았다. 서울에서 가장 혼잡하다는 2호선 신도림역. 매일 아침 그곳을 지나며 짜증이 나다가도 이내 터널을 빠져나와 신나게 고가위를 달리기 시작하면 창 밖으로 사람 구경하는 재미에 다시 기운이 나곤 했다.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달리는 이 길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또 어떤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질 지. 한 명, 또 한 명 일일히 눈을 마주쳐가며 넋을 잃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면 멀게만 느껴지던 목적지도 한 달음에 닿곤 한다. 그래서 였을까. 다르에스살람에서 아루샤까지는 버스로 6시간이나 걸린다는 말을 듣고 한숨을 먼저 푹 내쉬는 후배녀석을 앞에 두고 괜히 혼자 또 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