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희뿌연 연무(煙霧) 뿐이었다. 온데 사방이 구름으로 둘러싸인 누볼라우 산장의 아침 풍경은 마치 내가 하늘 위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어로 구름(Nuvolau)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따뜻한 물은커녕 샤워실도 변변히 없고, 전기 콘센트라도 한번 쓸라치면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한 곳이지만 지난밤 이곳에서 나는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라(Mara)와 소피아(Sofia)와 헤어진 뒤, 이 산장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호주인 부부와 친해진 까닭이었다. 선생님으로 일하며 방학 때마다 전 세계를 함께 여행한다는 둘은 저녁식사 내내 나와 함께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언젠가 호주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또 연락처..
리용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마르세유까지 이어지는 A7번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대로 서너 시간 정도 계속 달리면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 도착한다. 그러고 보니 외국에서 운전하는 게 벌써 인도,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네 번째다. 자동차가 네 바퀴로 굴러가는 이치야 만국 공통이지만 그럼에도 나라마다 특유의 운전문화라는 게 있어 매번 긴장하곤 한다. 괜스레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려오는 까닭이다. 어느새 리용에서 꽤 멀어지고 이정표에 아비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즈음부터 운전이 한결 편안해졌다. 프랑스의 운전자들은 카메라가 없는 곳에선 120, 130킬로미터까지 시원스럽게 내 달린다. 나 역시 추월차로를 넘나들며 지중해를 향해 엑셀을 힘껏 밟았다. 초반 한 두 개 정도 못 보고 지나친 과속카메라 말고는 군더더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