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출장지에서의 한 끼 식사란 언제나 ‘주린 배를 채우는 수단’ 이상의 의미였다. 한 그릇의 음식은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체력의 원천이자,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위로가 되기도 하며, 새로운 정보와 문화를 습득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먼길을 떠나기 전, 일에 대한 설렘만큼이나 먹게 될 음식에 대한 기대감 또한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을게다. 지치지 않는 체력은 출장에서 최고의 덕목이다. 특히나 지난 밀라노에서 처럼 현장 업무가 수반되는 경우엔 더욱 그랬다. 예정에 없었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필요한 건 의외로 빠른 판단력보다는 체력이었다. 그러니 출장 중에는 입맛이 없어도 삼시세끼 일부러 잘 챙겨 먹어야만 한다. 잘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환경에 익숙해지면 일의 능률도..
모든 예술은 대중 앞에 내어짐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화려함의 이면엔 언제나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수많은 스태프들이 있다. 크레딧에 이름 한 줄 나올까 조마조마할지언정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그들의 노고를 어느 누가 하찮다고 여길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언제나 전시장에선 하얀 벽 이전의 모습이 더 궁금하고, 공연장에선 까만 장막 뒤편의 일들에 더 관심이 많은 나였다. God Knows.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와 인터뷰를 위해 뉴욕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그가 들려준 이야기다. '설마 이런 사소한 것까지 누가 알아볼까요?’라는 직원의 우문(愚問)에 거장 건축가는 '신은 알고 계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서 스태프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작은 것 하나 포기 않고 끝까지 물..
거리에는 아직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늘은 두 달 전 인천 앞바다에서 배로 부쳐진 전시물품들이 아침 일찍 미술관으로 반입되는 날이다. 대부분이 원목으로 만든 가구인지라 혹여나 작렬하는 적도의 태양 아래 틀어지거나 휘어지진 않았을까 내심 걱정하던 차였다. 아무래도 컨테이너에서 내리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봐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서둘러 호텔 문을 나섰다. 밀라노 도심 서쪽에 위치한 '트리엔날레 지구'는 거대한 녹지대를 중심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스포르체스코 성(Castello Sforzesco)과 다양한 미술관 및 박물관이 산재하는 곳이다. 내가 담당하는 전시가 열리게 될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박물관(Triennale di Milano)'은 그중 단연..
‘다시 유럽에 올 수 있을까?’ 스무 살, 유럽으로의 첫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모은 푼돈에 부모님의 지원금까지 보태어 무리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물론 여행지로서의 유럽은 충분히 멋지고 좋은 곳이었지만 그만큼 과분했다. 그곳에서 한 달간 수없이 마주했던 감동들은 마치 손 틈새로 새어나가는 모래알과 같아 다시는 쥐기 힘들 것만 같았다. 인생이 충분히 길다는걸 채 다 알지 못했던 그때, 나는 유럽에 다시는 오지 못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후, 나는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다시 유럽 땅을 밟았다. 생각보다 빠른 재회였다. 하지만 아직 학생이기에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 여기고 매 순간을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열정적으로 살았다. 무..
브라보. 설 연휴를 틈타 1박 2일간의 영산강 종주를 무사히 마쳤다. 거리도 그럭저럭 괜찮고 일정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크고 작은 일들이 겹쳐 힘들고도 처량했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자가 정비능력의 향상과 함께 겸손함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면 그냥저냥 흘려보냈을 연휴를 알차게 즐겼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여행하며 틈틈이 맛보는 산해진미는 덤이다. 순서상으로는 이미 작년에 마친 북한강, 금강 종주에 이어 '4대강 종주' 카테고리의 맨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매번 오래된 여행기만 끄집어내다간 생생한 추억마저 잊혀질까 해서 영산강 부터 적어보려 한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오늘은 무려 5일간의 꿀맛 같은 설연휴 후의 첫 월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