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하는 일은 곧 땅에 대한 존중과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설계 작업은 으레 그 땅을 직접 찾아가 두 발로 걸으며, 두 눈으로 면밀하게 살피는 일로 시작된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와 연필을 쥐기 전부터 건축가의 사유라는 것이 이미 시작되는 까닭이다. 내가 건축에 매력을 느끼는 건 자연과 인간이 서로 밀고 당기며 균형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지경계라는 가상의 선을 땅 위에서 찾아내고 이를 기준으로 집의 향과 배치를 결정하는 일부터가 당장 그렇다. 더욱이 본격적인 설계가 시작되면 중력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 자연의 힘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여야 하며, 건물이 높아지면 질수록 바람과도 싸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사가 시작되면 더욱 힘겨운 과정의 연속이다. 땅을 파고, 메우고, 벽을 세우고, 붙이고..
별안간 닭 한 마리가 길게 울었다. 어슴푸레 밝아오던 새벽의 고요함도 덩달아 깨져버렸다. 다시 누워봐도 이미 잠은 저만치 달아나 버렸고 눈은 말똥하다. 별수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옆자리의 아내는 아직 곤히 잠들어있다. 에라 모르겠다. 작은 쪽지 한 장을 남겨놓고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 밖으로 나섰다. '아침 식사 전까진 돌아오겠어요' 평소 여행지에서 좀처럼 일찍 일어나는 법이 없는 편이지만 아침산책이라는 걸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그래도 목적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한 곳을 정했다. '생폴 드 모졸 수도원', 사람들에게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입원했던 '생 레미의 정신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정식으로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사전 답사 겸 미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 국내선 환승 터미널에 막 들어섰다. 감각적인 노출 콘크리트 벽체와 유리로 된 천장이 참 아름다웠지만 뜨거운 7월의 햇볕 때문에 어쩐지 후텁지근한 기분이다. 아내는 화장실에 들러 헛구역질을 하고 나왔다. 전날 밤을 꼴딱 새우고 열 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파리에서 아내의 몸상태는 이미 넉다운이었다. 이번 여행의 출발지인 리용에는 아직 도착하지도 못했다. 걱정스러운 마음 가운데 얼마 남지 않은 국내선 환승 시간을 확인하고는 이내 아내의 손을 끌어당겼다. 늦지 않으려면 지금 뛰어야 한다. 이게 다 라 투레트 때문이다. 애초에 이번 휴가를 계획한 이유부터가 라 투레트를 보기 위해서였고, 긴 비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국내선을 한 시간이나 더 타야 했던 것도 라 투레트가 파리보다는 리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