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브라질에서 단 하나의 음식만을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을 택해야 할까? 나는 주저 없이 슈하스코를 먹으리라. 이과수 폭포의 웅장한 물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황홀하고 브라질 건축의 아버지 오스카 니마이어 선생의 작품을 눈으로 감상하는 것도 멋지지만 나에게 있어서 맛보다 강렬한 기억은 없다. 고기, 고기가 먹고 싶었다. 출국 일정을 앞두고 이런저런 준비로 한창 바쁘던 어느 날, 옆자리에 앉은 신입사원이 슬쩍 쪽지를 내밀었다. 상파울루에서 살다온 친구가 추천해준 맛집이라고 했다. 총 세 곳의 레스토랑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한식집 한곳과 슈하스카리아 두 곳이었다. 그 친구는 그중 한식집을 일 순위로 추천했다지만 짧은 출장 일정에 한국음식을 먹기엔 좀 아쉬울 것 같아 먼저 제쳐두었다. 남은 두 곳의 슈하스카리아 ..
이번 브라질 출장길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이전 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봄 일본으로의 출장이 모형을 들고 가 설치하는 나름 단순한 작업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엔 어찌 됐든 간에 '집'을 '지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이역만리 브라질까지 와 대나무로 집을 짓게 된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풋-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이번 출장은 그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하나같이 예측불허의 연속이었다. '가로 1.8m, 세로 3m, 높이 6.5m의 2개 층 규모의 대나무 건축물' 이것이 이번의 내가 완수해야 하는 '출장의 목적'이다. 이 요상하게 생긴 건축물은 이미 서울과 도쿄에서 전시되었던 'DMZ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계된 것으로 당시 모형과 영상으로 선보..
너무나 아는 것이 없을 때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진 단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허구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히나 그 대상이 단순한 사물이 아닌 도시, 문화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대상인 경우 사실은 더욱더 왜곡되고 실체와 멀어진다. 지금 나는, 출장을 떠나기 전 막연하게 가졌던 브라질에 대한 선입견에 대해 반성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아프리카를 처음 여행하기 전에도 비슷한 실수를 범했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초원, 야생동물, 소수민족 따위의 단편적인 이미지만으로 지구 상에서 가장 거대한 대륙을 일반화해버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한복판에서 번쩍이는 고층 빌딩 숲을 마주했을 땐 스스로가 부끄러워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첫인상은 '도시' 그 자체였다. 인구..
한국에서부터 지구 정반대 편 브라질까지 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미국을 경유하거나, 유럽 주요 도시를 경유하거나, 중동을 경유하는 방법. 지난 2016년에 유일한 직항 편이 폐지된 이후론 환승 편을 이용하는 방법만 남아있다. 그중, 미국을 경유하는 방법은 거리는 짧아도 ESTA를 발급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유럽 주요 도시를 거치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아부다비의 에티하드 항공, 도하의 카타르 항공, 또는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그렇게 브라질 상파울루로의 출장이 확정되었다. 오고 가는데만 꼬박 사흘은 잡아야 하니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여비를 예상하는 것도 이래저래 다른 출장 때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것 같다. 게다가 난생처음으로..
나에게 하루 반나절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쌀쌀했던 4월의 도쿄 날씨는 자꾸만 몸을 웅크리게 만들었다. 출장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자유시간이다. 일정과 일정 사이에 생기는 자투리들을 잘 모으면 나름의 짧은 답사를 다녀오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본연의 업무에는 지장이 없는 선에서 말이다. 다만 그런 시간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뭔가를 미리 계획 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마음속에 미리 후보지를 두어 군데 점 찍어 두는 정도라면 모를까. 이날은 오전 4시에 미술관에서 열리는 컨퍼런스 참석을 제외하고는 오전 내내 일정이 비었다. 전시와 관련해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이 생길 것을 대비해 여유삼아 남겨놓은 시간이었는데 다행히도 일이 잘 끝나 남는 ..
하라미술관에서의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서둘러 시나가와를 빠져 나왔다. 내가 담당하는 다른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스카이트리 답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전시 관련 일정만으로 잡힌 출장이었지만, 내가 도쿄에 있는 시간에 맞추어 스카이트리 답사 일정이 추가된 것이다. 특히나 이날은 두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4박5일 일정 중 가장 정신없이 뛰어다닌 날로 기억된다. 도쿄 스카이트리는 지난 2012년 완공된 높이 634m 짜리 거대한 방송탑이다. 스카이트리가 개장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도쿄타워가 333m이니 무려 300m나 더 높은 셈이다. 도쿄타워와 동일하게 방송전파 송출용으로 세워져 실제로도 도쿄타워가 감당하지 못하는 음영지역에 전파를 송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외로운 출장지에서의 한줄기 희망과도 같은 저녁 약속이 생겼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까지 내리 동창인 친구와 신주쿠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녀는 꽤 오래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지금은 도쿄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부터 출발 전부터 약속해놓은 일정이었지만 미술관에서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확답을 못하던 차였다. 다행히 실력 좋은 설치 엔지니어들을 만난 덕분에 무사히 일을 마치고 예정대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도리어 약속시간 까지 여유가 조금 생겨버린 상황.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시부야부터 신주쿠까지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하라미술관에서 제일 가까운 역인 기타시나가와에서 시나가와까지 한 정거장, 다시 JR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타 다섯 정거장만 더 가면 시부야 ..
다행히도 간밤에 모형에는 별 일 없었다. 나 역시 그 옆에서 곤히 단잠을 잤다. 오늘의 첫 일정은 미술관으로 모형을 운반하는 것인데 개관 시간이 열시인 관계로 아침에 여유가 조금 생겼다. 졸린 눈을 비비고 내려와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앙증맞은 모양은 물론 색깔마저 아기자기한 일본식 조식을 한 접시 가득 담았다. 미소장국과 밥을 기본으로 우메보시(매실 장아찌), 츠케모노(절인 채소)까지 곁들인 전형적인 일본 가정식이다. 아무래도 일본 회사원들이 출장으로 많이 오는 비지니스 호텔이다 보니 아메리칸 식 보다는 일본식을 택해 타지에서도 '집밥' 느낌으로 편안하게 해주려는 배려 같았다. 물론 나 같은 외국인 손님게에 있어서 만큼은 일본으로 온 출장의 기분을 한껏 더 살려주는 좋은 한 끼 였지만 말이다. 가볍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