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고사에서의 마지막날 아침. 거리는 간밤에 내린 비로 촉촉히 젖어 있었다. 이날은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그냥 점심을 먹기 전까지 가볍게 못가본 여기저기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지난밤 따빠스 투어의 여파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11시가 조금 넘어 호스텔을 나왔다. 18유로라는 거금(사실 여행자 숙소치고는 상당히 싼 편이다, 호스텔이니깐)을 줬지만 그만큼 푹 자고나오지 못한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아침식사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거리에 나오자 마자부터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일단은 바실리카가 있는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실리카에 아직 못가본 우린이를 따라 한바퀴 휙 둘러보고 나와서 곧바로 맞은편의 Foro로 들어갔다. 어젯밤 호세, 알베르또와 함께 광장을 걸으며 로마 유적인 원형광장을 보고나 F..
호스텔에서 나와 호세(José)를 만나러 가는 길. 둘 다 호세를 못 본지 한 달도 넘게 되어 한껏 들떠 있었다. 잠시 호세라는 친구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마드리드공과대학교(UPM)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친구인데 작년에 일 년간 한국의 우리학교로 교환학생을 와 있었던 아이다. 지금은 반대로 나랑 우린이가 마드리드 호세네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상황. 마드리드에서는 우리집이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어찌나 바쁜지 생각보다 자주 얼굴을 못보던 차에, 호세의 고향인 사라고사에서 함께 만날 기회가 온 셈이다. 호세랑 만나기로 한 장소는 구시가지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나와서 있는 '아라곤 광장(Plaza Aragon)'이다. 호스텔이 구시가지 북서쪽에 있는 까닭에 아까 걸었던 알폰소 1세 거리,..
사라고사 바이크폴로 대회에서 잠시 빠져나와 에스빠냐 광장(Plaza España)로 향했다. 어느덧 시간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무렵. 미리 사라고사에 도착해있던 우린이와 형윤이를 만나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도 한 장 없이 처음 와보는 도시에서 길을 찾아가려니 막상 조금 겁이 났다. 하지만 사라고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고 아담한 도시였다. 한 두어번 물어 방향을 잡자 금새 에스빠냐 광장에 도착했다. 에스빠냐 광장은 사라고사 구시가지 남쪽에서 가장 번화한 곳. 하지만 내가 찾아갔을땐 트램 공사때문에 거리가 상당히 복잡했다. Alberto와 Jose에게 나중에 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정확히 어디까지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래 사라고사에 있던 트램을 확장, 보수 ..
스페인에 온 이후 처음으로 1박 이상 일정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정확히는 2박3일. 어느새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정이 들어버린 방을 떠나 여행을 떠나려니 정말 이제는 여기가 '내 집'이구나 하는게 새삼 느껴졌다. 원래 사라고사에 가게 된건 단순히 여행을 목적으로 한게 아니었다. 지난주 주말은 '사라고사 바이크 폴로팀' 주최로 열리는 '사라고사 바이크 폴로 대회'가 있는 날이었고, 우리 '마드리드 바이크 폴로팀'은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강도높은 트레이닝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에 날이 다가왔다. 키도 조그만 동양인 꼬마인 내가 멀리 스페인에서 '바이크 폴로'라는 인디씬에 몸을 담고 있는 지금의 모습도 아직 잘 실감이 안나지만, 팀원들과 함께 멀리 사라고사까지 가서 대회에 참가하..
매년 10월 3일은 '세계 주거의 날'이다. 아니, 그렇다고 한다. 사실 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입장에서도 이런 날이 있었다는걸 잘 모르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매년 이 맘때쯤 되면 '건축주간'이라는게 있었던 것도 같다. 특별한 뭔가가 있었던건 아니고 그저 설계수업이 한 주 쉬어가는 날 정도의 기억이랄까(어쩌면 뭔가가 있었는데 내가 무관심해서 몰랐던 것일수도 있다, 만약 그런거라면 반성해야 할 듯...). 어쨌거나 이 곳 스페인에서 만큼은 '세계 주거의 날'에 대한 존재감이 확실하다. 벌써 한달도 더 된 이야기지만 건축학도의 눈에는 상당히 인상깊었던 한 주 였기에 소개해볼까 한다. 건축주간(Semana de la Arquitectura) 한국에서의 어렴풋한 기억과 비슷하게 이 곳 마드리드에서..
각 나라, 혹은 도시 마다 한 번은 꼭 경험해봐야 할것같은 뭔가가 하나씩은 다 있다. 설령 별로 취미가 없는 분야라 할 지라도 일종의 통과 의례, 혹은 그 곳을 다녀왔다는 발도장 같은 거랄까. 예를 들면 런던 피카딜리의 오페라나 라스베가스의 카지노, 인도의 사막 투어, 아프리카의 사파리 같은 뭐 그런 것들. 그렇다면 스페인은? 바로 투우와 축구다. 투우는 이미 시즌을 놓쳐 버렸다. 5년전 유럽여행을 하면서도 바르셀로나 투우장이 공사중인 바람에 못보고 지나쳐야만 했는데 이번에도 또 못보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하지만 가격도 비쌀 뿐더러 보고온 사람들이 다들 별로라는 소리를 하길래 흥미도 뚝 떨어져 버렸다. 딱히 아쉬움은 없다. 나중에라도 혹시 스페인을 다시 오게 되면 그때 볼까나. 솔직히 말해서..
지난 10월 23일은 나의 스물 세 번째 생일이자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맞게된 첫 생일이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때는 생일이라는게 그저 일년에 한번 으레 있는 그런 날이었지만, 막상 집이 아닌 머나먼 타국에서 생일을 맞게되니 기분이 좀 묘했다. 많은 친구들이 생일을 축하해주러 집까지 찾아왔고, 그리 큰 파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과 함께 나름 근사한 시간을 보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지만 그 날의 즐거웠던 기억을 블로그를 통해 다시한번 추억하려 한다. 아울러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아참, 그러고보니 우리집에 사는 일곱 명의 친구들의 생일은 기가 막히게 매 달 적어도 한 번씩 골고루 나눠져 있다. Florent가 10월 17일로 제일 먼저 생일을 맞았고, 10월 23일은..
얼마전 블로그를 통해 현재 핀란드에서 교환학기를 보내고 있는 한 분을 알게 되었다. 12월에 학기가 끝나고 스페인에서 한 달정도 살면서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싶다며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제일 먼저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마드리드에 살면서 스페인어 많이 늘었어요?' 음. 내 대답은 '말하기와 듣기가 특히 비약적(?)으로 늘었지요'였다. 그렇게 스페인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나의 '스페인어'에 대해 새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창밖으로 스페인 마드리드 거리를 내려다보며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솔직히 잘 실감이 안난다. 수학, 과학은 자신 있었어도(물론 고등학교때 이야기지만) 영어라면 진저리를 치던 내가, 무려 스페인어라는 제 2외국어로 매일같이 수업을 듣고, 말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