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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에서는 UFO 빼고 못만드는게 없다'

 오밀조밀한 골목길 사이로 수많은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찬 청계천 주변 상가들에 대한 우스갯소리다. 그만큼 파는 물건의 종류도, 그 가짓수도 다양한 이곳은 매번 찾아올 때 마다 새롭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알음알음 찾아가야 하는 복잡한 골목들은 클릭 몇번으로 쉽게 물건을 구입하고 하루만 지나면 띵동 하고 배달이 오는 요즘 세상과는 어쩐지 많이 다른 풍경이다. 우리네 아버지 세대까지만 해도 이런 골목길들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돌아다니며 게임기며 비디오며 구경하던 추억이 하나쯤 있겠지만 나만 하더라도 답사차 몇번 들렀던 일 말고는 뭘 사거나 구경하러 온 기억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세대에게는 이미 잊혀져버린 옛날 기억이 되어버린 곳일까.



 을지로4가 역에서 내려 청계천 배오개다리를 건너면 청계천 4가 골목 입구가 보인다.
 시계상가 혹은 귀금속 상가로 잘 알려진 예지동 골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오늘은 오래된 수동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사실 카메라 골목으로도 유명한 곳이 바로 청계천 4가다. 필름을 감아 쓰는 80년대 구식 카메라부터 커다란 액정이 달린 디지털 카메라까지, 세상의 모든 카메라를 볼 수 있는 별천지같은 세상이다.




 7,80년대까지만 해도 이 골목에만 50여곳의 카메라 가게들이 즐비했었다지만 지금은 20여개의 가게만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필름이 들어가는 구형 카메라를 만지고 수리하던 장인들은 신기하게 지금도 그때 그 카메라를 똑같이 만지고 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오히려 요즘들어 필름 카메라를 만지는 일이 더 많아졌다니.

 아날로그(기계식) 카메라는 나온지 30년도 더 되었지만 기름칠만 잘 해주고 매일같이 닦아주면 지금도 새것처럼 잘 작동한다. 하지만 디지털은 그렇지가 않아 회로가 망가지고 부품이 닳아버리면 그 수명이 훨씬 더 짧다.


 촌각을 다투는 요즘같은 세상에서, 한모금 여유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며 즐긴다. 그런데 그 여유로워야할 시간 조차 더 빠르고 더 좋은 카메라로 누가 먼저 순간을 잡는지를 겨루고 있으니 신물이 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필름카메라를 찾는가보다.

 디지털 카메라가 기록이라면 필름은 기억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한 장 사진을 찍기 위해 조리개며 셔터속도며 일일히 손으로 다이얼을 돌려 맞추고 나면 찍으려던 순간을 놓치는 일이 허다하지만, 그렇게 찍힌 사진들을 인화해서 받아볼 때의 감동이란... 잘찍지 않아도 초점이 조금 안맞아도 마냥 즐겁고 행복하게 만든다.



 대학에 입학하고 사진이라는 취미를 처음 시작했을때,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싶었다.
 1980년에 이미 단종되어버린, 나보다 10년 가까이 인생 선배인 카메라를 손에 처음 쥐고는 그렇게 또 4년이 더 흘렀다. 고장 한번 없이 잘 버텨준게 늘 고마웠지만, 오늘은 수리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카메라를 이리저리 보시더니 이내 능숙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수리를 끝내신다.
 잠시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최신형 디지털카메라를 가져온 손님 한분이 사진이 이상하게 나온다며 한번 봐달라고 하신다. 손에서 드라이버와 핀셋을 내려놓으신 주인 아저씨는 메모리카드를 노트북에 꽂아보시고는 사진이 어떻게 이상하게 나온건지 살펴보신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몇초사이에 왔다갔다 하시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든다.



 두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추억이 스쳐 지나갔을까.
 어쩌면 주인아저씨가 지금 고치는건 그냥 카메라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억은 아닐까.

 가게 한쪽에 걸린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익숙한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새 박사로 유명하신 윤무부 교수님 사진이다. 아무래도 새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도 중요할테지. 이 분 역시 이곳에서 수리를 받으신 적이 있으신가 보다.



 다시한번 새것처럼 말끔해진 카메라를 받아들고는 기분이 좋아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선다.
 이제는 또 어떤 새로운 사진들이, 기억들이 담기게 될까.

 진열장에 빽빽하게 들어찬 사진기들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은 여기서 쉬고 있지만 한때는 누군가의 아이들을 찍어주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애인을 담고, 멋진 풍경을 담던 카메라들 일텐데... 저 카메라들은 또 어떤 사연이 담겨있을까 하고 말이다.
 
 원래 그리 감성적이지 않은 사람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나답지 않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것 같아 어색하다.
 골목을 나오며 왠지 사진을 취미로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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