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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동네는 참 부르기도 쉽고 예쁜 이름이다.
 누구보다 달빛에 가까이 살고있는 사람들의 마을이니 달동네라는 이름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서울의 아직 남아있는 달동네들을 이곳저곳 찾아다닌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그동안 많은 골목을 걷고,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카메라로 기록을 남기고... 참 많은 생각도 했다.
 소위 작품이라고 일컫어지는 스타 건축가들의 멋진 주택과 대형 건물들이 건축가 하면 떠오르는 지배적인 이미지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삶을 조직하고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일 역시 건축가의 몫이다. 때문에 우리가 살고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안에서 벌어지고있는 '살아가는 풍경'은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이자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인왕산자락에 걸터앉은 홍제동 개미마을은 모두 210가구 426명이 살고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낙후된 주거환경으로 인해 아무도 찾지 않는 마을이었던 이곳은 최근 한 건설사의 후원으로 마을 전체의 벽화를 그린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일요일 늦은 오후. 
 저마다 손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30명은 족히 넘어 보인다. 마을 골목골목마다 카메라 셔터소리가 찰칵찰칵 울려퍼진다. 벽화로 새단장을 한 뒤의 풍경이다.

 홍제역에서 7번 마을버스를 타고 5분정도 인왕산 자락을 따라 올라가면 개미마을 꼭대기에 도착한다.
 걸어서 올라가기도 그리 만만치않은 비탈길을 육중한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올라간다. 벽화를 그린 이후로는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마을을 자주 찾아와서 그런지 마을버스가 더 자주 오는 것 같다.















 사실 달동네의 벽화를 그리는 아이디어는 그렇게 신선하지많은 않다.
 이미 전국의 많은 마을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벽화를 그리고 새롭게 칠을 한다. 
 
 낡고 오래된 누추한 집들을 형형색색의 페인트로 덮어버리는건 어쩌면 잠깐의 눈속임일지도 모르겠다.
 벽화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통영의 동피랑 마을은 최근 다시 벽화를 지워달라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는데,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져서 마을이 시끄러워진다는게 그 이유다.

 화려한 원색계열을 많이 쓴듯한 벽화는 그래도 예뻤다.
 5개 대학(추계예술대, 성균관대, 상명대, 한성대, 건국대) 128명의 미술전공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그렸다는 벽화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각 벽화에는 옆에 작품명이 조그맣게 달려있다.











 벽화들을 하나씩 둘러보는데 유난히 꽃을 그린 그림이 많다.
 칙칙한 회색빛 마을에 벽화가 가져올 희망을 표현한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큰길가의 벽화에만 눈이 가는가보다.
 담벼락을 향해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이 다들 닮았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꾸불꾸불 작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의 더 깊숙한 곳까지 이르게 된다.
 여긴 벽화조차 없다. 큰길가의 화려한 담벼락하곤 어쩐지 많이 다른 모습이다.

 다 쓰러져가는 누추한 집들과 사람이 살지않는 폐가.
 무너질까 쇠파이프로 아슬아슬하게 기대어 놓은 담벼락.
 화려한 벽화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이게 진짜 '개미마을'의 모습은 아닐까.

  개미마을일까 빛그린 어울림마을일까.


 마을버스 정류장 앞, 작은 가게 앞에 할아버지 한분이 연신 담배를 뻐끔거리신다.
 조심스레 다가가 벽화에 대해 여쭈어 보았더니 마냥 좋은것만도 아니라신다. 
 마을 주민들도 찬성하고 분위기도 한껏 밝아져서 좋지만 사진기를 들고 매일같이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조금은 부담스러우신 모양이다.







 삭막한 마을의 풍경을 새롭게 바꾸기위해 노력했던 대학생들의 열정도 너무나 멋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벽화를 찾아오는 사람들 덕분에 북적거리는 분위기도 나름 괜찮았지만
왠지 사진을 찍으며 마을을 둘러보던 사람들이 갸우뚱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이곳 주민들에게 진짜 시급한건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벽화는 잠시동안이나마 개미마을의 열악한 환경을 가리기 위한 가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두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던 수많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북적거리던 마을은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벽화들만 말없이 멀뚱멀뚱 서로를 처다본다.

 터벅터벅 내리막길을 따라서 홍제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나는 어딘지 씁쓸한 기분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가 발걸음이 자꾸만 뒤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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