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서울의 서쪽, 영등포구 문래동에는 철공소가 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나역시 알게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파트가 너무 많아서 이제는 낮은 집들이 되려 이상해 보이는 서울 한복판에 자그마한 공장들이 모여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더욱 놀라운 건 그 곳에 예술가들이 모여서 작업을 하고 있단다. 

 들어보니 그렇게 최근의 일도 아니란다. 이들이 벌써 철공소 거리에 자리를 잡은지 5년이 넘었다.
 
 젊은 예술가들의 거리라면 제일먼저 홍대가 떠오른다.
 언더그라운드 문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던 홍대는 예전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개성이 강했던 홍대의 색깔은 밀려드는 상업화의 물결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그 색이 바래버렸다. 홍대의 풍경은 서울의 다른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카페촌의 풍경과 그리 다를바가 없으니... 하여간 그 바람에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홍대는 더이상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마음편하게 머물 수 있는 둥지가 될 수 없었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 헤메던 예술가들이 그렇게 자리잡은 곳이 바로 이곳 문래동 철공소 거리다.

 지하철 2호선 문래역에 내려보니 온통 높은 건물 투성이다. 어디쯤 있을까 생각하며 조금만 걸어 들어가니 마치 하늘에서 누가 손으로 눌러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철공소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개막식은 일곱시부터지만 그전에 한바퀴 둘러보고픈 마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문래동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여기가 정말 예술가들 있는곳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평범한 철공소의 일상이 거리에 가득하다.
 차에서 짐을 내리는 아저씨, 용접하시는 분들, 길가의 조그만 공장들에서는 쇠를 가는 시끄러운 소리와 쿵쾅거리는 소리가 쉬지않고 들려온다.

 가만히 듣고있으니 뚝딱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긴해도 나름 신명난다. 늘 무언가를 만들고 몸으로 보여주는 젊은 예술가들의 정신이 철공소의 꿈틀거리는 에너지와 맞아 떨어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든다.







 문래동 철공소 거리의 조그만 공장들은 문이 따로 없다.
 여섯시즈음 됐을까. 하루 일과를 마친 공장분들이 하나 둘씩 퇴근하면서 공장들은 대여섯개의 철판으로 문을 닫아 영업이 끝났음을 알린다. 동시에 이제부터 거리는 철공소가 아닌 예술가들의 끼를 펼치는 장이 되는걸 암시기라도 하듯 형형색색의 벽화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정적인 그림부터 강렬한 그래피티까지. 이곳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분야 만큼이나 그 그림들도 저마다 개성이 있다.





 마침내 거리가 텅 비고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새로운 무대를 꾸미기 시작한다.
 마네킹과 옷을 저마다 양손에 가득 들고 이건물에서 저건물로 바쁘게 뛰어다닌다. 순식간에 철공소 거리는 패션쇼 런웨이가 된다. 개막식 공연을 준비하는 북들도 하나둘 밖으로 꺼내진다.


 물레아트페스티벌 프로그램으로 각종 공연이나 영화상영 뿐 아니라 전시도 꽤 많다.
 보고싶은 전시도 몇개 있었는데 개막식 공연을 준비하는동안 시간이 조금 남아 전시를 두어개 돌아보기로 했다. 철공소 거리의 초입에 있는 춤공장 건물에서는 설치미술과 회화를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큰길로 나가서 경찰서 뒤의 건물로 들어가면 문래동 철공소 사람들의 표정을 담은 사진전도 감상할 수 있다.








 시공을 잘못 한건지 설계가 원래 그랬는지 몰라도 계단의 난간이 발목높이도 채 안된다.
 암모니아 냄새가 콜콜한 화장실을 지나 반지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건물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허름한 건물의 외관과 마찬가지로, 내부도 그리 화려하진 않다.
 하지만 오히려 작가들은 그런 악조건을 자신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는데에 쓰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먼지하나 없는 깔끔한 화랑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마음 편하게 오랜 시간 작품을 즐기며 느끼며 그렇게 머물다 가면 된다. 입장료도, 나를 지켜보는 사람도 없으니...


 전시를 보고 다시 개막제를 하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어디서 쿵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살짝 들여다보니 열심히 드럼 연습을 하는 모양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힘이 느껴진다. 철공소의 뚝딱거리던 소리와 왠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빨강노랑 색색깔 조명이 철공소 거리를 비추며 무대가 얼추 완성되었다.
 말 그대로 길 한가운데가 그대로 무대가 되는 모양이다. 배우를 비추는 조명은 주차되어있는 트럭 앞바퀴 사이로 비춰지고 뒤로는 철공소의 크레인과 파이프들이 그대로 보이지만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

 공연장의 무대 뒷편은 늘 가려지기 마련인데 문래동 거리의 무대는 호주머니를 뒤집어 까내듯 무대 뒷편을 숨김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마저도 공연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


 개막제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북소리가 철공소거리를 순식간에 가득 메운다. 마치 이곳에 우리가 있다는걸 멀리멀리 알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북을 치는 손놀림이 빨라지고 동작이 점점 커져갈수록 분위기는 고조되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사람들도 제법 많아졌다.




 나도 잠시 사진찍는걸 멈추고 공연을 지켜보다가 얼떨결에 취재나온 MBC 라디오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다른 분들과 인터뷰하는걸 유심히 들어보니 개막제를 보러온 사람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나처럼 처음부터 공연을 알고 온 사람들도 있지만 근처 주민분들도 꽤 오신 모양이다. 배우의 몸짓 하나하나 놓칠새라 눈을 크게 뜨신 할머니는, 손을 꼭 잡은 손녀딸과 그 눈망울이 참 닮으셨더라.





 고사상을 배경으로 긴 소매를 너풀거리며 굿을 하던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올해로 세번째가 되는 물레 아트페스티벌의 성공을 기원하는 고사가 그대로 공연이 된 셈이다. 옛날 같았으면 굿을 보는게 그리 어렵지 않았겠지만 요즘세상에서 이런 굿을 보는 경험자체가 참 신선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 굿이 펼쳐지는 무대가 철공소 길 한가운데라는 사실에 또한번 놀라게 되지만 말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동네 주민분들도 빠른 장구장단에 맞춰 어깨를 살짝살짝 들썩거리신다.

 개막제에만 해도 서너개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날씨도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결국 다 보질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골목을 나섰다.


 철공소 거리에는 무대도, 객석도 따로 없다. 아니 어쩌면 원래부터 없는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조그만 골목은 소품실, 분장실, 대기실이 기꺼이 되어주고, 배우와 관객들이 한데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테리아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공연 문화는 장날이면 시장 한켠에서 둥그렇게 둘러모여
 남사당패의 몸짓 하나하나에 함께 어깨를 들썩거리던 쪽에 가깝다. 하지만 서양에서 들어온 무대라는 어색한 공간은 부산스러운 무대 뒷편을 장막으로 가리고, 단을 높여서 관객들과 거리를 두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공연의 한쪽면만을 관객들은 보게 된다.
 
 내가 철공소 거리에서 본건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릴 뻔 했던 우리의 진짜 공연이지 않았을까.
 둥그렇게 둘러서서 관객도 배우도 함께 공연을 즐기고 함께 웃는 즐거움을 한가득 느낀것만 같다.
 십년이 지나고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또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www.miaf.co.kr  물레아트페스티벌 공식홈페이지


공유하기 링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