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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에서 플래그쉽(DSLR)을 취미용으로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어디든 유명한 여행지에 가면 으레 손이나 목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있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지 않을까. 최근들어서 고급 카메라의 보급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리들, 일명 '포인트'라는게 인터넷등을 통해 널리 공유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멋진 포인트를 찾아 삼삼오오 카메라를 들고 떠나는 일도 많아지는 것 같다.

 창녕 우포늪 역시 사진찍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포인트'중 한 곳이다.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저녁노을이 아름답다는 이 곳. 하나쯤 멋진 사진을 찍어가길 욕심 내 볼 법도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늪'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더욱 강하게 이끌었다.


새와 나무, 푸른 늪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참 아름답다


 인터넷에서 우포늪을 찍은 멋진 사진들을 찾아보면, 이른아침 물안개 사이로 유유히 떠다니는 나룻배들이 꽤 많다. 나역시 물안개도 보고싶었고, 나룻배도 보고싶었지만 결국은 둘 다 보지 못했다. 아쉬워라!
 
 하지만, 물안개와 나룻배 없이도 우포늪은 참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흙으로 된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어 늪으로 향한다


 주차장에서 내려 작은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늪을 마주치게 된다.
 어렸을 적 자주 부르던 동요 속에는 늪지대를 만나면 악어떼가 나온다고 하지만 다행히(?) 악어떼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이곳에는 작은 곤충들 부터 큰 왜가리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자연이 살아 숨쉬는 꿈틀거림이 가득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머리가 맑아진다.


왠지 어두운 하늘아래 펼쳐진 늪 위로 자연의 심장박동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몇년만에 개구리밥을 보는지 모르겠다. 초등학생때만 해도 소풍이며 나들이며 나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개구리밥을 찾아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바쁘게 살다보니 그런 것쯤이야 하고 너무 하찮게 생각해 버린 것 같았다.



한번은 멀리서, 또 한번은 가까이서


 우포늪은 한 번은 멀리서, 그리고 또 한번은 가까이서 보아야 제맛이다.
 태고의 신비를 가득 품은 듯한 형상의 늪은 어머니의 푸근함을 , 그 뒤로 펼쳐진 장엄한 산세는 아버지의 늠름한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비록 이른 새벽의 물안개는 볼 수 없었지만, 잠깐 내린 소나기로 이내 늪 전체가 뿌연 안개로 덮히며 더욱 고요해진다.


작은 몸으로 빗방울을 힘차게 튕겨낸다


 허리를 굽히고 앉아보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들린다.
 어려서부터 정말 싫어했던 거미도 왠지 오늘은 왠지 귀여워보인다. 빗방울이 구슬처럼 땡글땡글 맺힌 거미줄 위에서 다리를 쉼없이 놀리는 모습에서 살아있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너무 여려서 쉽게 꺽일것만 같은 들꽃들도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더 활짝 피어나기 위해 애를 쓴다. 숨소리조차 내면 안될 것 같은 대 자연의 살아있는 몸짓 앞에서 나는 완전히 압도당해 버렸다.





다시 해가 조금 난다


 한차례 소나기가 내리고 우포늪을 가득 메웠던 안개가 걷히고, 물위로 다시 햇빛이 잘게 부서진다.
 


가을의 아이콘, 잠자리 한마리가 살포시 풀 위에 앉으려 하고 있다


 늪은 수많은 곤충들, 풀과 나무, 철새들, 모든 생명체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그릇과 같은 역할이라고 한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들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그 역동하는 에너지에 나는 조용히 따라 걸으며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최근들어 늪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면서, 세계적으로 늪을 보존하기위한 람사르 총회와 같은 움직임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대의 늪인 창녕 우포늪 마저 해마다 그 규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자연 앞에서는 작은 생명에 불과할 지 모른다.
 수많은 생명을 품고있는 늪이 그랬듯, 자연이 그랬듯, 이제는 사람이 다시 그들을 품어주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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