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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골 국제공항 국내선 환승 터미널에 막 들어섰다. 감각적인 노출 콘크리트 벽체와 유리로 된 천장이 참 아름다웠지만 뜨거운 7월의 햇볕 때문에 어쩐지 후텁지근한 기분이다. 아내는 화장실에 들러 헛구역질을 하고 나왔다. 전날 밤을 꼴딱 새우고  열 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파리에서 아내의 몸상태는 이미 넉다운이었다. 이번 여행의 출발지인 리용에는 아직 도착하지도 못했다. 걱정스러운 마음 가운데 얼마 남지 않은 국내선 환승 시간을 확인하고는 이내 아내의 손을 끌어당겼다. 늦지 않으려면 지금 뛰어야 한다.

국내선으로 환승하며 잠시 스쳐 지났던 파리의 청명한 하늘

인상적인 구조의 2F 터미널에서 리용행 국내선으로 갈아탔다.

다시 시작된 비행, 이번 휴가는 시작부터 쉽지 않다.

 이게 다 라 투레트 때문이다. 애초에 이번 휴가를 계획한 이유부터가 라 투레트를 보기 위해서였고, 긴 비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국내선을 한 시간이나 더 타야 했던 것도 라 투레트가 파리보다는 리용에서 가깝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나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비행기 좌석에 앉았고 정시에 파리를 출발한 비행기는 금세 리용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장을 나와 미리 예약해둔 렌터카를 수령하고 공항 근처의 이비스 호텔에 들어서니 이미 저녁때가 훌쩍 넘었다.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에 뻗어버렸다. 내일 아침엔 아내 몸이 꼭 괜찮았으면 좋겠다. 그보단, 아내가 라 투레트를 꼭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공항에서 가까워 편리했던 숙소, 쓰러지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먼길 떠나기 전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도 아내는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했다. 간단히 조식을 먹고 짐을 챙겨 차에 올랐다. 어제 리용 공항 근처에서 빌린 차는 주행거리가 막 1000km를 넘어선 신형 지프 레니게이드였다. 이번 휴가는 대부분을 차로 움직여야 하는 만큼 차량의 성능도 성패의 중요한 변수였다. 나는 운 좋게도 지불한 금액보다 한 등급 높은 차를 받았고 잠시 몰아본 느낌으로는 승차감도 나쁘지 않았다. 내비게이션 검색창에 '라 투레트'를 적어 넣었다. 이번 휴가의  궁극적인 목적지이자 모든 일정의 시작점, 라 투레트로 출발했다. 벅찬 순간이었다.

라 투레트로 가는 길, 흥겨운 샹송 메들리가 차 안을 가득 채운다.

 리용 시내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묵었던 호텔과 라 투레트는 서로 동서로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이폰과도 연동되는 제법 똑똑한 내비게이션은 우리를 시내를 우회하는 외곽 도로로 안내했다. 처음 몰아보는 차종이라 조금 어색했지만 이내 내 차인 것처럼 금세 적응해버렸다. 창문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주변 풍경으로 눈을 돌리자 비로소 휴가가 시작되었음이 느껴졌다. 아내의 표정도 좋아 보였다. 

프랑스에선 프랑스 노래를 들어야 한다며 아내는 유튜브로 샹송을 틀었다. 이름 모를 노래들을 들으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키가 큰 가로수들이 양 옆으로 빼곡히 들어선 오솔길 위에서 내비게이션은 안내를 멈췄다. 아직 라 투레트는 보이질 않는다.

남쪽으로 곧게 뻗은 오솔길, 라 투레트의 진입로다.

드디어 만났다, 내 너를 보러 이 먼길을 달려왔다.

 엔진이 꺼지고 흥겨운 음악도 멈췄다. 이내 주위는 이내 적막으로 가득해졌다. 보이는 것이라곤 멀리 들판과 파란 하늘이 전부였지만 그 분위기에 압도당해 차에서 내리는 발걸음마저 조심스러웠다. 남쪽을 향해 곧게 뻗은 오솔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자 라 투레트의 북측면이 자태를 드러냈다.

 아, 드디어 만났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반가웠고, 상상했던 것보단 작고 아담한 크기였다. 매일같이 도면과 스케일을 다루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종이를 통해 보는 것과 눈 앞에 맞닥뜨리는 것 사이엔 분명한 간극이 존재했다. 진실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승선생님께서 즐겨 사용하시는 문구가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꼭 표지판 때문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라 투레트의 문지기, 잉카와의 첫 만남!

 라 투레트의 매표소에는 '잉카'라는 이름의 귀여운 강아지가 있다. 시크하면서도 매력적인 외모에 정신이 팔려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예정된 가이드 투어 시간이 되었다. 참여자는 우리 부부와 독일인 커플, 그리고 미국인 아저씨 한 명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안내를 맡은 프랑스인 젊은이는 건축을 전공한 학생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 위대한 건축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안내 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서로 통성명을 하고 보니 모두들 직간접적으로 건축에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가이드는 이번 투어의 수준을 조금 올려도 되겠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라 투레트의 부분들

 투어는 매표소에서부터 시작하여 응접실과 기도실, 식당을 돌아 회랑을 거쳐 채플과 지하 예배당까지 건물 전체를 한 바퀴 크게 돌며 진행됐다. 가장 궁금했던 수도사의 방은 아쉽게도 숙박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가 볼 수 없었다. 가이드는 축소 모형을 통해 방 내부 구조와 설계 의도를 설명해 주었다. 1인 1실로 계획된 각각의 방은 한 명의 수도사가 생활하는 공간 크기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때문에 일행이 있어도 숙박은 무조건 한 사람당 한 방을 써야 한다. 우리 부부처럼 밤낮으로 붙어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겐 조금은 불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이미 두 달도 전에 모든 방은 매진이었다. 다음에 다시 이 곳을 찾는다면 그때는 꼭 하룻밤을 묵어 보리라 기약했다.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된다.

 라 투레트는 생각했던 것보다 작지만 담대했고, 자유분방하지만 조화로웠고, 거칠지만 따뜻했다. 부분을 면밀히 살펴보면 크고 작은 요소들이 정신없게 섞여있어 보이지만 또 멀리서 보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전체 그 자체였다. 익히 보고 들어 잘 알고 있던 부분들은 정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또한 반가웠다.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들도 나를 반기기라도 하듯 불쑥 튀어나와 감상하는 즐거움을 더했다.

 승 선생께선 지금까지 이곳에 열 번 정도 다녀가셨다고 했다. 회랑을 천천히 혼자 거닐며, 그동안 내가 그려온 혹은 보아온 건축이 왜 그래야만 했었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간밤에 안녕히 주무셨는지요?

 멀리 언덕 아래를 바라보며 상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에 아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서 카메라 뷰파인더에 깊숙이 빠져 홀린 듯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아내는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이따금씩 보여주는 건축에 대한 냉철하고 뛰어난 직관으로 나를 놀라게 할 때가 있다. 휴가에서 돌아온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아내는 잠자리에 들기 전 종종 라 투레트 이야기를 먼저 꺼내곤 한다. 라 투레트로의 여행을 계획한 장본인으로서 내심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도착 예정시간 17시 15분, 현재 외부기온 40도

론 강을 따라 남쪽으로 출발, 도로 왼편으로 해체주의 성향의 Confluence Museum이 보인다.

 더 머물고 싶지만 오늘은 마음이 급하다. 오늘은 나흘간의 일정 중 가장 이동거리가 긴 날이다. 라 투레트 근처 작은 마을에 들러 식사를 한 뒤 곧바로 남부 생 레미 드 프로방스로 출발했다. 벌써부터 햇볕에 뜨거워진 차에 올라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순식간에 속도계 바늘은 시속 100km를 돌파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내 마음은 평온했다. 새 차의 승차감이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라 투레를 마침내 보고야 말았다는 안도감에서였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둘 다 였을게다. (계속)

*젊은건축가의 프랑스 휴가기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카카오 브런치(brunch.co.kr)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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