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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원'은 우리나라 밖에서만 접할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공공시설이다. 일반적으로 해외 주요 도시에 설립되어 문화예술행사 및 교류, 한국어 또는 한국문화의 강습 등 민간차원에서의 문화교류의 장으로서 활용되곤 한다.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공공 차원에서 행정과 외교를 담당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대사관을 '아빠', 문화원을 '엄마' 정도로 비유해도 나름 적절할 것 같다. 2020년 현재 전 세계 27개국에는 총 32개의 한국문화원이 운영 중이다.

 꼭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문화원을 접해볼 방법이 있다. 수많은 나라들이 서울을 비롯한 한국 내 주요 도시에 같은 방식으로 문화원을 설립해 자국의 문화를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운현궁 옆에 위치한 일본문화원의 경우, 일본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겐 각종 책자와 쿠폰을 많이 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혹은 스페인 세르반떼스 문화원처럼 어학의 보급과 교육을 주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문화원이라는 독특한 공공시설은 한국의 문화를 외국으로, 또는 외국의 문화를 한국으로 상호 교류하는 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브라질 출장기가 탄생할 수 있었던건 문화원과의 인연 덕분이다.

 나의 갑작스러운 브라질 출장은 모두가 이 문화원 때문, 아니 '덕분에' 일어난 일이었다. 상파울루 소재의 주한 브라질문화원의 재개관에 맞추어 열리는 특별전시에 내가 담당했던 프로젝트가 초청되면서 설치감독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출장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내내 문화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이 독특한 공공시설과 제법 친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써보는 문화원 이야기, 총 여덟 편의 출장기를 닫는 마지막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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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전하는 주브라질 한국문화원의 입구

1층으로 들어서면 리셉션 데스크와 전시공간이 보인다.

한국 문화원 vs 일본 문화원

 주브라질 한국문화원은 2019년 8월 초, 상파울루의 중심가 파울리스타 대로의 한 고층빌딩 1, 2층으로 이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한국을 출발하기 전, 사전조사 차 웹에서 정보를 수집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문화원은 파울리스타 대로변이 아닌 한 블록 뒤 이면도로에 위치해 있었다. 로드뷰나 과거사진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건물이 작고 낡아서 지도를 보고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이상 쉽게 접근하기  힘들어 보였다. 개중에는 문화원 근처의 불안한 치안에 대한 글도 간혹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었던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반면 일본문화원은 일치감치 파울리스타 대로 중심가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현지인들에게 들은 바로는 브라질 사람이나 일본 사람 외에도 외국 관광객들에게까지 제법 인기가 좋다고 했다. 사전에 조사한 정보만으로는 어쩐지 두 나라 문화원 사이에 격차가 조금 있어 보였다. 물론 브라질 내 일본인 거주자 수가 150만 명에 이르는 데에 비하면 한국 동포 수는 2019년 기준 채 5만이 안된다. 분명 규모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문화의 힘이라는 게 꼭 숫자를 따르는 것만은 아닐 터이다.

한국 문화원의 재개관 특별전 '경계협상' 전경

얼핏 듣기로는 한국문화원이 이번에 파울리스타 대로로 이전하게 된 것도 일본 문화원을 나름 의식해서라고 했다. 실제 개관 준비하는 모습에서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기선제압을 한 번 하려 하는 직원들의 독기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속사정을 알고 나니 어쩌다가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했다. 개관일에 맞추어 오픈하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단연코 높이 6m의 거대한 건축물인 나의 작업이었다. 멀리 남미대륙 한복판에서 벌어진 두 나라 간의 문화원을 통한 미묘한 신경전이 흥미진진했다. 게다가 내가 그 선봉에 함께 서있는 것만 같아 묘한 흥분마저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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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원에서 불과 도보 5분 거리에 일본 문화원이 위치하고 있다.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일본 문화원의 전면부

입구 간판의 타이포와 로고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일본 문화원을 다녀오다

 이상했다. 한국 문화원 직원들도, 현지인들도 하나같이 일본 문화원을 가보라고 귀띔했다. 출장으로 상파울루를 찾았던 게 2019년 7월 말이었으니 한일관계의 악화와 함께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서서히 발동이 걸리던 시점으로 기억된다. 왠지 모르게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곳을 가보라는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일정이 마무리되어가던 출장의 마지막 날, 비 오는 파울리스타 대로를 걸어 5분 거리의 일본문화원을 방문했다.

별도의 진입부와 마당이 있어 단독건물, 혹은 엑스포 파빌리온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가까이에서 본 목구조 디테일

잘 정리된 느낌의 주출입구 전경

 일본 문화원 입구에는 일종의 애칭인 'JAPAN HOUSE'라 쓰인 간판이 정갈하게 붙어있었다. 고층건물의 저층부를 일부만 사용하는 것은 한국문화원과 동일했다. 그럼에도 별도의 진입동선과 그럴싸한 앞마당, 목재로 꾸민 파사드까지 나름 잘 꾸며두어 단독 건물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사실 목구조의 결구를 보여주는 메타포는 일본이 오래전부터 국제무대에서 즐겨 사용해오던 방식이다. 한중일 모두 목조건축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일본 특유의 세장 하고 매끈한 비례와 날렵한 결구 구조는 이미 세계사람들에게 '일본의 것'으로 인식되어있는 것 같다. 특히나 현대적인 재료의 고층빌딩이 즐비한 상파울루 한 복판에서 기하학적인 목재로 덮인 일본문화원의 외관은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층의 전시공간 홀

기념품점에서는 다양한 상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2층의 강의 및 사무공간

중간에 마련된 팝업 스토어

3층에 위치한 일식당은 맛이 좋기로 유명하단다.

 내부 공간 구성은 생각보다 단순했는데 1층에는 전시실과 기념품 판매점, 2층에는 강의실과 사무공간, 3층에는 일식당이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전시는 대나무를 이용한 예술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었는데, 마침 내가 설치하는 작업도 대나무가 주 재료인지라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사실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건 다름 아닌 '기념품점의 인파'였다. 이른 오전 시간이었음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살펴보고 있었고, 대부분은 일본인처럼 생기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연필이나 시계 같은 평범한 기념품부터 사케나 장아찌, 찹쌀떡 같은 전통 식품류, 일본 건축이나 미술에 관한 전문 서적에 이르기까지 품목이 제법 됐다. 무엇보다 좋아 보인 건 제품들의 퀄리티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흔히 관광지에서 접하게 되는 싸구려, 중국제 '기념품'과는 질적으로 확연히 달라 보였다. 

이른 아침임에도 기념품점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서가에는 꽤 수준 있는 책들이 꽃혀 있었고, 중정을 바라보며 편히 읽어볼 수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디자인 요소들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일본 문화원에는 분명 '일본스러움'이 가득했지만 '일본의 것' 그 자체는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직설적인 물건이나 상징물로 내부를 가득 채우는 다소 전근대적인 수법들이 철저하게 배제되어있다는 뜻이다. 부분만 놓고 보면 그다지 일본과 관계없어 보이지만 전체로 보면 누가 봐도 일본스럽구나 하고 공감할 정도의 적절함이 잘 조화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 모든 건 치밀하게 계산된 재료나 색채, 디테일, 조경 등 디테일에서부터 오는 것이었으리라. 짧은 관람을 마치고 나서는 길, 치사하다 싶을 정도로 고도화된 그들의 문화전략에 오기마저 생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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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원의 리셉션 데스크 모습, '나무'라는 재료를 중심으로 인테리어를 풀어나갔다.

디자이너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한식 중목구조의 모티프가 강하게 느껴졌던 전시공간 구성

다시 한국 문화원을 생각하다

 파울리스타 대로에 재개관하는 한국 문화원은 두 개층 규모로, 1층에는 전시장과 리셉션을 두고 2층에는 강의실과 사무공간이 있다. 비록 규모는 일본 문화원보다 좀 작지만 실내 인테리어나 구성에서 차별화하고자 신경을 많이 쓴 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층고가 높은 1층 전시장의 벽과 천장을 압도하는 목재 부재가 그것이다. 일본 문화원의 외벽면이 일본식 경량 목구조의 가벼움과 섬세함을 모티프로 했다면 한국 문화원의 실내 인테리어는 한옥의 대들보를 연상시키는 중목구조를 떠올리게 했다. 부재의 단면 크기와 비례, 색상 또한 그러했다. 

 개관하자마자 일본 문화원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뻔한 운명의 부담스러운 프로젝트였으리라. 그럼에도 '나무'라는 동일한 재료를 과감하게 선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차이를 만들어내고자 의도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국 문화원에도 2층에 서가와 디지털 체험존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VR 체험존이 킬링 콘텐츠로 포진되어 있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일본 문화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시간이나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일본 문화를 손쉽게 구매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념품점'과 '일식당'이다. 하지만 한국 문화원에는 그런 공간이 없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예산이나 지원의 부족이 원인이었음은 자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흰 전시벽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전시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고, 하나 둘 벽면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자랑스런 한국의 기술력! 과연 신기하긴 했으나...

 전시 오프닝 전날이자 출장의 마지막 날이었던 토요일 저녁, 내내 비어있던 문화원 구석구석을 채우기 위한 물건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복'을 입고 '장구'를 치는 인형, 액자에 고이 담겨있는 '한식 부채', 제품명이 큼지막하게 박힌 '세계 최초 투명 OLED TV'까지... 분명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이고 자랑스러운 기술임에도 어딘가 불편했던 건 내가 너무 예민해서였을까. 하나하나 힘이 잔뜩 들어간 '한국의 물건들이 공간을 숨이 막히도록 꽉 채워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좀 전의 흰 벽이 도리어 조금 그리워질 정도였다.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에서 주최했던 한국 영화 상영회의 포스터

 문득 교환학생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프라도 미술관 맞은편에 위치한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에 나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한국 책을 빌리러 갔었다. 그리 길지 않은 외국생활이었음에도 한국어 텍스트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곳으로 기억된다. 한 번은 문화원 주최로 한국 영화 상영회가 열린 적도 있었다. 나는 일부러 스페인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참석했고, 스페인어 자막과 함께 박찬욱 감독의 '하녀'를 감상한 친구들과 밤새 상그리아를 마시며 한국 영화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던 추억도 아련하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문화원이라는 곳이 꼭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있는 대로 다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았나 싶다. 물론 뭐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야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문화라는 게 어디 그 끝을 헤아릴 수 있는 한정적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 문화원 계단실 벽에 걸린 부채 액자 하나쯤 떼어 낸다고 해서 한국 문화가 빈약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일했던 모든 분들에게 박수를...

 아무쪼록 새롭게 개관한 한국 문화원이' 한국다움'으로 가득 차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그 새로운 출발선에서 나의 작은 땀방울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그 또한 더없이 감사할 일이다. 그리하여 긴긴 출장길의 고단함은 온데간데없고 달콤한 추억들만 오래도록 가슴 한구석에 간직할 수 있기를. (끝)


*지금까지 '젊은건축가의 브라질 출장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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