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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는걸' 쿠리치바에서 상파울루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브라질이라는 나라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애초에 며칠 일정 가지고는 제대로 돌아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딱 하루만 더 있었더라면 브라질리아 정도는 가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이 생겼다. 브라질리아는 미국의 워싱턴 DC,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시 같은 일종의 행정수도이다. 행정가도 아닌 내가 브라질리아에 가보고 싶은 이유는 순전히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 1907-2012)의 작업을 보고 싶어서였다. 명실상부한 브라질의 국민적인 건축가, 우리에겐 어쩐지 오스카 니마이어라는 발음으로 더 익숙하지만 근래 들어 포르투갈어 표기법을 따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브라질 전역에 걸쳐 그의 작업이 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 상파울루에선 만나기가 어려웠다.

쿠리치바의 눈,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박물관이다.

 그런 나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곳이 바로 쿠리치바의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박물관(MON, Museu Oscar Niemeyer)'이었다. 사실 없는 시간을 쪼개어가며 쿠리치바행을 택했던 건, 쿠리치바라는 도시가 궁금했던 것만큼이나 이곳 박물관에 와보고 싶었던 이유도 컸다. 명색이 브라질까지 왔는데 오스카르 선생 작품 하나 정도는 보고 가야지!

기사양반,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선생에게 날 좀 데려다 주시오!

  쿠리치바 아폰소 페나 공항 국내선 터미널을 나서자마자 우버를 불렀다. 특히나 시간이 촉박하고 이동거리가 짧고 다양했던 이번 출장에서는 우버 덕을 톡톡히 봤다. 오늘의 계획은 일단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박물관으로 가서 마음껏 관람한 뒤에 미리 점찍어둔 슈하스까리아를 찾아 점심을 먹고, 쿠리치바 도시 곳곳을 누비다가 상파울루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의 우버 드라이버는 능숙한 솜씨로 순식간에 박물관 앞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쾌청한 하늘 아래 쿠리치바 외곽의 한산한 풍경이 휙휙 창밖으로 스쳐간다.

오... 과연 사진과 똑같다. 당연한 말인가?

현판을 장식한 거장의 스케치!

사실은 앞에 건 별동이고, 수반 뒤로 보이는 넙데데한 건물이 본관동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의 눈을 닮은 건물의 나를 압도한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세련됐다. 이미 내 마음에는 쏙 들어버렸고, '그래 이런 게 답사하는 재미지' 싶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지난 2002년에 개관한 이 독특한 형태의 박물관은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의 설계로 지어졌는데, 실제로는 눈 모양의 전면부 별동과 넙적한 직사각 형태의 본관으로 나뉘어있고 둘 사이는 지하통로와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일단 매표소와 로비는 구름다리를 타고 수반을 건너 본관으로 가야만 만날 수 있다.

수면에 비친 햇살이 만들어낸 무늬

본관동 쪽에서 본 구름다리의 모습

왼쪽의 별관동과 오른쪽의 본관동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사실 건물 연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본관동은 지난 1967년에 완공된 제법 오래된 건물이다. 물론 이 또한 오스카 니에메예르의 설계로 지어지기는 했으나 오랜 세월 교육연구시설로 사용되어왔다고 한다.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건 2002년에 별동을 증축하면서라고 한다. 참고로 이 눈 모양의 건물은 실제로도 '니에메예르의 눈(Museu do Olho)'이라고 불리고 있다. 재미있는 건 건축가는 눈 모양이 아니라 '아라우카리아(Araucaria)'라는 브라질에서 자라는 독특한 모양의 나무에서 모티프를 따왔다고 밝혔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본인이 설계한 건축에 본인 이름이 붙었으니 건축가로서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으리라.

본관동으로 들어가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광활한 필로티 공간이 펼쳐진다.

건물 뒷편으로는 야외 조각공원도 있다. 천장면은 상파울루 미술관(MASP)과 같은 송판노출콘크리트 마감이다.

거대한 유리바닥 아래에는 건축가에게 헌정된 전시실이 있다.

 본관동으로 들어서자 넓고 낮은 필로티 공간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중앙의 거대한 외부공간을 중심으로 우측의 매표소 및 카페테리아와 좌측의 전시공간으로 구분되어있다. 표를 사고 전시공간 로비로 걷다 보면 동그랗게 유리로 된 바닥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공간이 바로 건축가 오스카르 선생만을 위한 헌정 전시공간이다. 건물 이름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고, 여러모로 건축가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뚝뚝 묻어나는 건물이 아닐 수 없다.

긴 직사각형 평면의 본관동은 전시장으로 쓰기 최적의 공간처럼 보인다.

미술, 회화, 조각 등 꽤 다양한 전시들이 열리고 있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중앙 홀의 슬로프, 본관동의 중심공간이다.

 건물의 공식 명칭이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박물관'이긴 해도 사실 본관동은 건축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반적인 전시가 열리는 평범한 미술관이다. 그날도 기획전시가 서너 가지 열리고 있었는데 건물도 구경할 겸 천천히 다 둘러봤다. 나름 흥미 있는 전시들이 있어 생각보다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확실했으니... 시계를 확인하고 얼른 발걸음을 재촉해 지하 1층에 있는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전시실로 향했다. 앞서 로비로 들어오기 전 원형 천장으로 내려다봤던 바로 그 공간이다.

젊은 시절의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의 모습, 자...잘생겼다.

원형 유리천창 아래로 한 100평은 족히 되어보이는 상설 전시관이 헌정되어있다.

왜 포르투갈어로만... 꼭 읽고 싶었는데!

 상설 전시장의 규모는 생각보다 꽤 컸고 퀄리티도 나쁘지 않았다.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곡면 벽의 내용이 좀 궁금했었는데 아쉽게도 포르투갈어로만 되어있어 읽을 수가 없었다. 그 외의 모든 전시물은 영어가 병기되어있다. 자연스럽게 내 관심은 중앙 홀에 놓인 수많은 모형들로 향했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을 1:300~1:500 정도 스케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는데 꽤 흥미로웠다. 그는 진작에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고, 2012년까지 100살 넘게 장수하시며 우리나라에도 제법 알려진 건축가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터라 이번 전시를 더욱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약 20여개의 모형들이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이 박물관의 모형도 있다.

 적어도 모형에서 느껴지는 그의 작업 대부분은 기능보다는 조형이나 상징성에 더욱 무게가 실려 보였다. 건물의 형태보다도 특히 흥미로웠던 건 대지의 위치(site)가 하나같이 굉장히 '극적인' 곳들 일색이라는 점이었다. 절벽 위, 멋들어진 해변, 완벽하게 정리된 계획도시 한복판... 범인(凡人)에게는 함부로 설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법한 대단한 위치 선정과 내용의 프로젝트들의 많아 보였다.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건축가의 일생과 살아온 여정을 함께 두고 비교해보면 왜 이런 프로젝트들이 많은지 일견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사실 브라질리아를 가보고 싶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건축가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 시대상 따위가 매우 특수하고 정제되어있는 상황 속에서 탄생한 건축들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건축가의 작업이라는 건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의뢰가 있어야만 시작될 수 있고, 작업을 둘러싼 다양한 조건들은 작업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오롯이 건축으로 반영되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적어도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의 작업들은 그런 면에서 나의 흥미를 끄는 요소가 많았다. 한 건축을 마주하는 것은 곧 한 건축가의 일생을 마주하는 것과도 같다.

신기한 모양의 복도, '눈(Olho)'으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써있다.

둥그렇게 감아올린 바닥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 같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안쪽면이 더 궁금한 법!

 오스카 니에메예르 선생과 짧은 만남의 여운을 가지고 전시관을 나섰다. 눈 앞에 나타난 복도가 새삼 생경하다. 처음 우버에서 내리며 보았던 니에메예르의 눈으로 들어가는 복도인데 실제로는 수반 밑으로 연결되는 지하도이다. 특이하게도 바닥 마감을 둥그렇게 벽 끝까지 감아올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게다가 평면형태가 곡선으로 휘어져 있어 그 끝이 안보이니 더욱 재미있다. 마치 막 도킹한 우주정거장 모듈로 유영하며 넘어가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마지막 계단만 더 오르면, 마침내 '눈'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쉽지만 내부는 전시 준비중이라 더이상 출입 금지, 사진만 한 장 담아 내려올 수 있었다.

 니에메예르의 눈은 꼭대기에 위치한 단일 전시실로 지하통로를 건너온 뒤 계단 혹은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야만 한다. 내가 방문했던 2019년 8월 무렵은 다가올 '쿠리치바 비엔날레' 막바지 준비로 한창 바쁠 무렵이었다. 때문에 아쉽게도 전시실 내부로는 들어갈 수는 없었고 사진만 찍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사실 공간적으로는 밖에서 본 모양과 똑같이 생긴 하나의 실(室)이다 보니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내 관심을 끈 건 여기까지 올라오다가 마주친 사진 몇 장이었다.

공사 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 내겐 더 흥미로웠던 사진들

입구에서 봤던 구름다리도 모두 수제(?) 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공사 참여자가 모두 모여 찍은 멋진 기념사진

특히나 내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던 사진, 그들은 모두가 이 건축의 주인공이었다.

 6층까지 올라오는 동선 곳곳에 작은 전시실을 마련하여 완공 당시까지 건축의 과정을 상세하게 찍어둔 기록사진을 함께 상설 전시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평범한 전시 같아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기록사진을 함께 상설로 보여주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때문에 나에겐 이 역시도 오스카르 니에메예르라는 거장 건축가에 대한 브라질 사회와 쿠리치바 시민들의 존경심과 경외감이 만들어낸 장면으로 읽혔다. 

 사진 퀄리티도 너무 좋고, 전시실 구성도 나름 깔끔해서 무릎을 굽혀가며 꽤 오래 찬찬히 들여다봤다.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건 건설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치 모델처럼 아주 멋들어지게 찍은 포트레이트(portrait) 시리즈였다. 나는 시공에 종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 적어도 이 나라에서 건축하는 사람들이 이 정도 존경심을 받는구나' 싶어 내심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선생에 대해서는 진작에 많이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천수를 누리시는 동안 건축가여서 행복한 일이 참 많으셨겠다 싶었다.

깊은 여운을 남겼던 마지막 한 마디...

 니에메예르의 눈을 나오기 전, 계단 인방에 멋진 격언이 붙어 있어 한 장 찍었다. 중국의 세계적인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가 했던 말이다. 이번 쿠리치바 비엔날레에 중국 예술가들 작품이 대거 선보인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그 때문에 설치한 것 같았다.

 참 좋은 말이다. 예술(혹은 문화)은 곧 모든 것의 시작이다. 어쩌면 중국 작가들이 지구 반대편 쿠리치바로 초대된 것도 마찬가지고, 나 또한 예술을 매개로 이곳 멀리 브라질까지 초청받아 와 덕분에 새로운 건축을 만나고 또 영감을 얻어 돌아가니 말이다. 이 모든 사건이 결국 언젠가 무엇인가의 시작점으로 되짚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니 새삼 저 짧은 문구가 더 깊이 와 닿았다.

 분명 예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어느덧 나의 출장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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