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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여정을 거쳐 라오스 북부의 우돔싸이까지 오게된 건 순전히 정글 때문이었다. 북부 산악지대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진짜 야생의 정글에서 역동적인 체험들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립된 정글처럼 비춰졌지만 사실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비포장 도로에서 달릴수 있도록 개조된 작은 트럭 뒷자리에 타면 주요 포인트들을 둘러볼 수 있다. 물론 차에서 내려 산길을 한참 걸어야 하는 곳도 많았다. 산에서 내려와 하루종일 정글 탐험을 하기로 계획되어있던 날, 지난 함께했던 크무족 가이드들과 이번에도 함께 차에 올랐다.


정글 깊숙히 들어가기 위해선 이렇게 작은 차로 옮겨타야한다


차 뒤에는 액티비티를 즐기기 위한 안전장비가 실려있다


대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 달리는 기분


촬영 내내 우릴 도와주었던 크무족 친구들


그리고 우리들



출발하기도 전에 낭패,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자이언트 트리

우돔싸이 정글의 입구 역할을 하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최종 장비와 프로그램 점검을 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내가 PD님과 들어가서 직원을 만나고 있는 사이 현재가 잠깐 밖으로 나가더니만 이내 팔 한쪽에서 피를 흘리며 들어왔다. 깜짝 놀라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니 밖에 세워진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넘어져 자갈에 긁혔다는게 아닌가. 이건 뭐 본격적으로 정글에 들어가 뭘 해보기도 전부터 낭패가 아닐수 없다. 급한대로 반창고를 잘라서 팔에 감아줬는데 방송에서도 다친 팔이 아주 잘 보였다. 관찰력이 있는 주변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고생을 했길래 저 지경을 하고 방송을 촬영했냐고 물어봐오기도 했다.



촬영 시작도 전에 혼자 다치고 온 현재. 촬영감독님과 다정한 한 때


어쩔수 없이 응급처치하고 강행군했다


크무족 주민 보판씨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는 길


걷다 보면 몇 백년 씩 된 큰 나무들이 무성하다


이 숲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는 어디 있을까?



다친건 다친거고, 일정대로 촬영은 계속되어야만 했다. 정글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찾으려 했던건 400살이 넘은 자이언트 트리였다. 자연물에 신이 있다고 믿는 크무족이 신성시하는 나무라고 하는데 사전답사가 없다보니 사진 한 장과 주워들은 이야기만으로 찾아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길은 험해졌고 무성하게 자란 덤불들이 자꾸만 앞을 가로막았다. 이끼로 뒤덮힌 바닥은 상당히 미끄러워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발목을 삐끗하기에 딱 좋아보였다.

계속해서 직진하는데 우리의 안내를 맡은 보판씨가 말이 없다.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물어도 묵묵부답이고 자이언트 트리의 위치에 대해 횡설수설하는게 영 불안하다. 알고보니 우리가 지나쳐온 나무 하나가 사진속의 자이언트 트리였고, 그렇게 생긴 나무가 숲 속에 꽤 여럿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 속에선 굉장히 커 보이는 나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크지 않았고 생각보다 화면에 멋지게 나오지 않아 방송에서는 잠깐 지나가는 정도로만 비춰졌다.



400살도 넘은 나무. 밑동에는 큰 구멍이 있었는데


성인 셋이 들어가도 거뜬할 정도였다. 실제로 숲에서 비를 피하기 위한 피신처 역할도 한단다


430살로 추정되는 자이언트트리 앞에서 기념촬영!



축 늘어진 나무줄기를 로프마냥 붙잡고 올라가보라는 PD님의 주문을 충실하게 이행했으나, 가만 생각해보니 신성시하는 나무를 놀이기구처럼 대하는게 너무 무레한 것 같아 편집과정에서 삭제를 요청했다. 이 장면은 방송에서 현재가 나무의 둘레를 돌며 크기를 가늠해보는 장면으로 대체되었다.


계곡을 건너고,


외나무 다리를 지나,


계속해서 걷다 보면,


사막 속의 오아시스, 아니 정글 속의 남깟 폭포를 만나게 된다!

 


남깟 폭포에서 수영하기,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기대보다 실망이 컷던 자이언트 트리를 뒤로하고 두 번째 찾은 곳은 폭포였다. 우돔싸이 정글 안에는 크게 두 곳의 폭포가 있는데 그중 우리가 찾은 6월달에 수량이 풍부한 곳은 남깟 폭포라고 했다. 이 역시 사전 답사가 없었다보니 일단 찾아가서 상황을 보는 수밖에 없었고, 혹시라도 기대했던 것과 다르면 그대로 시간을 까먹고 분량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신선이나 선녀라도 튀어나올 법 한 비주얼


무더운 열기를 조금 식혀가는 시간


피디님을 따라 폭포수 바로 아래까지 헤엄쳐보기도 했다



또 다시 정글을 열심히 걸어 도착한 남깟 폭포는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였다. 남은 라오스어로 물, 깟은 춥다라는 뜻이라고 하니 물이 차가워 붙은 이름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었다. PD님은 폭포수 아래에서 수영하며 더위를 식히고, 가능하면 떨어지는 폭포수도 맞아보자고 했다. 곧바로 준비된 헬리캠이 우리 머리위로 떠오르고, 내친김에 웃통까지 벗어던졌는데 물이 얼마나 깊은지, 폭포수 아래 혹시 와류라도 있는건 아닌지 정보가 없으니 살짝 겁을 먹었다. 언저리에서 자꾸만 맴도는 우리를 보다못한 PD님은 직접 물에 뛰어들어 폭포수 아래로 우리를 이끄셨다. 현재는 포기, 나는 용기있게 폭포수 바로 아래까지 헤엄쳐 갔지만 시간관계로 방송에서는 가차없이 편집당했다.



정글에서는 줄 위를 걷기도 하고,


줄 아래 몸을 맡겨볼 수도 있다

 


집라인, 정글을 이동하는 가장 빠른 방법

남깟에는 정글을 가로지르는 총 아홉개의 집라인이 설치되어있다. 가급적 자연 훼손을 최소화 하며 건설하려다보니 코스는 지그재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집라인은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초급 액티비티지만, 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별로 무섭진 않았고 속도를 즐기는게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맨 몸으로 무성한 밀림을 가르며 날아가는 기분이 짜릿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현재는 처음에는 조금 겁내긴 했어도 이내 적응하고 나중에는 고프로를 들고 셀프 카메라까지 멋지게 성공해냈다.



교육방송답게, 출발 전 안전장비 착용 장면은 매우 비중있게(?) 다뤄진다


금새 적응해버린 출연자 1인. 물론 손을 저렇게 놓고 타는건 매우 위험하다!


각자 고프로를 들고 셀프 촬영을 진행했다


현재도 열심히 중계중


각자 본인이 얼마나 빨랐는지 침튀겨가며 자랑하는 중


집라인의 특성상 촬영이 아주 힘들었다. 고생하신 촬영감독님


촬영자 역시 이렇게 고프로를 들고 직접 많은 일들을 해야했다



촬영할 당시에는 시원한 영상미 덕분에 방송에 잘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우리 방송일보다 이틀 앞서 방영된 시청자특집 캐나다 팀에서 더 길고 높은 집라인을 선수치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 아홉번이나 타다보니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줄을 잡고 역주행해서 도착하는 장면만 따로 연출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가장 짜릿했던 암벽하강, 헬리캠으로 찍으니 더욱 멋지다


40여 미터의 암벽을 줄 하나에 의지해서 내려가는 중이다


내려와 올려다보니 정말 높기는 높다


 

암벽등반, 제일 재밌었지만 방송에 안나와 아쉬웠던

정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암벽 등반이다. 40m 정도의 암벽을 맨 몸으로 올라갔다가 로프 하나에 의지해 내려오는 액티비티였다. 사실 이 암벽은 방송에 꽤 길게 등장했던 트리하우스로 들어가는 집라인을 타기 위해 올라와야 하는 곳이다. 순서상 암벽에 올라 트리하우스 분량 촬영을 모두 마친 후에 내려가는 길에 로프를 탔었다.



일단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 것 부터가 일이다


안전을 위해 허리줄을 한 칸씩 옮기면서 이동해야만 하는데, 나름 재미있다


암벽 정상에 도착, 이제는 하강할 차례


무사히 하강 완료! 신발이 좀 미끄러워서 혼났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현재도 성공. 기특해서 머리 쓰다듬어주는 중



개인적으로 암벽등반 혹은 빙벽등반은 언제가 꼭 하고싶은 취미 중에 하나다. 촬영 시간이 촉박해서 암벽 하강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으나 내가 꼭 하고싶다고 주장해서 촬영하게 되었다. 핼리켐까지 띄워 깎아지는 듯한 암벽을 내려가는 내 모습을 멋지게 잡아주셨지만 아쉽게도 방송에서는 일체 나가지 못했다. 대신 SNS판 예고편 홍보영상에서 잠깐이라도 등장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 할까나.

잠깐이었지만 암벽등반을 해본 소감은, 내가 생각보다 소질이 꽤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 검도와 자전거를 즐기며 팔다리 근육을 열심히 키운 덕분인지 올라가고 내려가는데 현지인들보다 더욱 능숙하고 안정적이었다. 이번 라오스여행을 통해 얻은 자신감 중에 하나다. 언젠간 본격적인 암벽등반을 꼭 하고 말리라.



정글의 나무 위에는 집도 있다?


집라인을 타고 공중을 날아 집으로 들어가는 길


그래도 있을건 다 있는 엄연한 집이다


구조적인 특징을 급하게 설명하는 중


미리 준비해 온 커피를 마시는 시간


나무 위에서 맛보는 라오스 커피의 맛이 아주 특별하다


커피 먹고 신난 우리들



트리하우스, 나무 위에서 맛보는 특별한 여유

정글 탐험의 대미를 장식한건 트리하우스였다. 나무위 50m 상공에 건설된 트리하우스는 원한다면 숙박까지 할 수 있는 엄연한 집이었다. 이곳에 들고나기 위해서는 앞서 등장한 암벽을 맨 손으로 기어 올라와 집 라인을 타고 절벽을 가로질러 날아야만 한다. 두 개의 집라인이 높이차를 두고 지그재그로 설치되어 있어 각각 입장, 퇴장의 역할을 하는게 아주 흥미로웠다.

리조트 측에서는 트리하우스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걸 추천했지만 비박은 푸야카 산 정상으로도 충분했다. 전기도 없고 장소가 협소하다보니 안전상의 문제로도 촬영이 어려워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우리는 라오식 커피 한잔을 즐기며 주변 경치를 즐기는 연출을 하기로 했다. 이 장면을 위해 정글로 들어오면서부터 보온병에 커피를 준비해왔는데, 방송을 본 지인들 중에는 정글 한가운데서 갑자기 커피가 나와서 어색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트리하우스에 출입하는 방법은 단 하나 뿐, 집라인을 타고 들어갔다가...


다시 집라인을 타고 나와야 한다



건축가 자격이 아닌 일반 시청자로 출연했지만, 유일하게 전공 분야의 대사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실제로 트리하우스는 구조가 독특했는데, 밑에서 지지하거나 위에서 매다는 방식이라기 보다는 정말 새 둥지처럼 Y자로 갈라진 가지 중간에 걸터 앉은 듯 세워져 있었다. 준비된 대사는 아니었지만 트리하우스의 구조에 대해 즉석에서 보이는 대로 열심히 읊어보았고, 방송에도 그대로 나왔다.



이틀간의 정글 촬영을 마치고, 숲 속에서 맛보는 꿀맛같은 점심


물론 시간이 없어서 촬영 중간중간엔 이런 주먹밥으로 끼니를 대신했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한다!


질수없뜸!


 

식사

원래 하루 만에 끝내려고 했던 정글 탐험 촬영은 사전 답사의 부재와 의사소통 문제로 하루가 더 걸려 마무리됐다. 체력소모도 많고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 않다 보니 배가 많이 고프고 지쳤었는데 그 곳에서 먹었던 것들을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라오스 사람들의 특징중에 하나는 밥 시간을 절대로 지킨다는 것이다. 아무리 일이 바쁘더라도 식사시간을 준수하는건 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와 함께했던 크무족 현지 가이드들 역시 촬영이 바쁘게 진행되는 중간에도 밥시간이 되면 딱 자리를 펴고 앉아 유유히 식사를 즐겼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식사라는 신성한 의식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그 부분에서는 나와 현재의 생각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촬영 중간 잠시 인포센터로 내려와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기기도 했다. 인포센터래봐야 정글 한복판에 뻥 뚤린 건물 하나가 전부라 거진 야외에서 식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울창한 밀림으로 둘러싸인 가운데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채소 가득한 식사를 즐기는 기분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어느덧 이곳 정글과도, 라오스와도 작별해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와 정글을 함께 누비던 크무족의 초대를 받아 그들이 사는 전통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계속)



 

세계테마기행 라오스편 촬영후기 연재목록

(1) 그들은 어쩌다 라오스에 가게 된걸까?

(2) 패러모터와 핼리캠으로 방비엥의 하늘을 누비다

(3) 블루라군에서 수중동굴까지, 방비엥에서 물 만났다

(4) 루앙프라방 찍고 우돔싸이 들어가던 날

(5) 푸야카산 등반기, 은하수 아래 정상에서의 하룻밤

(6) 계곡을 지나 폭포를 건너, 우돔싸이 정글 탐험기

(7) 크무족과의 짧았던 인연, 그리고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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