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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에서 우린 하늘만 난 게 아니라 물 속도 탐험했다. 방송이 나간 이후에 지인들의 반응은 ‘뭘 그렇게나 많이 했냐’였다. 실제로 40분 방송 중에서 앞에 15분이 방비엥 촬영 분이었는데 패러모터, 슬로보트, 다이빙, 수영, 등산, 동굴탐험 등 온갖 액티비티가 짧게 휘몰아치고 지나가버리니 보는 사람 입장에선 좀 정신이 없었을 것 같다. 그야말로 육해공을 누비는 이틀간의 촬영이었고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정신 없었다.

 

방비엥의 서쪽, 평원과 석회산이 만나는 곳에 시크릿 라군이 있다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수영하고. 여긴 말 그대로 천국이다



‘시크릿 라군’, 방비엥의 상징에서 즐거운 다이빙을

블루라군은 방비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카르스트 지형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웅덩이로 큰 석회암 산 가까이에 형성되고 물 빛이 푸른색에 가까워 블루라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방비엥에는 크게 세 곳의 라군이 유명한데 우리가 찾은 시크릿 라군은 그 중 가장 마지막에 개발된 곳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다른 곳에 비해 관광객이 적어서 촬영이 편하고 비교적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촬영지로 낙점되었다.

 

방비엥 도심을 출발해 밴을 타고 시골길을 열심히 달리다 보면 깎아지는 듯한 석회산 자락 바로 아래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아담한 물 웅덩이가 나타난다. 촬영팀을 반갑게 맞아 주시는 이곳의 주인은 다름아닌 한국인. 라오스 관광 붐에 힘입어 넘쳐나는 블루라군의 인기를 분산시키고자 새롭게 개발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규모는 좀 작지만 나름 깨끗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보였다. 이곳 사장님께선 한국인과 결혼하셨는데, 덕분에 물놀이를 하고 나와서 한국 라면을 맛볼 수 있다는 점도 이곳의 매력 중 하나다.



물 위에서 똇목을 탈 수도 있고


노를 저으며 놀 수도 있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외나무 다리 결투도 했었다


결과는 나의 승!


즐거운 물놀이 후에는 맛있는 라면을



블루라군 물놀이의 하이라이트는 약 5m 높이의 다이빙대에서 로프를 잡고 뛰어내리는 프리다이빙이다. 여타 방송에서는 잔뜩 겁을 먹고 뛸까 말까 고민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었지만 우리 둘은 그냥 무조건 뛰는 거였다. 물 깊이도 한 5m 정도 된다고 하는데 원한다면 구명조끼를 입을 수도 있다. 나는 수영을 할 줄 알지만 너무 오랜만에 물에 들어가는 거였고 전날 먹은 술도 아직 덜 깬 것 같아 구명조끼를 입을까 잠시 망설이고 섰다. 헌데 현재가 먼저 웃옷을 훌러덩 벗더니만 잽싸게 다이빙대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괜한 경쟁심이 발동해 나도 그대로 다이빙대에 올라섰다. 혼자만 구명조끼 입으면 없어 보이잖아.



나무 구조물로 된 다이빙 대가 두 곳 있다


방송에 나갔던 나의 다이빙 장면


여긴 그 보다 조금 낮고 긴 코스



어떻게 하다 보니 내가 먼저 뛰게 되었다. 로프를 타고 내려가다가 손을 놓는 순간, 물 속으로 첨벙 하고 온 몸이 던져졌다. 순간 어제 먹은 술과 안주가 한번에 욱 하고 올라오는게 느껴지는데, 아차, 발이 닿지 않는다. 죽어라 발버둥을 쳐 겨우 빠져나왔지만 혹여 잘못 되는 건가 싶어 아찔했다. 물론 물 밖에서 얼굴만 찍고 있는 카메라에게 그런 사정까지 들키진 않았다.

 

그러고 나서 열 번 남짓 더 뛰었다. 처음과는 달리 하면 할수록 여유가 생겨서 나중에는 카메라에 어떻게 하면 멋지게 나올까 고민해가며 뛰었다. 지금 와서 보니 쓸데없는 노력이었던 게 결국 방송에 나간 건 가장 모양 빠지게 뛰었던 맨 처음 다이빙 한 번 뿐이었다.



방비엥에선 이런 풍경속에서 배도 탈 수 있다


일명 슬로우 보트,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느리진 않았다



쏭 강에서 느릿느릿 즐거운 물놀이, 슬로우 보트

방비엥에는 라군에서만 물놀이를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도시를 따라 흐르는 쏭 강에서는 슬로우 보트, 튜빙, 카약 등 다양한 물놀이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그 중 슬로우 보트는 유유자적 강을 따라 풍경을 감상하는데 제격이다. 이름처럼 그렇게 느리지는 않고, 모터가 달려서 제법 속도가 난다. 자연을 배경으로 배 타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두 번이나 배를 탔다. 배 위에서는 무전기로 신호 받아가며 손 짓, 발 짓 하나 까지 신경썼지만 드론으로 찍은 화면을 보니 너무 작게 나와 그럴 필요가 없었던것 같다. 



밀림을 헤치고 동굴 입구를 찾아가는 길


아주 작은 입구를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촬영용 조명 때문에 밝아 보이지만 실제론 암흑이다


종유석, 석순 등 동굴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탐 파분 동굴탐험, 5초를 위해 두 시간을 촬영하다

방비에는 동굴 속에서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블루라군 바로 옆에는 카르스트 지형의 석회 동굴인 탐 파분 동굴이 있다. 역시 관광코스로 개발되어 헬멧과 손전등을 대여해 들어갈 수 있다. 여건상 사전 답사 없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긴 했어도 이 동굴이 이렇게나 깊고 험난 할지는 미처 몰랐다. 한국 관광지의 동굴처럼 로프나 계단 등이 설치된 것이 아닌 거의 자연 그 자체였다. 들어가는 입구 역시 성인 한명이 몸을 숙여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정도였다.



깊숙히 들어가면 제법 넓은 공간도 나온다


동굴을 자세히 관찰하는 (연출된) 장면


실제로 꽤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았다


방송에는 나오지 못했으나 흥미로웠던 장면


큰 종유석을 손으로 살살 두들기면 악기 소리같은게 난다, 가이드의 시범

 


동굴 안에서도 많은 촬영이 있었는데 종유석을 열심히 관찰하는 연출도 하고 동굴 벽을 악기 삼아 연주해보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물론 모조리 편집 당하고 달랑 5초 나갔다. 동굴 후반부에는 성인 가슴 높이까지 지하수가 차있는 구간을 걸어서 지나야 했는데 아무런 정보도 없이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존해 입수하는게 조금 겁나긴 했다. 촬영 장비가 하나 고장 나고, 물 속에서 날카로운 바위에 손가락이 조금 찢어진 것 말고는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 한국에서 해보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이었는데 방송에 너무 짧게 나가 아쉬울 뿐이다.



탐험의 대미를 장식했던 수중동굴 구간에 진입


잠수까진 할 필요 없었지만 물 깊이가 꽤 있어서 겁이 났다


 

그 외 통편집 당한 수 많은 아이템들: 아침시장, 바시의식, 닭싸움, 때까또

그동안 사무실에만 계시다가 오랜만에 현장으로 복귀하셨다는 PD님은 누구보다 열정이 넘쳤다. 방송 분량이나 구성에 대한 욕심도 많으셨고,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까지 하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통편집당한 아이템도 상당히 많았다. 방송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일들을 하고 많은 장면을 찍었었다.



아침시장 촬영을 위해 일찍부터 서둘러 나왔다


아주머니께 옥수수를 사서 먹어보기도 하고


바오씨를 따라 시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보기도 했다


시장 한 켠에 마련된 푸드코트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군내가 너무 심하게 나서 차마 먹지 못했던 나의 아침 메뉴. 또르르



‘바시’는 집에 찾아온 손님을 위해 손목에 명주실을 일일이 묶어주며 건강과 안녕을 빌어주는 전통 의식이다. 최초 스토리 구성은 방비엥의 아침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바오씨와 인사를 나누고, 바시 의식에 필요한 물품들을 장봐 그의 집에 찾아가는 것이었다. 시장 씬을 촬영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바오씨는 머리에 기름칠까지 하고 왔지만 어설픈 연기와 영상미의 부족으로 통편집 당해버렸다. 불쌍한 바오씨.


 

비운의 사나이 바오씨. 촬영을 위해 아침부터 꽃단장 했건만...


바시 의식을 위해 바오씨의 집으로 가는 길



바시 의식을 위해 그의 집에도 방문했었다. 정말 많은 가족들이 함께 살고있었고, 촬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옆 마을에 사는 친척들까지 모이셨다고 한다. 손수 닭을 잡으시고 멀리 한국에서 온 낯선 손님을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시는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맛있는 음식을 한상 거하게 대접받았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현지 식으로 바닥에 앉아 손으로 음식을 먹었는데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다들 좋아하셨다.



일종의 제단 앞에 모여 바시 의식을 시작한다


내 손에 일일히 명주실을 묶어주시는 가족 분들


우리도 할머니께 묶어드리며 건강과 행복을 빌어드렸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함께 먹는 식사


 

바시 의식이 시작됐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부터 새로 시집온 젋은 며느리까지,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일일이 내 앞에서 복을 비는 주문을 외우며 명주실을 묶어주시는데 형언할 수 없는 감동 그 자체였다. 나도 뭐라도 말씀드리고 감사함을 표하고 싶은데 라오스어를 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었다. 아침 시장에서의 촬영이 부족해서인지 아쉽게도 집에서 촬영한 장면 또한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같은 의식을 우돔싸이에서 한번 더 하게 되어 그 의미는 충분히 전할 수 있었다. 이날 묶어 주신 명주실을 한국에 돌아갈 때 까지 잘 간직하고 싶었는데, 촬영 순서와 편집 순서의 차이 때문에 집을 나오자마자 곧바로 끊어버려야 했다. 그때 정말 그분들께 미안했다.



이번엔 자리를 옮겨 닭싸움장으로


열심히 싸우는 닭들의 모습이 어딘가 애처롭다


그렇지만 라오스 사람들에겐 최고의 놀이거리라고 했다


 

닭싸움은 현지 젊은이들이 가장 즐기는 놀이 문화라고 했다. 돈을 걸고 승리를 내기하는 일종의 도박 같은 건데 농촌에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적당한 문화생활 거리가 없어 최고의 인기라고 했다. 커다란 원형 경기장에서 싸움이 시작됐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도박의 유해성 같은 이성적인 판단이 들기에 앞서 경기에 임하는 닭들의 몸짓과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압도되어 버렸다. 한 시간 정도 경기를 보는 내내 현재는 혼자 마이크를 들고 마치 중계하듯 뭔가를 열심히 읊었으나 이 또한 방송에는 나오지 못했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선수들


싸움에 나서기 전후, 닭들은 전문가의 세심한 관리를 받는다



경기장 한 켠에는  싸움 닭을 관리하는 전문 인력들이 따로 있었다. 피부와 털을 정갈하게 다듬어주고 건강에 좋은 사료들을 먹여가며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그야말로 전담 코치이자 팀 닥터였다. 싸움에서 지고 상처 투성이로 변해버린 닭들의 모습은 처참하고 잔인했지만, 젊은이들에게 적당한 문화생활이 주어지지 못해 닭싸움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했다.



때까또(세팍타크로) 경기가 벌어지던 곳


해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한판!


경기 결과는 중요치 않다. 굿게임!


 

마지막으로 편집 당한 아이템은 세팍타크로다. 라오스에서는 때까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대나무 공으로 족구 비슷하게 하는 경기인데 아시안게임 종목으로도 등장해 한국에 알려진 바가 있었다. 원래는 동굴 탐험을 마치고 찍기로 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동굴에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해가 넘어가는 바람에 제대로 촬영하지 못했다. 그래도 두 출연자는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열심히 경기에 임했는데, 내가 찬 공에 코를 맞은 현재가 코피를 흘려 사실상 경기는 강제 종료되어버렸다.


 

마라케시 뺨치는 분위기의 야시장 발견!


이런 분위기에선 뭘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쫀득한 식감이 예술이었던 돼지고기와 라오스식 김치까지


조명이 없으면 우리가 만든다! 촬영 소품을 이용하는 기막힌 센스



방비엥에서의 마지막 만찬, 활주로에서 먹는 돼지고기

정신없이 진행되었던 방비엥에서의 촬영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 만찬 장소인 첫날 패러모터를 탔던 마을 뒤쪽의 활주로에 모여 앉았다. 낮에는 없었던 작은 음식 가게들이 야시장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날 여기서 먹었던 돼지고기 구이의 맛은 정말 평생을 통틀어 최고였다. 변변한 자리가 없어 적당히 주변에 있는 상자를 끌어다가 의자 삼아 둘러앉았다. 촬영용 조명을 가운데 세워놓은 감독님의 센스 덕분에 더없이 완벽한 저녁식사였다. 

이제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다시 방비엥을 떠나 우돔싸이로 이동하게 된다. 우돔싸이는 라오스 북부의 산악지대로 되어있는 주이다. 한국인들에게 워낙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 남쪽의 관광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일거라고 기대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탐험가 정신은 우리 두 출연자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자, 여기 라오스까지 올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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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테마기행 라오스편 촬영후기 연재목록


(1) 그들은 어쩌다 라오스에 가게 된걸까?

(2) 패러모터와 핼리캠으로 방비엥의 하늘을 누비다

(3) 블루라군에서 수중동굴까지, 방비엥에서 물 만났다

(4) 루앙프라방 찍고 우돔싸이 들어가던 날

(5) 푸야카산 등반기, 은하수 아래 정상에서의 하룻밤

(6) 계곡을 지나 폭포를 건너, 우돔싸이 정글 탐험기

(7) 크무족과의 짧았던 인연, 그리고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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