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빌라(Ávila)를 출발한 기차는 다시 고원을 가로질러 살라망까(Salamanca)에 도착했다. 마드리드로부터 약 220km, 기차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와 같은 '대학도시'다. 1218년에 설립된 살라망까 대학은 중세 유럽의 지성을 이끄는 한 축이 되었고, 15세기 말에는 스페인 예술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지성의 숨결은 오늘날까지도 도시 구석구석에 깃들어 살라망까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살라망까는 스페인 전역에서 까스떼야노(Castellano-스페인 중부 까스띠야지방의 언어, 현대 스페인어의 기원이다.)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스페인을 찾는 사람들에겐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보다 더 친숙한 도시일지도 모르겠다.




 아빌라와 살라망까는 마드리드 근교 여행지로 유명한 도시들이다. 우리의 목적은 그저 구도심을 걸어보는 것이었기에 하루만에 두 도시를 섭렵하는 강행군을 택했다. 오전 나절에 아빌라에서 빵 쪼가리로 허기를 달래고 살라망까 역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두 시 무렵. 더 이상은 걸을 수 없을것 같아 역 근처 중국식당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스페인의 물가는 전반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정도다. 시장에서 구입하는 육류나 채소의 가격은 한국보다 조금 저렴하다. 반면 외식비는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동네의 허름한 로컬식당에 가도 점심 한끼에 10유로 밑으로는 먹기가 힘들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점심 한끼라는건 첫번째 요리(Primero Plato), 두번째 요리(Segundo Plato), 디저트(Postre)로 이루어진 일종의 '코스' 개념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하겠다. 어쨌거나 배고픈 여행자 입장에서는 1유로짜리 맥도날드 햄버거와 10유로가 넘는 오늘의 메뉴(Menu del dia)의 중간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늘 고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고민의 해결책이 바로 '중국식당'이다.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중국식당이 없는 곳은 없다. 상대적으로 이민자들이 많은 스페인의 경우엔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스페인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보통 점심메뉴가 12~15유로 하는 반면, 중국식당의 점심메뉴는 8~10유로 정도다. 저렴한 가격만큼이나 매력적인건 식당별 맛의 편차가 적다는 점이다. 어느 식당을 들어가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을 보장할 수 있으니 허기를 달래기엔 이보다 좋은 선택이 있을까 싶다.

 살라망까의 중국식당 또한 우리에게 '보장된 맛'을 제공했다. 한끼 배불리 먹고 나왔어도 동전 몇개로 값을 치룰 수 있어 좋았다. 






 역에서부터 구도심 쪽으로 걸어가면서 건물들이 하나둘 황금색 옷으로 갈아입는다. 살라망까 구도심의 거의 모든 건물의 외벽은 황금빛에 가까운 사암으로 되어있다. 도시 전체가 한가지 돌을 사용한다는 건, 보통은 그 지역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는 뜻이다. 아마도 살라망까 근교에선 저 황금색 사암이 흔하게 나는 모양이다. 근처에서 쉽게 구할수 있는 재료로 건물을 짓는다는건 너무나 쉽고도 당연한 소리지만,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도시의 인상은 생각보다 강렬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살라망까는 나에게 여전히 '황금빛 도시'로 각인되어 있다.

 사진의 문으로 들어가면 구도심의 중심인 마요르 광장(Plaza Mayor)이 나온다. 살라망까 도보여행은 이곳에서 시작해 이곳에서 끝난다.





 대학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마요르 광장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나른한 오후의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여행하며 사용한 카메라가 초점거리 35mm 짜리였는데 이때는 광각렌즈가 진심으로 그리웠다.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광장이지만 한 화면에 담기에는 화각이 턱없이 부족했다.





 광장을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살라망까 구도심 유랑에 나섰다. 구석구석 볼거리들이 많지만 걸어서 세 시간 정도면 둘러보기에 충분하다. 마침 가지고간 론니 플래닛에 구도심 지도와 추천코스가 있어 그대로 따라 다녔다. 설령 지도가 없더라도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대충 골라잡아 따라다니면 그리 어렵지 않게 주요 볼거리들을 찾아갈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모두 비슷한 황금빛 건물 일색 같지만 규모도, 쓰임도, 디테일도 전혀 다르다. 개중에는 학교나 수녀원 같이 소박한 건물들이 있는가 하면, 또 바로 옆으로 부유한 상인의 집이나 귀족의 저택이 붙어있기도 했다. 마지막 사진 오른쪽은 일명 '조개의 집'이라는 곳으로 구도심의 최고 인기 건물이다. 본래 고급 주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현재는 중정을 일부 개방하여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쩌면 조금 괴기스럽기까지 한 외벽의 조개 조각들은, 건물을 마치 오래된 오르골 상자나 패션 가방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마저 불러 일으켰다.







 살라망까의 까떼드랄(Catedral, 대성당) 또한 마요르 광장 만큼이나 유명하다.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하면 보통 부르고스(Burgos) 대성당을 꼽곤 하는데, 살라망까의 대성당 역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명작이다. 특히나 웅장한 규모와 대비되는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출입구 파사드가 일품이다.

 실내로 들어오니 나무 조각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성가대석이 눈길을 끌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녀보니 밖에서 보는것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건물이다. 종탑으로 오르는 작은 계단은 예배당 뒷편의 작은 발코니에서 끝나버렸다. 밖으로 통하는 다음 계단은 발코니에서도 한참을 더 가야 있다. 오르는 길도 복잡하고 이리저리 갈래가 있어 표지판을 잘 따라가야 헤매지 않을 수 있다.






 좁은 길은 피어(Pier, 성당의 큰 기둥)를 돌아서는, 다시 지붕과 천장 사이의 복도를 헤집고 나가다가, 별안간 바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보통 대성당의 꼭대기를 오르는 길이라고 하면 높이 차이는 좀 있을지 몰라도 위아래로만 통하는게 보통이다. 이곳 처럼 평면상으로 많이 돌아다녀보기는 또 처음이다. 그래도 나름 대성당의 비밀스런 속살을 엿보는 것 같아 재밌었다.

 함께 성당을 돌아보던 현재는 갑자기 피로를 느꼈는지 꼭대기에 올라가기를 거부했다. 여기까지와서 포기하는게 말이되냐며 여러번 채근했지만 묵묵부답. 결국 나 혼자 다녀올 때까지 아래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마침내 오른 정상.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살라망까는 골목에서 올려다본 것과는 또 다른 색채를 가득 담고 있었다. 이 멋진 풍경을 함께 봤으면 좋았으련만 현재는 왜 안올라오겠다고 고집을 부린걸까. 다시 왔던길을 되돌아 내려가보니 성도용 의자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었다. 1년이 넘도록 여행을 한다는건 이렇게 멋진 풍경을 앞에 두고도 수면을 취해 체력을 보충해야만 하는 그런 것이었을까. 높은 곳에서 찍어온 사진들로 약을 올려줄까 했는데 심지어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별 반응도 없다.






 어느덧 도보투어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살라망까에 오면 꼭 한번은 해야할 이름하야 '숨은 개구리찾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은 살라망까 시민대학교 건물(Universidad Civil)의 파사드다. 이곳 벽면을 장식한 수 많은 조각들 중에서 단 하나의 '개구리'를 찾아내는 것이 일종의 전통이라고 한다. 혼자 힘으로 개구리를 찾아내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온다고도 하고, 1년 안에 결혼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전혀 개연성 없어보이는 우스꽝스러운 놀이 같지만 실상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개구리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우리도 동참해서 고개를 들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마침내 찾아낸 개구리는 생각보다 작고 볼품없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거나 덕분에 우리의 여행에도 행운이 함께 했었을런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해가 서편으로 기울수록 황금빛 건물들의 색채도 더욱 짙어져만 갔다. 해질녘 거리에는 가벼운 발걸음의 젊은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낮에 본 살라망까가 점잖은 황금빛의 학문의 도시였다면, 아마도 한밤의 살라망까는 젊음으로 반짝이는 전혀 다른 황금빛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론니 플래닛에도 재미있는 구절이 하나 있어서 여기 옮긴다. 


'학생들이 많은 이 도시는 밤이 되면, 놀이터로 완벽하게 변신한다. 하지만 자정은 넘어야 놀이는 시작된다. 공부는 하는지 의심될 정도다!'

 





 살라망까의 즐거운 밤이 시작될 즈음, 우리는 마드리드의 아늑한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걸어다녔더니 금새 배가 꺼져버렸다. 오늘의 저녁메뉴는 햄과 옥수수를 넣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다. 오랫동안 여행하며 맛있는것 한 번 배불리 못먹었을 현재를 위해, 함께하는 한달 동안은 기꺼이 전속 쉐프가 되어주기로 했다. 남자 둘이 먹는거라 앞접시도 없이 앉은 자리에서 후라이팬 채로 해치워버렸다.


 우리는 마드리드에서 며칠간의 휴식을 가진 뒤 마지막 조각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드디어 안달루시아(Andalucía)다! (계속)






공유하기 링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