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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스띠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은 바야돌리드를 중심으로 마드리드 서북쪽 지역을 넓게 아우르는 행정구역이다. 넓고 평탄한 고원지대와 건조한 기후는 스페인 내륙지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덕분에 까스띠야 이 레온은 이러한 환경에 아주 잘 맞는 '하몬(jamón)'과 '와인'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하몬은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수 개월 이상 건조시킨 스페인의 전통 음식이다. 상온에서 매달아두고 보관하기 때문에 건조한 날씨는 필수다. 우리나라처럼 습도가 높은 곳에선 수입해오는 것 조차 쉽지가 않은 음식이다.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 역시 건조한 날씨와 물이 잘 빠지는 마른 토양에서 잘 자란다. 

 그야말로 스페인의 정체성과도 같은 하몬과 와인이 바로 이 지역의 자연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스페인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 까스띠야 라 만차의 돈키호테였다면, 먹고 마시는 몸의 고향은 바로 이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짧은 포르투갈 여행을 마치고 돌오기가 무섭게 다음 여정을 재촉했다. 까스띠야 이 레온으로 향하는 기차는 마드리드 북쪽의 차마르띤(Chamartín)역에서 출발한다. 조금 부지런을 떨어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하늘이 채 밝아지기도 전에 기차역에 도착했다. 분주해지기 시작하는 거리 위로 마드리드에서 가장 높은 네 개의 빌딩이 보인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마드리드에서 네 건물의 윤곽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규모나 높이가 상당히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조형을 통해 개성을 뽐내고 있다. 얼핏 보면 트로피를 주르륵 진열해 놓은것 같기도 하다. 속으로 네 쌍둥이 건물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물론 이란성이다. 





 역사 안은 꽤 한가했다. 상점들도 이제서야 슬슬 아침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차표를 구매하고 시간이 남아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조그만 커피집 바에 앉아 막 준비중인 츄로스 꼰 쵸꼬라떼(Churros con Chocolate)를 주문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 츄로스(Churros)를 아침으로 즐겨 먹는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길거리 주전부리로 흔해졌지만 보통 시나몬과 설탕을 잔뜩 찍어 먹는 것으로 알고있다. 하지만 여기선 걸쭉하게 데운 핫초코(Chocolate)를 듬뿍 찍어 숟가락째 퍼먹는게 일반적이다. 심지어 젊은 친구들은 술먹은 다음날 해장으로 먹기도 한다. 잘 상상이 잘 안가지만, 초콜릿이 별로 달지 않아 뜨끈한게 생각보다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아빌라(Ávila)를 거쳐 살라망까(Salamanca)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스페인의 기차는 유럽을 통틀어서도 손꼽을 정도로 시설이 잘 되어있다. 물론 그만큼 가격도 비싸서 유레일 패스 없이는 선뜻 선택하기 망설여 질 때도 있다. 기차에 써 있는 Media Distancia(메디아 디스딴시아, media distance)는 중거리를 운행하는 열차라는 뜻이다. 중부유럽의 인터시티(Intercity) 등급 정도로 보면 된다.



 당시 세계일주 중이던 현재는 오랜 여행으로 인한 피곤에 절어 있었다. 원체 아침잠이 많은 친군데 너무 일찍부터 집을 나와 피곤이 극에 달했던 모양이다. 기차에 타자마자 저렇게 모자를 내려 눈을 가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여행을 오래하며 자연스럽게 몸에 벤 습관인것 같아 신기해서 사진으로 기록해 두었다.




 쿨쿨 자는 현재를 옆에 두고, 조금씩 멀어져가는 마드리드의 지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기차가 제법 속도를 내기 시작했지만 멀리서도 네쌍둥이 건물은 한 눈에 알아볼 만큼 높게 솟아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벌써 아빌라에 도착했다. 인구 5만 정도의 작은 도시인 아빌라는 무심코 지나쳐도 모를 만큼 아담한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이 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모두 같은 곳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와 대성당(Catedral, 까떼드랄)이 바로 그것이다.




 까스띠야 이 레온의 도시 답게 이 곳의 고도는 무려 1,130m다. 우리나라 평창이 해발 700m임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높은 곳이다.

 스페인의 도시들을 걷다보면 이렇게 광고판 아래 아날로그 온도계를 자주 볼 수 있다. 자주가 아니라 거의 모든 도시에 있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습관처럼 현재 기온을 사진으로 찍어놓곤 했다. 아빌라의 이날 기온은 섭씨 2도씨. 아주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앙칼지다.





 여느 관광지들과 마찬가지로 안내판이 참 알아보기 쉽게 잘 되어있다. 하지만 기차역에서 구시가를 찾아가는 일은 표지판이 없어도 그리 어려울 것 없다. 큰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 보면 보이기 시작하는 성벽을 통해 구시가가 가까워졌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아빌라 구시가의 별명은 '시간이 멈춘 도시'라고 한다. 성벽으로 둘러 쌓인 오래된 중세의 마을은 중부 유럽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아빌라 만큼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은 드물다고 한다. 이제 성문을 지나 살짝 과거로 돌아가 볼까.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대성당(Catedral)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의 중심에 당연히 있음직한게 성당이지만 아빌라의 대성당은 조금 특별하다. 마을 중심이 아니라 한 쪽 성벽에 착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때문에 대성당의 한쪽 벽면 일부는 성벽을 공유하고 있다. 성벽이 곧 성당이고, 성당이 곧 성벽인 셈이다. 중세 유럽의 도시계획에서 구심점과도 같은 것이 성당이기에 아빌라의 성벽화된 대성당은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독특한 구조와 배치 때문에 사진도 잘 찍히지 않는다. 웅장한 전면부를 드러내기 보다는 성벽과 일체화 되어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빌라의 성벽은 총연장 약 2.5km로 구도심을 완벽하게 한 바퀴 둘러싸고 있다. 수 많은 전투를 겪고도 오늘날까지 그 위용을 잃지 않은 견고한 성벽의 모습에서 과거를 잠시 상상해 본다. 약 12m의 성벽은 적의 침략으로부터 아빌라를 지켜냈을 뿐 아니라 까스띠야 이 레온의 매서운 바람을 막아내는 역할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성벽 바깥으로 바로 접해있는 산따 떼레사 광장(Plaza de Santa Teresa) 근처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아침을 츄로스로 든든하게 먹어서인지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이 광장의 이름은 아빌라의 성녀 떼레사에서 비롯되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대 테레사라고도 불린다. 때문에 아빌라는 지금도 굉장히 종교와 신앙이 중요시되는 도시라고 한다. 이러한 종교적인 힘 또한 수 세기에 걸쳐 도시의 모습을 지켜온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감히 상상해본다.






 성벽 내부는 대성당이 있는 동쪽에 볼거리가 주로 몰려있다. 우리는 밖으로 빠져나와 둘레를 따라 걸어서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했다. 

 전체적인 성벽의 모습은 밖에서 보는 쪽이 훨씬 멋졌다. 단순히 벽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80여개에 달하는 탑과 망루 등이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어릴적에 동화책에서나 보면 그림이 눈 앞에 있었다. 그러고나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는 왜 어릴때 성벽을 그리라고 하면 꼭 저렇게 규칙적인 요철을 그렸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동양의 성벽에도 요철이 있지만 내가 그렸던 그림은 서양의 비례와 더욱 비슷했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도 그랬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성벽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야말로 까스띠야 이 레온 지방의 전형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광활하게 펼쳐진 메마른 고원 위로 성 밖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은 건물들이, 마치 미니어처라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걷다가 한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바로 성벽을 따라가는 길 전체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거의 만차 상태였다. 그 이유는 아마 구도심에는 차를 댈 공간이 많지 않아서일 것이다. 빈틈 없이 한 줄로 성벽을 따라 늘어선 차들이 마치 또 하나의 새로운 성벽처럼 보여 인상 깊었다.




 성벽을 따라 걷다가 자그마한 개울을 건너면 꽈뜨로 뽀스떼스(Cuatro Postes)를 가르키는 작은 표지판이 나온다. 뽀스떼(Poste)가 기둥이라는 뜻이니 직역하면 '네 개의 기둥'이라는 뜻이다. 실제 찾아가보니 사진 처럼 정말 네 개의 기둥이 덜렁 서 있는게 전부였다. 실제로는 성녀 테레사가 순교를 당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삼촌에게 붙잡힌 장소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 곳이 아빌라 성벽 전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꽈뜨로 뽀스떼스에서 바라본 아빌라 구도심의 모습이다. 이 쪽을 향해 살짝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지형 덕분에 둥근 성벽 전체의 모습은 물론이고 그 안에 들어선 집들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발품을 팔아서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보통 중세 성벽도시들은 근처에 높은 건물이 없어 한 눈에 조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차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성벽을 따라 걸어야 한다. 이번엔 성벽의 북쪽 길로 걸어보기로 했다. 아까 남쪽을 따라 왔으니 전체를 반시계로 한 바퀴 완전히 도는 셈이다.

 그늘 때문인지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주변에 마을이나 사람들이 없어 어째 스산하기까지 하다.



 심심해하며 걷고 있는데 빠라도르(Parador)를 가르키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빠라도르는 한마디로 오래된 건물이나 문화재를 숙소로 개조하여 스페인 정부에서 운영하는 곳을 말한다. 똘레도, 아빌라, 론다, 그라나다 등 주로 유명한 오래된 도시들에 하나씩 있는데 가격대도 좀 있고 성수기에는 예약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좋은 이유는 말 그대로 문화재급의 오래된 건물에서 하룻밤을 쉬어갈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하루 정도는 무리해서라도 꼭 가보고 싶었는데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아빌라의 시간은 멈춰있지만 우리의 시계는 빠르게 움직인다. 곧바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다시 기차에 올랐다. 아침에 탔던 것과 같은 살라망까행이다. 아침, 점심 두 끼를 밀가루만 먹었더니 속이 허하다. 아무래도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제대로 된 끼니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어느덧 다시 속도가 붙은 열차는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까스띠야 이 레온의 광활한 고원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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