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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되었다. 기숙사 한방에서 같이 먹고자며 학창시절을 함께한 친구들도 이제는 '십년지기'가 되었다. '10'이라는 숫자의 자릿수가 주는 부담감 때문일까. 친구를 만나면 술집부터 찾던 버릇도 조금씩 변해가는것 같다. 그러다 문득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그것도 이왕이면 남들이 쉽게 못하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한강을 따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종주 인증제'가 있다는 걸 알게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말 나온김에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한창 바쁜 근무시간, 잠시 회사 건물 밖으로 나와 고등학교 친구 Y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달이 가기전에 한 4박 5일쯤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할 계획인데 혹시 함께할 수 있겠느냐. Y의 대답은 흔쾌히 오케이였다. 그길로 자리로 돌아가 4일짜리 휴가신청서를 제출했다. '국토종주'라는 단어가 주는 비장함에 비하면 그 시작은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한 자락이었다.
 

오랜만에 라이딩.

 

 작년 초에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 블로그는 개점 휴업상태였다. 사회초년생 놀이는 블로그 뿐 아니라 자전거에서도 멀어지게 해버렸다. 철야후 침대에 돌아와 눕기 직전 늘 베란다에 놓여진 자전거가 보였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가끔 먼지를 닦아주며 언젠가 원없이 달려보자 다짐하는 것 뿐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밖에 나왔다. 그날은 3월 11일 화요일. 프로젝트 납품 후 보상으로 얻은 황금같은 평일 휴가였다. 국토종주를 떠나기에 앞서 몸도 풀고 서로 호흡도 맞출 겸 Y와 약속을 하고 아침 일찍 신정교에서 부터 안양천을 따라 한강 합수부로 달렸다. Y의 집은 멀리 원당이다. 우린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인 행주대교 남단에서 만나기로 했다.


늘 달리던 길지만 언제나 반갑다.


 학창시절 자전거로 통학하며 수 없이 한강과 안양천, 도림천을 오갔다. 길은 길이요 아스팔트의 거무스름한 빛깔도 그때와 변함없지만 더욱 신나는 라이딩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강을 끼고 하늘아래를 달린다는건 글자 몇개로는 감히 표현할 수 조차 없는 감동이자 전율이다.



아라뱃길로 가는 길, 도로 포장이 슬슬 안좋아지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내내 '서울 한강체'로 씌여진 표지판들이 경계를 넘기가 무섭게 평범한 고딕체로 바뀐다. 자전거를 타다보면 행정구역간의 빈부격차 같은게 의외로 눈에 잘 보인다. 이어진 길을 따라서 바퀴는 계속 구르지만 팔과 어깨를 타고 몸으로 느껴지는 충격을 통해 행정구역을 넘어왔음을 인지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나와 같은 미니벨로를 타고 와 주었다.


 친구 Y가 자이언트 미니벨로를 타고 나타났다. 난 미니 스프린터(로드 구동계를 사용하는 바퀴가 작은 자전거)를 주로 타왔기에 로드 유저라고 한다면, 이친구는 전문 MTB를 즐겨 타는 전혀 다른 성향의 라이더다. 고맙게도 이번 국토종주에선 나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어머님의 생활형 미니벨로를 타기로 했단다. 큰바퀴와 함께 달리면 힘들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랄까.



행동식은 자전거를 타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둘다 제법 자전거를 오래 탄 편이라 호흡을 맞추고 자전거 상태를 보는데는 별달리 신경쓸 게 없었다. 그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와의 수다에 정신이 팔렸다. 아울러 국토종주의 전체 일정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다. 자전거 도로만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연결되어있다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토종주를 마친 이 시점에서 하는 얘기지만 한강 자전거 도로처럼 부산까지 이어져 있을거라 생각하고 출발했다간 낙동강은 구경도 못해보고 쓸쓸히 서울행 버스를 타야할지도 모른다. 길도 길이지만 하루에 100km 이상 연속 5일을 타야하는 일정이니 '행동식(라이딩중 열량 및 에너지 보충을 위해 챙겨먹는 음식, 주로 초콜릿이나 사탕등으로 편하게 대체하기도 한다)'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Y는 이런쪽에선 좋은 '팀 닥터'역할이 되어주었다. 이번 아라뱃길 라이딩에도 삶은 달걀을 챙겨와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 재밌는 코스는 아니지만 좋은 테스트 라이딩이었다.


 김포한강갑문에서 인천아라갑문까지의 거리는 약 20km 정도. 사실 거리도 얼마 안될 뿐더러 길도 거의 직선이고 언덕같은게 없어서 그냥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국토종주 인증을 위해서는 인천 아라서해갑문과 김포 아라한강갑문 스탬프를 반드시 찍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한 번은 거쳐가야 되는 길이다.

 

 가장 재미없는 코스를 먼저 달려 둔 덕분에 본격적인 국토종주의 시작은 인천이 아니라 안양천 합수부에서 출발하게 된다. 우리는 서울로 돌아와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일주일 후를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계속)

 

*나는 따로 gps 앱을 켜지 않아 함께 달린 Y의 로그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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