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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부 이탈리아 여행 7일째. 밀라노에서(정확히는 바로 옆도시 베르가모에서) 시작한 여정은 동서로 지중해를 한번씩 찍고 한바퀴를 돌아서 다시 밀라노로 돌아와 있었다. 돌이켜보면 세계일주중인 현재와 마드리드에서 교환학생 생활로 바쁘던 내가 일정을 맞추고 여행 계획을 잡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결국 밀라노 인-아웃으로 루트가 굳어진건 마드리드-밀라노간 항공권이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중 제일 싼 편이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베네치아와 친퀘테레 때문에 다시 찾은 이탈리아에서 밀라노까지 여행하게 되었다.

 

 

 

오랜만의 제대로된 아침식사라 아껴둔 라면을 풀었다

 

 친퀘테레로 가는 밤샘 여정 후 오랜만에 발을 쭉 뻗고 잔것 같다. 밤 늦게 밀라노에 입성해서 미리 알아본 시 외곽의 허름한 호스텔에서 그렇게 하룻밤을 묵었다. 아껴두었던 한국 라면과 밥으로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를 든든히 해결했다.

 밀라노 여행기를 자질구레한 호스텔의 일상에서 시작하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베이런'이라는 미국 친구와의 인연 때문이다. 베이런은 밀라노의 호스텔에서 우연히 같은 방에 묵게 되어 알게된 친구다. 동유럽에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출발해 이 곳 밀라노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고 했었는데 얘기를 더 해보니 이친구 지금 마드리드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는 중이란다! 나도 지금 마드리드에 교환학생으로 살고있고, 내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거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그렇게 우리 셋은 금새 친구가 되었다. 우연치곤 대단한 우연이 아닌가. 심지어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타는 날짜까지 똑같았다.

 

마드리드에서 다시 만난 베이런, 왼쪽이 베이런이고 오른쪽은 그의 룸메이트 닉이다

 

 그렇게 우린 베이런과 하룻동안 밀라노 여행을 함께하고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알고보니 베이런이 사는 곳은 뜨리부날 역(Tribunal), 내가 사는 곳은 꽈뜨로 까미노스(Quatro caminos)역. 걸어서 10여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근처에 사는 마드리드 이웃이었다. 밀라노를 떠나며 우린 마드리드에서 다시 만날날을 기약했고, 여행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집으로 초대해 '닭볶음탕'을 대접했다. 난 교환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마드리드에 남아있는 베이런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그럼 다시 밀라노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밀라노는 두오모 하나 만으로도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도시다

 

 밀라노에서 우리가 머무르는 시간은 단 하루. 봐야할 것도 많고 사야할 것도 많은 밀라노지만 시간도 얼마 없는 김에 맘에 드는 곳만 골라서 여유롭게 다니기로 베이런과 말을 맞췄다. 호스텔을 나와 우리가 제일먼저 찾은 곳은 당연히 두오모(대성당).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한다. 고딕 양식 성당들 중에서만 보면 세계에서 제일 큰 고딕 성당이다.

 

 

 

 

 

두오모 앞의 광장은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1387년 착공을 시작해 무려 500여년간 쌓아올린 성당이라고 한다. 공사 기간이 길다보니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통일되어 있는게 아니라 고딕,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양식이 현란하게 혼합되어 독특한 개성을 만들어냈다. 피렌체의 두오모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는 꼭 들러보아야 할 매력적인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성당 내부는 무료입장이 가능한데 가방은 들고 들어갈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성당이라는 말처럼 내부는 빛이 너무 잘 들어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고딕 성당의 대표적인 특징은 벽체가 얇아지면서 창문이 커지게 되고, 그에 따라 스테인드 글라스 등이 발달하게 된 점인데 밀라노 두오모 역시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가득히 장식되어 있다. 흔히들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비슷비슷해 보이는 성당에 조금씩 지쳐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밀라노 두오모는 그런 지루함을 싹 지워줄 정도로 강한 인상의 성당이다.

 

 

 

 

밀라노 두오모의 진짜 묘미는 바로 지붕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실내 공간도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밀라노 두오모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다. 바로 성당 지붕을 일반에게 공개해서 직접 올라가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다른 성당들 처럼 정면에서 기념사진이나 몇 장 찍고 내부 한번 휙 둘러보고 끝나는게 아니라 지붕에 올라 버트레스나 작은 장식 첨탑 같은 고딕 건축의 요소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다만 지붕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5유로를 따로 내야한다. 그리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밀라노가 아니면 또 어디서 이런 멋진 성당 지붕에 올라가 보겠는가! 나같은 건축학도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곳이야 말로 고딕건축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

 

 신기했다. 늘 멀리서 작게만 봐야했던 고딕 건축의 자잘한 요소들을 눈앞에서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었다. 지붕 너머로 보이는 밀라노의 아름다운 전경은 덤이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일명 '여행자들의 피로를 한 번에 날려버릴 풍경'이란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

 건축에는 문외한인 여행 메이트 현재를 위해 열심히 침튀겨가며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건축으로의 양식적 변화라던지 건축적 특성들을 설명해줬다. 유럽의 성당이라는게 모르고 보면 거기서 거기처럼 지루하게 느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아주 간단한 지식이라도 가지고 다시 보면 또 전혀 달라 보이는게 성당이다.

 

 

 바로 이 영상! 현재랑 여행하면서 늘 유명 관광지 앞에서 춤추는 유쾌한 동영상을 찍어보자는 얘기를 했었는데 이날 밀라노 두오모 앞에서 실행에 옮겼다! 내친김에 옆에서 지켜보던 베이런까지 가세해서 무려 3인 댄스를 추게 되었다. 맨 앞의 파란 옷이 현재, 그 뒤가 나, 마지막에 들어오는 가방멘 친구가 베이런이다. 막상 춤추던 당시를 떠올려보면 조금 쑥쓰럽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기록이야말로 유쾌한 여행의 추억이자 즐거운 안주거리가 아닐까.

 

 

 

밀라노는 건축학도에게 있어서 참 즐거운 도시다

 

 베이런 이 친구는 우리보다 나이는 더 많지만 장난끼도 많고 참 유쾌한 사람이다. 두오모를 나와 같이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거리를 여기저기 걸어다녔다. 그러는 중간에 이탈리아의 명물인 젤라또도 맛보고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구시가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두오모 앞으로 돌아왔다. 두오모 왼편으로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라는 아케이드형 쇼핑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그 유명한 프라다 본점도 바로 이 아케이드 안에 자리하고 있다

 

 아케이드란 간단히 말해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유리로 된 천정을 씌워 실내 공간처럼 묶어놓은 건물 유형을 말한다. 요즘들어서 쇼핑몰이나 놀이공원 같은 대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유형이지만 알고보면 그 원형이 바로 이 곳 밀라노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다.

 

 

 이번에도 잠시 쉬어가는 코너. 아케이드 한 가운데 가면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오는 길이 만나게 되어있는데 그 좋은 자리에 맥도날드가 들어가 있는게 재미있어서 현재가 찍은 동영상이다. 프라다, 스왈로브스키, 루이비통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맥도날드라니!

 

 

 

 

 

 

 

 

밀라노의 명품거리는 배낭여행자에게 그다지 재미있는 곳이 아니다

 

 프라다도, 루이비똥도, 구찌도 우리 셋 앞에서는 맥도날드 만도 못한 매력지수 제로의 간판들이다. 흔히 밀라노 하면 떠올리는 명품거리인 나폴레옹 거리를 걸어봤지만 너무 재미가 없어서 금새 빠져나와 버렸다. 이런데는 나중에 여행이 아니라 쇼핑으로 와야 좀 흥이 나려나.

 

 

 

지는 해를 뒤로하고 우리는 북으로, 북으로

 

 밀라노 거리를 하루종일 헤집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번화한 구 시가지를 빠져나와 밀라노 중앙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이름은 '중앙(Centrale)역'이지만 밀라노 시 전체에서 보면 꽤 북동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구시가지를 조금만 빠져나오니 아까와는 또 전혀 다른 거리 풍경이 펼쳐진다.

 

 

 

맥도날드의 M이 이제는 밀라노의 M으로 보일 지경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기차역에 도착했다. 슬슬 배가 고파지려던 찰나, 배고픈 여행자들의 영원한 친구 맥도날드 싸인이 우리를 반긴다. 사실 너무 자주 먹어서 슬슬 지겨워지려고 했었는데 원래 1유로씩 하던게 여기선 반값인 50센트인게 아닌가! 그래서 또 먹었다.

 

 

 

보름간의 외도(?) 끝에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비행기...

 

 밀라노 중앙역에서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라이언에어 공항인 베르가모에 도착했다. 2012년 새해 첫날 세계일주 중이던 여행 메이트 현재와 처음 만났던 바로 그 곳이다. 이렇게 일주일간의 짧은 이탈리아 여행은 모두 끝이 났고, 우리가 탄 마드리드 행 비행기는 몇 시간 만에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이탈리아에서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건데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마드리드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길게 마드리드를 떠나 있었던 여행이었고 어느새 한국보다는 마드리드가 더 '집'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때 비행기 안에서 적었던 일기장을 다시 꺼내어보니 '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정신없는 단상들이 가득 적혀 있다.

 

 이탈리아 여행은 끝이났지만 여행 메이트 현재와 마드리드에서 함께 지내며 펼쳐지는 더욱 즐거운 일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어느새 마드리드 교환학생 생활은 그렇게 '시즌 2'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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