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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은 곧 ‘피에스따(fiesta, 파티)’다. 매일 밤 창문을 통해 길거리에 전해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시끌벅적한 분위기, 신나는 음악. 이제는 오히려 길거리가 조용하면 되려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 그만큼 피에스따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문화이자 곧 스페인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교환학생을 오기 전 알고 지내던 서어서문과 친구가 마지막으로 건넨 인사도 그랬었다. ‘잘 다녀 와’가 아닌 ‘피에스따 잘 하고 와’


 피에스따는 보통 밤 10시~11시 사이에 시작된다. 여기엔 별다른 규칙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사실 따로 없다. 그냥 누구 한 명이 자기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면 다같이 모여 새벽 3~4시까지 음식과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고 그러면 된다. 그나마 작은 규칙이라고 한다면 초대받아 피에스따에 가는 경우엔 간단한 음식과 술을 가져가 나누는 게 관례다. 난 한국사람이기에 자연스럽게 한국음식을 가져가거나, 혹은 우리 집으로 외국 친구들을 불러 한국음식을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 외국 친구들이 한국 음식들을 좋아 할지 어떨지 처음엔 좀 걱정을 했었는데 의외로 한국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래서 소개한다. 그 동안 마드리드에서 외국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즐겼던 한국 음식들!




김밥


 한국에 있을 때 김밥은 그저 소풍날 어머니가 싸주시던, 혹은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같이 먹던 음식에 불과 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하지만 이 곳 마드리드에서는 어떻게 하다 보니 마치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처럼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김밥은 만들기 쉬우면서도 ‘김’과 ‘밥’이라는 한국적인 식재료가 들어가고, 더군다나 처음 보는 외국 친구들도 직접 말아보고 만들어볼 수 있다는 재미가 있다. 또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고, 스페인의 특별한 재료를 넣어 새로운 창작도 가능하다. 파티 중에 안주처럼 쉽게 집어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라는 점도 굉장한 경쟁력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김밥은 피에스따를 위해 태어난 요리인것만 같다.



자기가 싼 김밥을 들고 좋아하는 친구들


 맨 처음 김밥을 선 보인건 호세네 집에서 열린 피에스따 때였다. 호세와 곤잘로는 한국에 와 본적이 있는 터라 김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심지어 그 날 호세네 집에 가보니 무려 ‘김발’이 있을 정도(김과 참기름 정도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더라). 마침 호세네 집 다른 식구들과 가까이 사는 다른 친구들까지 다 보이게 되어 본격적인 김밥 말기 대회(?)가 벌어졌다.


제각각 개성이 듬뿍 담긴 김밥 완성!


 처음엔 김밥을 어떻게 말아야 할 지 어쩔 줄 몰라 하던 스페인 친구들도 어느새 재미가 들려서 척척 만들어 낸다. 각자 원하는 재료로, 크기도, 모양도 자기 마음대로 한 줄씩 말았다. 어딘가 엉성해 보이지만 다들 초보 치고는 훌륭한 솜씨다. 사진 속 왼쪽에서 세 번째에 있는 ‘콤마(comma)’모양 김밥을 말았던 마리비는, 얼마후 혼자 다시 한번 김밥을 만들어 페이스북에 인증하기도 했다!

함께 나누어 먹으니 더 맜있는!


 이날 이후에도 김밥을 몇 번 더 먹었다. 우리집에 같이 사는 친구들이랑도 한 번 해먹고, 다른 피에스따에도 몇 번 더 등장했다. 어쩌다보니 한국인이 있는 곳이면 자연스럽게 김밥이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심지어 우리집 친구들은 나한테 ‘한국에선 김밥이 주식이야?’라고 물어보기도 해서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해물파전

 이번엔 뜨레스 깐도스(Tres Cantos)에 있는 마르따네 집에서 열린 피에스따. 우린 무슨 음식을 준비해갈까 한참 고민하다가 해물파전을 택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이리저리 서서 돌아다니며 음식과 술을 먹는 피에스따의 특성상, 너무 ‘식사류’ 보다는 핑거푸드나 쉽게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훨씬 좋다. 김밥과 마찬가지로 해물파전 역시 그런 피에스따의 성격과 참 잘 맞는 음식이다.

각자 하나씩 준비해온 요리들로 풍성한 식탁


 미리 만들어가면 맛이 없을것 같아 재료를 따로 준비해가서 즉석에서 부쳤다. 영어로는 ‘코리안 피자(Korean Pizza)’로 종종 소개되지만 스페인어로는 ‘또르띠야 꼬레아나(Tortilla Coreana)’라고 하면 금새 알아듣는다. 이름은 해물파전인데 사실 들어간 해물은 달랑 오징어 하나뿐. 그래도 반응이 어찌나 좋던지! 스페인 마드리드는 특히 ‘오징어 튀김’요리가 유명해서 마트나 시장에서 튀김용 오징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튀김용 오징어라는게 일반 오징어랑은 식감이 조금 달라서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오히려 한국 오징어로 만든 해물파전 보다 더 맛있는 느낌?

해물파전을 향한 호세의 열정!


 한국에 있을때부터 해물파전을 유독 좋아했다던 호세는, 피에스따가 끝나고 나한테 따로 와서 해물파전의 요리법을 물어갔다. 사실 요리법이랄것도 별로 없는 요리지만 열심히 한국어로 받아적던 호세의 모습이 귀엽더라.










양념치킨

 한식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면 가장 '한국스러운'음식이 아닐까. 스페인에와서 여러 나라친구들이 닭으로 만드는 요리를 먹어봤지만 한국의 '치킨'같은 요리는 없었다. 닭을 튀기는걸 지켜보던 알렉스가 한조각 먹어보더니 '음 맛있군'하고 말했다. 미리 만들어준 양념치킨 소스(고추장 1, 물엿 1, 케찹 1)를 가르키며 '찍어먹어봐'라고 귀뜸해줬다. 다시 한 조각을 집어 소스에 찍어 먹어보더니 'Genial!(최고!)'을 연발한다. 매운걸 좋아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달짝지근 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나는 양념치킨 소스는 그야말로 한국 요리의 매력 그 자체다.

한식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래도 분명 한국적인 식탁!


 원래는 한국 친구들끼리 소소하게 먹으려고 시작한 양념치킨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외국 친구들까지 다 같이 모여 나눠먹게 됐다. 전에도 블로그에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외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요리는 불고기와 양념치킨이 1, 2위를 다툰다고 한다. 우리에겐 너무나 친숙하고 흔한 음식이지만 외국 친구들과의 이날 저녁은 아주아주 특별했다.






동그랑땡

 한국에서는 명절날, 혹은 제삿날에나 볼 수 있었던 바로 그 요리. 마드리드까지 와서 전을 부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전에 형윤이 어머님께서 마드리드에 오셨을때 그야말로 '성대한 한국음식 파티'가 열린적이 있었다. 겨우 7명이 사는 우리집에 무려 40여명의 친구들로 가득 찼던 어마어마한 파티였다. 그때의 메뉴가 동그랑땡, 떡꼬치, 닭볶음탕, 잡채, 김밥이었는데 대부분 형윤이 어머님과 어머님 친구분이 요리하시고 우리는 전날 동그랑땡만 미리 준비했다.





그러고보니 추석, 설날 한 번씩을 마드리드에서 맞게 생겼다


 쌩뚱맞게 동그랑땡을 만들게 된건 사람이 워낙 많이 오는 피에스따다 보니 쉽게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를 생각해서였다. 처음엔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 계란에 찍어 부치는 오리지널 요리법을 시도했었지만 워낙 만들어야 하는 양이 많다 보니 나중엔 그냥 '우리집 속성 방식'으로 속재료를 계란이랑 한데 섞어 떠서 부쳤다. 고기도 많이 들어가고 먹기도 편하니 외국 친구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던건 당연한 일!








닭볶음탕

 닭고기가 그나마 저렴한 편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닭 요리가 많다. 닭볶음탕을 처음 만들어 먹은건 어느날 갑자기 내가 너무 먹고 싶어서였다. 혼자 먹기는 좀 그래서 한국 친구들을 우리집에 불러서 함께 먹었다. 피에스따라기 보다는 그냥 저녁식사였다. 스페인은 닭이 크기도 크고 살도 많아서 한 마리 만으로도 저만한 냄비가 꽉 찬다.


흰쌀밥에 닭도리탕을 먹으니 여기가 스페인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


  위에서 언급한 어마어마한 피에스따때 역시 닭볶음탕을 했었는데 이건 김밥이나 해물파전 같은 다른 요리에 비해 조금 인기가 덜했다. 매운 음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입맛에는 그렇게 맵게 만든것도 아니었지만 외국 친구들 입에는 상당히 매웠던 모양이다.








닭갈비

 반면 매운것에 열광하는 외국 친구들도 있다. 우리집에 함께 사는 알렉스, 빈센트, 플로홍이 대표적이다. 어찌나 매운걸 좋아하던지 벌건 소스 들어간 한국음식에는 사족을 못쓴다. 닭갈비는 지난 일요일 저녁 만찬때 내가 선보인 요리. 종강이 얼마 안남았을때라 시간이 그리 오래걸리지 않으면서도 한국적인 요리가 뭐가 있을까 하다가 닭갈비를 선택했다. 이번엔 닭도리탕때와 다르게 아주 맵게!


닭갈비에 열광하던 우리집 친구들!


 닭고기에 양상추, 고구마, 대파, 떡만 넣고 소스와 함께 볶았는데 재료는 스페인산이어도 맛은 한국의 그 맛이더라. 원래는 진짜 닭갈비처럼 면 사리도 넣고 싶었는데 그렇게 까지 준비하진 못했다. 먹을때도 밥 위에 올려서 마치 덮밥처럼 약식으로 먹었다. 다 먹고나서 친구들에게 ‘원래는 닭갈비만 따로 먹고 거기에 밥을 비벼먹는 거야’라고 설명만 해줬다.



 개인적으로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한국 요리를 통해 외국 친구들에게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는 것도 기분이 참 좋다. 하지만 이제 학교도 어느새 종강이고 친구들도 하나둘 자기 나라로 돌아가거나 집을 옮기는 시즌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바로 위 사진속 닭갈비가 외국 친구들에게 만들어준 마지막 한국 요리가 될 것 같다.

 포르투갈에서온 크리스티아나가 이런 말을 내게 한 적이 있다. '네가 요리하는 날에는 침이 고이는걸 멈출수가 없어!'.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도 혼자 만들어 먹는 것 보다는 함께 나누어 먹을때 훨씬 더 맛있다는걸 마드리드에 와서 느꼈다. 그리고 그 요리를 통해 각자 나라의 문화, 그들의 이야기,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면 더욱 풍성한 만찬이 된다는 것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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