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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23일은 나의 스물 세 번째 생일이자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맞게된 첫 생일이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때는 생일이라는게 그저 일년에 한번 으레 있는 그런 날이었지만, 막상 집이 아닌 머나먼 타국에서 생일을 맞게되니 기분이 좀 묘했다. 많은 친구들이 생일을 축하해주러 집까지 찾아왔고, 그리 큰 파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과 함께 나름 근사한 시간을 보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지만 그 날의 즐거웠던 기억을 블로그를 통해 다시한번 추억하려 한다. 아울러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아참, 그러고보니 우리집에 사는 일곱 명의 친구들의 생일은 기가 막히게 매 달 적어도 한 번씩 골고루 나눠져 있다. Florent가 10월 17일로 제일 먼저 생일을 맞았고, 10월 23일은 내 생일, 11월 21일 Alex, 12월 22일 Vincente, 1월 22일은 수진이, 2월 22일은 Janice, 그리고 3월에 Jimena 생일까지. 어쩜 이렇게 딱 맞춰서 짠 것마냥 되었을까. 덕분에 우리 집에서는 매달 적어도 한 번씩은 생일 파티가 있게 된 셈이다. 지금이 11월 말이니 벌써 Florent, 내 생일, 그리고 Alex 생일까지 세 번이나 생일 파티가 있었다. 내 생일 파티의 이야기와 함께 다른 친구들의 생일 파티의 즐거웠던 시간도 함께 추억해보려 한다.






어찌나 친구들이 많이 왔는지... 온 집안이 시끌시끌! :)


10월 17일
Florent 생일

 일곱명이 함께 살게된 이후 첫 번째 생일 파티였다. 우리집 식구들 뿐 아니라 Florent의 친구들까지 와서 나름 북적북적한 파티였다. Florent는 생일파티에 와준 친구들을 위해서 '크레페'를 준비했다. 전날 밤부터 열심히 크레페를 만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외국 애들은 어떻게 생일파티를 하나 조금 궁금했는데, 사실 기쁜날에 같이 웃고 떠들고 마시고 하는건 특별한 문화가 따로 있기 보다는 만국 공통어인듯 하다.

 

내가 사온 아이스크림 케잌!


 스페인에서는 친구들 집에서 열리는 피에스따(fiesta) 초대받아 갈때 자기가 마실 술이나 음료와 간단한 음식(tapas)을 가져가는게 보통이다. 이날은 특별히 생일 파티였기에 친구들이 직접 케잌이나 머핀도 구워오고 그랬었다. 하도 음식이 많아서 내가 사간 아이스크림 케익은 촛불 붙이고 끄는데만 쓰고는 배불러서 먹지도 못했다. 한국에서는 친한 친구들의 생일도 잘 못챙겨주던 무심한 사람이었는데, Florent의 생일땐 좀 신경써서 나이에 딱 맞는 숫자초까지 구해서 깜짝 놀라게 해줬다.


편지를 받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Florent


 이날 생일파티때 제일 멋졌던건, 롤링페이퍼 처럼 각자 한 마디씩 편지를 써서 선물한 일. 언어도 국적도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있다보니 각자 자기나라 말로 편지를 써주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멋진(guay!) 일이다! 카드를 받고 어린아이마냥 좋아하던 Florent는 일일히 뭐라고 쓴건지 스페인어로 번역해달라며 돌아다녔다. 다들 알파벳을 쓰는데 반해 나랑 다른 한국친구들은 유일하게 한글로 적다보니 눈에 확 띄는건 당연지사! 우리가 적어놓은 글귀가 마치 그림을 그린 것 처럼 예쁘다며 Florent가 제일 맘에 들어해줬다.


매운걸 좋아하는 Florent에게 한국인의 매운맛을!


 아참, 선물얘기를 깜빡했다. 문화도 취향도 너무나 다른 프랑스 친구에게 뭘 선물하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했었다. 옷을 사줄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고르기가 힘들어서... 그때 문득 떠오른게 라면이었다! Florent는 한국인보다도 매운걸 더 잘, 더 자주 먹는 그런 특이한 친구라 아무래도 '신라면'을 사주면 좋아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케익 사온 박스에 라면을 넣어보니 딱 맞아서 이쁘게 포장(?)까지 해서 줄 수 있었다.

 이날 이후로 식탁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 라면을 먹는 Florent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

즐거운 파티 도중 기념사진 한 장!


 다른 친구들도 센스있는 선물을 많이 가지고 왔었는데, 내 라면 선물보다 더 빵터졌던건 수진이의 '소주'였다! 사진속에 보면 왼쪽에서 두번째에 있는 Andrea가 소주를 들고있는데, 저걸 큰 컵에다가 와인 마시듯이 콸콸 부어 마시길래 'NO!'를 외치며 말렸던 기억이 난다. 저날 한 두어모금 얻어 마셨는데, 스페인에와서 거의 두 달만에 마셔보는 소주였다.




22일에서 23일로 넘어가는 밤, 친구들의 깜짝 방문과 케이크!


10월 23일
내 생일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와 생일을 축하해준것도 처음이고, 미안할정도로 너무 잘 챙겨받은 생일이라 정말 평생 잊지 못할것 같은 나의 스물 세 번째 생일. 원래 파티는 생일날 저녁으로 얘기해 놓았었는데 전날인 22일 저녁 11시쯤 갑작스레 전화벨이 울렸다. 별 생각없이 방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는데 Paul이랑 우린이랑 진원이가 케익을 사들고 찾아와 주었다. 12시 땡 치고 날짜가 넘어갈 때 축하해주고 싶다며... 생각도 안하고 있었던 깜짝 방문이라 그렇게 고마운 마음에 어버버 하고 있다가 23일 아침을 맞았다.



미역국과 잡채, 생일 아침상 한번 제대로 얻어먹었다!


 생일날 아침, 우린이랑 진원이가 다시 우리집에 찾아왔다. 우린이는 집에서 미역국을 끓여왔고, 진원이는 잡채를 한가득 가져와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마드리드에서 미역국을 먹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맛은 당연히 최고! 마음 착한 친구들 덕분에 타지에서도 그리 쓸쓸하지 않은 풍성한 생일날 아침을 맞이했다.





축하해주러 오는 친구들에게 대접할 불고기! 정성을 가득 담아 준비했다.


 이렇게 얻어 먹고만 있을 수는 없지! 생일날 저녁때 친구들을 위해 이번엔 내가 요리를 할 차례다.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 1, 2위가 양념치킨이랑 불고기라는데, 마침 이기회에 불고기를 제대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사실 양념치킨은 지난번에 한번 해먹은 적이 있어서리... 재래시장에 가서 미리 끊어온 불고기감 2kg에 마늘즙, 생강즙,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하고 잠깐 두었다가 다시 각종 야채와 과일, 간장으로 재워뒀다. 약식으로 대충 하지 않고 어머니의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 준비했다. 과일은 사과 한개, 배 한개를 넣었는데 한국 배같은게 없어서 서양배로 대신한게 살짝 아쉬웠다. 고기가 꽝꽝 얼어있어서 녹여서 재우는데 애를 좀 먹었지만 이따 저녁에 맛있게 먹을 친구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했다.







내 생일에 와 주어서 모두모두 고마워! :D


 오래 준비하고 정성을 들여서 그런지 불고기는 아주 맛있었다! 외국 친구들도 어찌나 맛있게 먹어주던지 흐뭇한 엄마미소를 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에 먹었던 잡채를 진원이가 더 가져와서 함께 먹고, 후식으로 joaquin이 만들어온 나띠쟈(Natilla)까지 곁들이니 정말 풍성한 저녁이었다.

짜잔! 책상 가득 늘어놓고 생일선물 자랑중


 친구들한테 카드와 선물도 많이 받았다! 자꾸 뭔가 받기만 하는거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고맙다! 내가 요리하는걸 좋아해서 그런지 선물중에 주방용품이 좀 많은 편이었는데 지금도 너무나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도 한 장 한 장 너무 고마웠다. 아 그리고...

왼쪽 하얀색 말렛이 바로 Benjamin의 선물!


 내 생일때는 프랑스 자기 집으로 돌아가있어서 파티에 못왔던 Benjamin. 돌아올 때 선물을 가지고 오겠다더니 세상에... 바이크 폴로(Bike Polo)에 쓰는 채(말렛, palo)를 손수 만들어서 가져왔다. 내가 늘 말렛이 없었던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마음 착한 Ben 덕분에 세상에 둘도 없는 '프랑스산 수제 말렛'을 가지게 되었다! 고마워 :)






하루 전날인 일요일 저녁, Alex의 요리로 함께 저녁을 먹었다


11월 21일
Alex 생일


 사실 알렉스 생일은 21일 월요일이지만 20일 일요일 저녁에 간단하게 모여서 저녁을 먹는걸로 파티를 대신하기로 했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저녁이기도 하고, 옆집 이웃사람들이 소리에 좀 민감한 편이라 Alex가 그냥 간단하게 넘기고 나중에 디스꼬떼가(discoteca)나 한번 가자고 했다. 이날의 메뉴는 Alex가 제일 자신있어하는 요리인 '치킨 데리야끼'. 사실 Alex는 요리를 거의 안하는 편이라 나한테 이 '치킨 데리야끼'를 배워갔는데, 내가 가르쳐서 그런지 무려 '김치'도 들어간다. 최근에는 혼자 한국 식품점에 가서 김치를 사오기도 했다는데!

생일 선물로 초코파이를 골랐다! 아예 뜯어서 케잌처럼 쌓아줄걸 그랬나...


 이날 내가 Alex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초코파이'. 더 멋진걸 해주고 싶었지만 어디에나 흔한 물건보다는 그래도 한국적인 무언가를 선물해주고 싶어 초코파이를 골랐다. 포스트잇에 간단하게 한글로 편지를 적어 붙여뒀는데 형윤이가 편지의 '멋진 녀석'이라는 단어를 'Chico guapo(잘생긴 남자)'로 해석해버리는 바람에 한바탕 크게 웃기도 했다.


초코파이를 받고 완전 좋아하는 Alex!


 원래는 사진찍히는걸 별로 안좋아하는 Alex지만, 초코파이 선물이 맘에 들었는지 나보고 먼저 사진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더라. 큰 파티는 아니었어도 집 식구들이 각자 하나씩 작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자기는 선물을 받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너무 좋아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더 근사한걸 해줄걸 그랬나^^;



 이렇게 11월 Alex의 생일 까지 세 번의 생일이 지났다. 그리고 내가 마드리드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까지 세 번의 생일이 더 남았다. 대충 이렇게 보니 교환학생 생활도 절반이나 지났다는게 새삼 실감이 난다. 앞으로 남은 생일 때에는 또 어떤 센스있는 선물들이 등장할까, 또 얼마나 멋진 파티가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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