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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점심이란 하나의 신성한 의식이자 성대한 축제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점심을 길게,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즐긴다. 신기한건 스페인 사람들의 점심 시간이다. 여기선 보통 2시~3시 사이에 점심을 먹는데 한국에서 11시 반이면 후다닥 식당에 달려가 밥먹던 내가 적응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이었다. 빨리 먹고싶다고 해서 빨리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식당이 점심 메뉴(menu del dia)를 2시부터 시작하고 심지어 학교 cafeteria에서도 1시 전까지는 빵이나 간단한 커피같은 간식거리만 먹을 수 있다. 세상에...

 한번은 무선 인터넷을 쓰려고 점심때쯤 맥도날드에 가 있었는데 12시에는 파리가 날릴 정도로 손님이 없더니만 2시가 지나자 슬슬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확실히 우리와는 많이 다른 문화다.





menu del dia는 가장 싸고 맛있게 점심을 즐기는 방법!


 스페인에서의 식사는 첫번째 요리(primer plato)와 두번째 요리(segundo plato), 그리고 후식(postre)과 커피로 이루어진다. 보통 첫번째 요리는 샐러드(ensalada)나 가스빠쵸(gazpacho, 토마토와 오이등을 넣어 만든 차가운 스프), 빠에야(paella)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두번째 요리는 감자튀김을 곁들인 구운 고기 종류가 나온다. 물론 순서대로 나오긴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첫번째 요리를 다 비우고 나서야 두번째 요리를 들기 시작한다.


괜찮았던 식당에서는 작은 동전 몇개 팁으로 두고나오는 센스~


 이렇게 하면 보통 9~12유로 사이. 환산해보면 점심 한끼에 못해도 15000원 정도 되는 꼴이니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menu del dia로 먹지 않고 따로 시키면 접시 하나에만 7~8유로 정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름 괜찮은 가격. menu del dia가 아니었으면 밖에서 아예 밥먹을 일 없을뻔 했다. 

 스페인에는 씨에스따(ciesta)라는 특이한 문화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대충 '낮잠시간'정도로 해석되는 오후 2시~5시 정도의 시간을 말하는데 실제로 이 시간에 자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이 씨에스따때는 모든 가게며 상점이 문을 닫아버린다. 관공서들도 마찬가지. 점심시간이 12시~1시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우체국, 은행, 모든 관공서들이 오후 2시면 영업을 마친다. 그리고는 퇴근하고 여유롭게 점심을 먹는 셈이다. 여유로운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잘 맞는 문화일지 몰라도 관광객이나 외국인들에게 처음엔 다소 생소한 문화다. 자칫 잘못해서 씨에스따 시간대에 밖에 있다보면 뭐 하나 살 수조차 없다. 이 시간에 유일하게 문을 여는건 식당과 까페떼리아, 맥주집 뿐. 그저 적당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천천히 느긋하게 점심을 즐기는게 최고!

 

 

 

맛은 그럭저럭이지만 싸고 괜찮은 케밥.

 마드리드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처음으로 밖에서 먹었던 점심은 케밥이었다. Doner Kebap이라는 이름의 케밥집이 마드리드 곳곳에 많이 있는데 일반적인 레스토랑보다 싼 가격에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서 외국인들이나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이날은 마르따와 같이 학교 구경을 하고난 다음이었는데 2시쯤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맥주, 물, 맥주, 커피, 물... 계속 이렇게 마시고 이야기 하면서 5시가 넘을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식사가 다 끝나도 계속 앉아있는게 처음엔 좀 불편했지만 이시간에는 정말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법을 좀 익힌것 같다.



요 별거아닌 요리도 무려 5유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벼룩시장, 엘 라스뜨로(El Rastro)에 놀러갔다가 먹은 점심. 바게뜨 빵에 하몬(jamon)만 적당히 넣어서 주는건데 이렇게 먹어도 밖에서 먹으면 5유로 가까이 된다. 사진 속에 보이는 오징어 튀김같은건 정말 오징어 튀김이 맞다. 마드리드는 내륙지방이라 해산물과 안친할 줄 알았는데 저 오징어 튀김은 나름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심지어 바게뜨 빵에 오징어 튀김만 넣어서 먹는 요리도 있으니...

 바게뜨와 하몬이라는게 별거 없어보이지만 하몬 자체가 워낙 맛있다보니 저렇게만 먹어도 아주 괜찮다. 하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도록 하겠다.


이곳 사람들의 주식은 감자(patata)라고 해도 될 정도!


 자전거 사러 마드리드 꽤 남쪽까지 내려갔을때 먹은 점심이다. 저 꽈배기처럼 생긴게 츄로스(churros)인데 생각보다는 그냥 별맛이다. 츄로스도 그렇고 감자튀김도 그렇고... 스페인에 모든 음식은 올리브유(aceite de oliva)가 과하게 들어가서 그런지 상당히 느끼하다. 어쩌면 menu del dia가 두 접시로 구분되는건 느낌함을 서로 덜어주기 위한 방법일지도. 마드리드라는 도시가 뭔가 독특한 음식 문화나 전통이 있기보다는 이것저것 짬뽕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고기 요리도 특별한 조리 방법보다는 그냥 덩어리째로 구워내는 방식의 음식들이 많은 편이다. 물론 언제나 엄청난 올리브유와 함께!
 

저렴한 가격에 한끼를 떼우고 싶다면!


 물론 여기도 번화한 도시인지라 각종 패스트 푸드들이 즐비하다. 사진속 피자는 마드리드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telepizza의 점심 메뉴. 역시나 피자와 함께 감자칩, 감자튀김, 혹은 웨지 감자가 딸려 나온다. 우리나라 왠만한 피자보다 훨씬 맛있는 편이지만 워낙 스페인 음식이 짠편이라 피자 역시 한쪽만 먹어도 콜라가 절로 들어간다. 물론,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도미노 피자 역시 가끔 찾아볼 수 있었다.


빅맥과 쿼터파운더치즈. 맛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한국보다 훨씬 더 비싸다!


 맥도날드 역시 도심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한국보다는 그 빈도가 좀 낮은 편이다. 마드리드에서 처음 일주일 동안은 집에서 무선 인터넷이 안되는 바람에 wi-fi가 되는 곳을 찾아서 여기저기 해메 다녔었다. 그중 가장 마음 편하게 오래도록 앉아있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맥도날드. 예전에 유럽여행을 했을때만 해도 M자 모양의 맥도날드 마크가 '화장실'마크로 보였었는데, 이제는 wi-fi 마크처럼 느껴질 정도!

 다만 이때 이후로는 피자나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거의 먹지 않게 된다. 어찌됐건 밖에서 먹는 음식이라 비쌀 뿐더러 하나의 신성한 의식인 점심식사를 이렇게 무심하게 보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집에서도 wi-fi가 잘 잡히기 때문에 그때처럼 카페며 패스트 푸드점을 전전할 일이 없다. 다만 wi-fi의 은총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던 그때를 생각하면 가끔 피식하고 웃음이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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