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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밤 눈물젖은 치맥을 먹고 찜질방으로 돌아와 바로 골아떨어졌다. 장산역 바로 앞 상가건물에 있는 찜질방이었는데 규모도 꽤 크고 시설도 좋아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만 너무 피곤했는지 세명 모두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비몽사몽. 결국 열한시가 다 되어서야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비는 좀 안왔으면 했는데... 결국 아침부터 주룩주룩


 어제만 해도 날씨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오늘은 아침나절부터 장대비가 내린다. 늦잠도 잔 마당에 오늘은 그냥 천천히 해운대나 한바퀴 돌아보고 시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우선 그전에 늦은 아침을 먹으러 이동!


밀면전문점 답게 아주 간단한 메뉴판


 장산역에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으로 해운대까지 편하게 올 수 있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부산의 명물 밀면. 마침 해운대 근처에 유명한 밀면집이 있다고 해서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밀면전문점'이라고만 써있는 간판부터가 심상치 않다. 들어가보니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가득. 지난 여행 경주에서 먹었던 밀면을 떠올리며 세 그릇을 시켰다.


정말 맛있었지만 부산 음식만의 특별함은 그닥 느껴지지 않았던...


 '밀면전문점'의 밀면은 뭐랄까... 굉장히 정형화된 맛? 경주에서 먹었던 밀면은 말 그대로 남쪽 지방만의 독특한 느낌이 살아있었는데 여긴 그냥 서울에서 먹는 냉면같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다대기가 너무 과해서 밀면의 독특한 육수맛이 제대로 살지 못한것 같다. 이렇게 말하니 무지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국물 한방울 안남기고 싹싹 긁어먹었다.



해운대에 처음 와본 서울 촌놈들


 밀면집을 나오는데 빗방울이 더욱 굵어진다. 바닷가라 바람까지 더해서 이건뭐 우산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 이정도 궂은 날씨면 해운대에도 사람이 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들어가봤는데 그와중에도 수영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더라. 애초부터 해운대에서 수영할 생각도 없었기에 해안을 따라 한바퀴 빙 둘러보기로 했다.




여기서보니 달맞이 고개가 참 이뻐보인다


 뉴스에서나 가끔 보던 해운대에 직접 와보니 감개무량할 따름. 쨍한 햇살 아래 백만인파가 몰려있는 장관을 볼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구름낀 우중충한 날씨도 썩 잘 어울리는 멋진 해변이었다. 직접 보니 괜히 해운대가 유명한게 아니더라. 물도 맑고 놀거리도 많고 멀리 보이는 달맞이 고개의 풍경도 나름 장관이다.





바닷가에 가면 으레 찍어야 하는 사진이랄까...


 해운대까지 와서 발한번 안담그면 서운할것 같아 맨발로 백사장을 좀 걸었다. 오랜만에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적시니 여름 휴가온 기분도 나고 꽤 괜찮더라. 다만 운동화를 다시 신어야 했던 두 친구는 발을 씻느라 고생을 좀 해야만 했다.





동백섬을 따라 누리마루로 가는 길


 백사장을 끝까지 걸어 동백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해안을 따라 자그마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대로 계속 길을 따라 걸으면 누리마루, 요트경기장을 지나 광안리 해변까지 갈 수가 있다. 거뭇거뭇한 돌들로 가득한 해변을 걷고있으니 어쩐지 제주도에 와있는듯한 착각도 든다. 쇠소깍에서 비슷한 풍경을 본것 같기도...


멀리 보이는 광안대교와 광안리 해변


 조금 더 걸으니 APEC 정상회담 장소로 유명했던 누리마루 건물이 보인다. 멀리 광안대교의 풍경과 어우러져 나름 근사해 보인다. 역시 건축은 설계보다 사이트가 중요해... 하는 생각을 하며 계속 걸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반영샷도 한번!


 동백역에 가까워질 무렵,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SLR클럽 같은 사진커뮤니티에서 흔히 보던 바로 그 풍경이다. 해운대와 광안리 옆으로 하늘을 찌를듯 솟은 마천루들은 어느새 해운대를 대표하는 풍경이 되어버린걸까.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이야 창밖으로 근사한 풍경을 매일 볼 수 있어서 좋겠지만 나처럼 아래서 내려다보는 사람들한테는 가히 폭력적인 스케일이다. 한쪽으로는 전에 큰 화재가 났던 금색 건물도 보인다.


하루만에 익숙해진 부산 지하철


 광안리까지 계속 걸어볼까 했지만 지도를 보니 너무 멀어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다음에 여름 휴가로 다시 올날을 기약하며 동백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지하철을 탔다.




서면은 뭐... 그냥 번화가 느낌


 다시 자갈치 시장 근처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그냥 환승역인 서면에서 내려버렸다. 그래도 명색이 부산 제일의 번화가인데 서면 거리한번 걸어봐야 할듯 해서 그랬다. 막상 내려보니 서울의 신촌이나 대학로 거리랑 비슷한 느낌이다. 차이가 있다면 유난히 성형외과들이 많다는 점 정도? 그래서 부산 여자들이 이쁘다고 하는건가... 는 장난이고 그냥 뭔가 재미있는 풍경이다. 아, 그러고보니 강남역 근처에도 은근히 성형외과가 많더라.




냉채족발로 유명한 부산족발집을 찾아왔다


 너무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서면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국제시장처럼 노점이 많은것도 아니고 대부분 돈을 내고 실내로 들어가야 뭘 할수있는 곳이라 얼른 버스를 타고 국제시장으로 돌아왔다. 어제 왔던 국제시장에 다시온 이유는 '냉채족발'을 맛보기 위해서다. 국제시장에서 반대쪽 한 골목은 일명 족발골목이라고 해서 여러 유명한 집들이 몰쳐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가 찾은 '부산족발'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느즈막히 아침겸 점심으로 밀면을 먹은 직후라 작은거 하나만 시켜서 맛만 보기로 했다.



서빙이 어찌나 느리던지...


 미리 알아본 바로는 이집이 맛은 기가막힌데 서비스는 영 최악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를 잡고 한참을 기다려도 밑반찬 하나 줄 생각을 않는다. 과연 맛은 어떨런지... 인고(?)의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우리가 시킨 냉채족발이 나왔다.



부산에서 먹은 최고의 음식은 단연 냉채족발!


 다행히 유명세만큼 맛도 꽤 좋았다. 이따 기차를 타기전에 또 개인적인 저녁약속이 있어서 조금 맛만보려고 했는데... 한 점, 두 점 집어먹다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 사실 냉채족발이라는게 꼭 부산에만 있는건 아니다. 전에 몇번 가본 공덕역 족발골목에서도 여름엔 냉채족발이 최고의 인기메뉴기 때문이다. 다만 그냥 고기를 썰어내는 족발과 달리 특유의 소스가 가미되기 때문에 찾아가는 집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 음식이다. 식도락을 좋아하는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이곳 족발은 '다시 부산에 와도 먹고싶은 요리'란다. 맛있다는 뜻이다.



부산어묵을 먹어봤어야 하는건데...


 기차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어서 국제시장을 한바퀴 더 돌아봤다. 사실 부산에서 못먹어본게 하나 있는데... 바로 부산어묵이다. 애초부터 먹을 계획이 가득한 여행이라 차마 어묵까지 먹어볼 여유가 없었다고나 할까. 비주얼 상으로는 저렇게 가래떡을 꼬챙이에 끼워 판다는게 서울이랑 다른 점이지만 맛도 정말 차이가 있을지... 다음에 부산에 또 오면 꼭 먹어볼 생각이다.






부산역까지 천천히 걸으며 짧았던 여행을 마무리했다


 소화도 시킬겸 국제시장에서 부산역까지는 천천히 걸었다. 오는길에 40계단 거리도 보고, 차이나타운도 들리고 이것저것 소소한 관광을 좀 했다. 먹을것도 볼것도 참 많은 부산이라 1박2일은 너무나 짧은 여정처럼 느껴진다. 원래 난 이런 식도락, 혹은 맛집 기행을 즐기는 편이 아닌지라 더 재미있는 여행이기도 했다. 가끔은 이렇게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며 짧게 여행하는 것도 괜찮겠더라. 더군다나 그 여행지가 부산이라면 더더욱!

기차안에서도 멈출 수 없는 식도락!


 서울로 돌아오는 KTX 안에서도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밀면이며 족발이며 아직도 배가 빵빵하지만 이건 꼭 먹어야 겠다며 친구들이 사온 만두다. 부산역 근처 초량밀면집에서 파는 만두라는데... 배가 불러도 참 맛있더라. 그렇게 마지막까지 맛있는 음식과 함께하며 세 남자의 짧은 부산 여행은 막을 내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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