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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이후로는 처음이니 말 그대로 10년만에 다시 찾은 경주였다. 스페인으로 출국하기 전까지 한국을 여행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는데, 마침 풍류(?)를 즐길줄 아는 고등학교 동창 덕분에 얼떨결에 경주로 떠나게 됐다. 왜 하필 경주를 택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대학에 와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경주 한번 못가본게 좀 아쉬웠던건 사실이다. 어쨌거나 답사보다는 휴식, 여흥, 풍류의 성격이 짙은 여행이기에 별 부담없이 카메라 하나만 걸치고 집을 나섰다.

KTX 덕분에 여행이 한결 쉬워진 느낌이다...물론 비싸긴 하지만


 이렇게 훌쩍 떠나는 여행일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야 한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기에 주저없이 KTX를 타기로 만장일치. 밤새 뒤척이다 집에서 나와 버스 첫차, 지하철 첫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 우리는 6시 30분에 출발하는 부산행 신경주 경유 열차를 타기로 했다.


우리가 타고갈 신경주행 열차


 요새 하도 사고가 많아서 KTX를 타는게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신경주까지 2시간이면 도착하는 유혹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름 이것저것 할인을 받았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가격... 1박 2일짜리 여정이 아니었다면 생각치도 못했을 호사다.


경주 시내는 생각보다 아담해 보였다


 눈 깜짝할새 열차는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신경주는 KTX 전용 역이라 경주 시내에서 꽤 떨어져있다. 다행히 시내까지는 버스가 많이 있어서 별 불편없이 경주터미널 근처에 왔다. 신기한건 경주도 서울 버스카드가 먹히더라...내가 서울 촌놈인건가.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실패한 음식, 돼지국밥


 이번 여행의 큰 목적중 하나는 식도락이다. 일단 시내에 들어오자마자 돼지국밥집부터 찾아 들어갔다. 사실 별다른 준비도, 사전 조사도 없이 덜컥 몸만 온지라 대충 기사식당처럼 보이는델 골라 잡아서 들어갔다. 아침으로 돼지국밥을 한그릇씩 시켰는데 생각보다 맛은 별로 없었다. 국물이 좀 비릿해서 돼지국밥이 원래 그런가보다 했는데...얼마전 부산에 가서 다시 먹어보니 우리가 식당을 잘못 들어갔던 모양이다.



이렇게 예쁜 자전거가 단돈 7천원!


 돼지국밥의 쓰린 추억을 뒤로하고...터미널 근처에 있는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한 대씩 빌렸다. 경주는 언덕이 없고 규모가 작아서 자전거로 여행하는게 가장 싸고 편리하단다. 저녁까지 빌리는 가격은 대당 7천원. 오전부터 햇살은 뜨겁게 내리쬐는데 시내에는 어째 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아 보인다. 하지만 생각보다 자전거 도로나 기반시설은 잘 안되어있어서 아쉽더라.





대릉원은 말 그대로 큰 고분들로 가득한 공원이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경주. 분명 어렸을때 와봤던 곳이지만 차를 타고 다니는거랑 자전거로 직접 헤메는건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우선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대릉원에 들렀다.



10년만에 다시 찾은 천마총


 그 유명한 천마총도 대릉원 안에 있다. 근데 막상 들어가보니 어릴적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엄청 크고 거대한 무덤으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그동안 내가 너무 많이 커버린걸까...



자전거는 세 대지만 자물쇠는 두 개뿐


 다시 자전거를 타고 첨성대를 지나 계림에 도착. 첨성대는 입장료가 500원이지만 들어갈 필요도 없이 옆에서 잠깐 구경하고 지나갔다. 한 두어달만 일찍 왔더라면 첨성대 근처로 유채꽃이 만발했을텐데 지금은 파란 잔디밭 뿐이다.


계림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계림은 말 그대로 작은 숲이라 특별히 볼건 없었다. 잠깐 벤치에 앉아서 쉬어가는 정도? 이곳도 어렸을때 와서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뭔가 짧게 봐서 아쉬웠던 최씨고택


 계속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보니 금새 배가고파온다. 시내로 돌아가는길에 잠시 최씨고택에 들렀다. 경주에 오기 몇일전에 다른 블로그에서 최씨고택에 대한 포스팅을 봤던 기억이...하지만 잘 기억이 안난다.



경주 밀면 맛집에 도착!


 다시 시내로 돌아와 찾은 곳은 밀면전문점. 미리 알아보고온 맛집이라 망설임없이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더라. 밀면의 본고장은 부산이지만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기에 경주에서라도 맛보기로 했다.


처음먹어본 밀면의 맛은 과연?!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밀면의 맛은... 괜찮았다! 사실 냉면이랑 면발 재료만 달라진건줄 알았는데 육수맛이 완전 딴판이라 깜짝 놀랬다. 뭐라고 말로 형용할 수는 없지만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랄까. 얼마전 부산을 여행하면서도 밀면을 다시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오히려 경주에서 먹은 이 밀면이 더 내 입맛엔 잘 맞았다.




평화로운(?) 한 때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자전거를 열심히 달려서 안압지에 도착했다. 안압지는 낮보다 밤에 더 멋진 곳이라고 하는데... 보문단지에서 숙박할 예정이라 밤에 들를 여유는 없을것 같았다. 그날따라 어찌나 날이 덥던지... 결국 다들 안압지에서 체력 방전. 자전거를 탄것도 있지만 밤잠을 설치고 너무 이른시간에 기차를 타서 그랬던것 같다. 잠시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청하며 진정한 풍류를 즐겼다.




안압지는 낮에가도 꽤 괜찮았다


 하늘이 맑으니 어떻게 찍어도 사진이 다 잘나온다. 작은 가방에 삼각대까지 꾸역꾸역 넣어 왔건만, 결국 해가 쨍한 낮에 보는걸로 안압지와는 안녕이다. 나중에 다시 경주에 올 기회가 생기면 꼭 밤에 와보리라. 물론 그때는 차를 끌고 와야겠지...?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나올법한...


 안압지에서 황룡사지로 가는 길. 경주에 자전거 도로는 없지만 길에 차가 별로 없어서 요런 예쁜 길도 쌩쌩 달려볼 수 있다.




황룡사지에서...





경주 여행의 베스트컷!

 
 황룡사지는 어렸을적 기억속에 가장 생생히 남아있는 곳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절과 탑이있던 자리가 횡하니 빈터로 남아있어서 였을까. 10년만에 다시 찾은 황룡사에도 여전히 바람만 가득하더라.



경주빵이랑 황남빵은 조금 맛이 다른듯했다


 황룡사지에서 시내로 돌아오는길은 생각보다 좀 멀었다. 북천변으로 나있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려서 겨우 도착했다. 경주에는 경주빵을 파는 집이 참 많은데, 10년전엔 이렇게까진 아니었던것 같다. 그때 참 맛있게 먹었던게 '황남빵'이었는데 마침 간판이 보여서 고민끝에 한상자 구입했다. 가격은 비싸지만 나름 괜찮은 맛. 하지만 어릴적 기억속의 그것보다는 좀 못했다. 그냥 먹지말고 기억속의 그 맛으로 남겨둘걸 그랬다.



고분 뒤로 저물어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자전거를 반납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 누가 말하길 진정한 경주의 매력은 길을 걷다가 불쑥 마주치는 고분들이라고 했던가. 정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불쑥 솟아있는 고분들을 볼때마다 참 기분이 묘하다. 더군다나 바로 옆으로 다닥다닥 주택가들이 붙어있는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




찰보리밥이 감동을 줄 줄은 몰랐다ㅠㅠ또 먹고싶은!


 경주 여행 첫날의 마지막은 검증된(?) 맛집에서 멋진 식사와 함께 마무리하기로 했다. 나름 경주 시민에게 추천받은 맛집이라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결과는 대 성공! 찰보리밥 정식과 동동주를 시켜서 먹었는데 밥은 밥대로, 술은 술대로 그야말로 꿀맛이더라. 맘 같아서는 술도 더 시키고 실컷 놀아보고 싶지만 내일 일정도 있고... 또 보문단지까지 찜질방을 찾아가서 잠을 청해야 하는지라 아쉽지만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보문단지가 시내에서 가까운줄 알고 걸어갈까 잠깐 생각했었는데, 택시를 타니 만원 넘게 요금이 나왔다. 걸어가려고 했으면 동틀 무렵에나 도착할 뻔 했다. 미리 알아둔 호텔 찜질방을 찾아가 시원하게 사우나를 하고, 그렇게 여행 첫날 밤은 저물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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