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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여행 초기에는 인천발 델리행 에어인디아 비행기를 함께 타고왔던 일행이 몇 있었다. 다들 이름도 얼굴도 모르던 사이였지만 델리에서의 첫날밤, 수다를 안주삼아 맥주를 들이키며 금새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즐거운 만남도 잠시, 몇몇은 북쪽 라다크 지방으로 올라가고 우리는 제썰메르로 향하는 바람에 갈라서게 되었다. 제썰메르로 가는 길에서도 또 새로운 일행을 만났지만 사막투어를 마치고 각자의 길을 따라 갈라졌다. 그런데 그때 헤어졌던 경훈이형을 한 달여만에 바라나시에서 다시 만났다!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했던 경훈이형과의 재회


 영어를 한마디도 할줄 몰라서 '화장실이 어디냐', '메뉴판을 가져다달라' 같은 기본적인 문장을 발음까지 받아 적어가던 경훈이형. 우리보다 일정이 조금 더 긴덕택에 남부 함피, 고아지방 까지 내려갔다가 바라나시로 올라왔다고 했다. 과연 영어를 못해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내심 걱정했었는데, 한달만에 다시 만난 형의 모습은 의외로 우리보다 더 현지인스러웠다! 물론 여전히 영어는 기본 단어정도만 구사하는 수준이었지만, 가게에서 손짓 발짓 해가며 물건을 사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인도인들과 좀더 쉽게 친해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른 아침이지만 갠지스강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때 경훈이형을 보며 확실히 느꼈다. 여행을 하며 말이 통하지않는건 조금 불편할 뿐이지 절대로 겁낼일이 아니라는걸. 오히려 어설프게 하는것 보다는 아예 모르는 편이 얼굴에 철판깔고 들이대기 더 좋은것 같다. 물론 그 덕분에 경훈이형의 여행은 훨씬 다이나믹하고 즐거워 보였다.

 하긴 생각해보면 여행지에서 사기나 범죄의 표적이 되는것도 어느정도 말이 통하는 여행자들이다. 어설프게 그들이 하는 말을 듣다보면 경찰이나 여행사 직원을 사칭하는 사기에 금방 속아버리기 마련이다.





이들에게 갠지스강, 바라나시는 어떤 의미일까...문득 궁금해진다


 어쨌거나 우연히 바라나시의 골목에서 마주친 경훈이형은 너무 반가웠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랄까. 마침 델리로 다시 돌아가는 일정도 같아서 바라나시에서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출 보트 투어를 하기 위해 강가로 나왔다. 바라나시에서 유명한 보트집은 '철수네'. 철수는 이미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한국어가 유창한' 인도인이다. 하지만 왠일인지 그날따라 철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른 새벽녘의 인도의 골목길은 상당히 위험하다. 어딘가 사나워보이는 개들이 골목마다 막고 서있고, 설상 가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커다란 흰 소 한마리가 떡 하니 막고 있다. 혹시나 개한테 물려서 이대로 여행이 끝나버리는건 아닐까 잔뜩 겁먹은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골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중간에 큰 개한마리가 나한테 달려들었지만 다행히 물리지는 않았다. 정말 아찔한 기억이다.




바라나시의 보트투어를 해보는건 좋지만 너무 큰 기대는 마시길


 기대가 커서였는지 생각보다 보트투어는 시시했다. 한 시간 정도 가트를 따라 배를 타고 돌아보는 코스지만 가격이 꽤 비싼 편이기 때문이다. 물살을 타고 하류까지 갔다가 올때는 역류를 거슬러 올라와야 하는 탓에 그리 멀리 가지도 못한다. 그나마 괜찮았던건 잠시 노를 잡고 직접 배를 저어본것 정도. 비위가 약한 경훈이형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노를 젓다가 물위에 떠있는 시체를 건드리기도 했다. 화장터가 있는 갠지스강에는 정말 시체가 떠다닌다고 하던데... 그걸 눈앞에서 보게될줄은 몰랐다.

바라나시에서 보는 마지막 아침해가 솟았다


 강위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빨간 태양을 기대했지만, 날이 흐려서 일출도 생각보다 그럭저럭이었다. 그래도 아침 일찍부터 가트에 나와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는건 조금 재미있더라. 오랜만에 만난 경훈이형과 보트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던것 같다.





 둘.
 바라나시에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인도하면 또 발리우드 영화의 위엄을 빼놓을 수 없기에...
 릭샤를 타고 영화관을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시설에 놀랐다. 영화표는 자리에 따라 플래티넘, 골드, 실버, 브론즈 등으로 등급을 나누어 팔고 있었는데 하도 매표소 앞이 복잡해서 그냥 실버로 다 끊어버렸다. 인도에는 원래 '줄'이라는 기념이 없다. 그저 힘쎈놈이 뒤에서 밀고 먼저들어가서 돈을 건네면 표를 살 수 있는 시스템.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인도답지 않게 깔끔한 영화관에서도 그러는걸 보니 어쩐지 재미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그렇더라.

Spice KCM. 영화관 이름부터가 아주 핫하다!


 그날 우리가 본 영화는 LOVE AAJ KAL. 번역하자면 '오늘도 내일도 사랑한다' 정도 되려나? 그때만 해도 별 생각없이 고른 영화였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2009년 한해를 뜨겁게 달군 화제작이라고 한다. 어쩐지 영화가 좀 재미있더라니...


영화관 안에 들어오면 여기가 한국인지 인도인지 분간이 잘 안갈 정도!


 요새는 '슬럼독 밀리어네어'나 '내이름은 칸'처럼 우리나라 영화관에도 인도 영화가 슬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추세.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난 인도 영화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다. 그렇게 현지에서 처음 접한 인도영화는 생각보다 꽤 괜찮았고, 독특했다. 이미 많이들 알고있는 것처럼 인도 영화의 특징은 '떼 춤'과 '노래', 그리고 의외로 유치한 '스토리라인'이다. 영화 자체의 내용보다는 마치 뮤지컬을 하듯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노래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추는 군무, 그리고 간혹 등장하는 특수효과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찌나 음악이 신나던지 나도모르게 어깨가 들썩일 정도!

크레딧이 다 올라가기 전에 자리를 뜨는건 한국이나 인도나 똑같다


 40도 가까이 푹푹찌던 그해 여름이었지만, 영화관 만큼은 추울정도로 에어컨이 빵빵한것도 인상깊었다. 확실히 영화관에 오는 사람들은 옷차림도 깔끔하고 그래보이더라. 그렇게 바라나시에서 인도 영화라는게 뭔지 제대로 접하게 되고 한동안 LOVE AAJ KAL이라는 제목을 까맣게 잊고 지냈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게된건 다름아닌 작년 2월에 아프리카로 향하던 비행기 안. 카타르 항공을 타고 아프리카로 가던중 좌석 앞쪽의 모니터에서 익숙한 제목을 보고 무심결에 클릭했다. 다시봐도 여전히 재미있더라!





 셋.
 바라나시는 인도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골목길이 상당히 비좁고 복잡하다. 때문에 오토릭샤는 시내 큰거리에서 밖에 다니질 못하고 구시가지에서는 싸이클 릭샤가 보편적이다. 바라나시를 떠나기 전,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서양 식당으로 향했다.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는 편이라 싸이클 릭샤를 잡아 탔는데... 남자 셋을 태우고 힘겹게 페달을 밟는 릭샤왈라가 어째 영 힘을 쓰질 못한다. 남자가 셋이니 돈도 조금 더 쳐달라고 해서 알았다고 했는데... 이래서는 오늘안에 저녁을 못먹게 생겼다. 보다못한 내가 직접 릭샤를 몰기로 했다.

인도여행 최고의 한 컷! 직접 싸이클릭샤를 몰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바라나시 한복판에서 요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하얀 피부의 한국인이 싸이클 릭샤를 끌고 있고, 정작 릭샤왈라는 뒤에 앉아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쉬고 있는 황당한 시츄에이션! 지나가던 인도인들도 다들 한번씩 고개를 갸우뚱하며 우리를 쳐다본다. 카주라호에서 오토릭샤도 몰아봤는데 이깟 싸이클릭샤하나 못몰쏘냐 하며 도전했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페달을 밟기가 힘든것 보다도, 핸들이나 기어가 제대로 정렬되어있지 않아서 직선으로 나아가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바라나시에 가면 꼭 한번 싸이클릭샤를 몰아보길!


 그렇게 목적지까지 열심히 페달을 밟아서 도착했다. 난생 처음 릭샤 뒷좌석에 타본다는 릭샤왈라는 나보고 'STRONG MAN'이라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제 돈을 주어야 할 시간. 처음엔 남자가 셋이라 돈을 더쳐주기로 했었지만 내가 여기까지 몰고왔으니 너가 나한테 오히려 돈을 줘야하는거 아니냐고 넌지시 떠봤다. 결과는 대 성공! 릭샤 왈라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원래 받기로한 가격에서 내 수고비만큼을 빼고 거슬러줬다. 대신 바라나시에서 릭샤를 운전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 릭샤왈라에게 내가 짜이 한잔을 대접했다. 

 참 인도에 와서 별별 경험을 다 해보지만, 카주라호에서 오토릭샤를 몰아본 것과 바라나시에서 싸이클릭샤를 몰아본건 영원히 잊지 못할것만 같다. 난 아직도 인도에서 찍은 사진중에 가장 맘에 드는걸 꼽으라면 당연히 싸이클릭샤를 몰던 그 사진을 꼽는다. 힘들어하는 나의 표정과 대조되는 뒷좌석 릭샤왈라의 느긋한 표정. 그리고 그 옆에서 얄굳게 웃고있는 여행 메이트까지. 이보다 더 인도의 매력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진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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