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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학도인 내가 여행을 한다고 하면 흔히들 '답사'를 위한게 아닐까 하고 으레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오히려 내 여행은 그 반대다. 사실 '답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여행'에서 만큼은 그런 강박관념을 버리고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유유자적 유랑하는걸 즐기는 편이다. 물론 인도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답사'할 거리가 널렸다. 꼬르뷔제가 설계한 계획도시 찬디가르나, 2학년때 과제로 만들었던 쇼단하우스 같은 건물들 외에도 참 많다. 하지만 내가 진짜 보고싶은건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 자체, 가장 낮은 곳에서 눈높이를 맞추고 바라보는 그들의 삶 그 뿐이었다.



시끄럽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그들의 삶이다


 바라나시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내가 보고싶었던 인도와 가장 흡사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눈앞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인도사람들의 일상. 시끄러운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매캐한 매연이 한데 어우러진 바라나시. 마크 트웨인은 바라나시를 보고 '전설보다 더 오래된 도시'라는 멋진 말을 했다고 하는데... 전설보다 오래되었다는 그 표현이 참 와닿는다.


너무나 깨끗한 신형(?) 릭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유적지나 답사할 장소들을 피해 다닌건 아니다.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큰 도시를 거점으로 잡고 주변의 작은 도시를 당일치기로 들르게 되는 경우가 잦은데, 오늘 우리가 찾아간 사르나트 역시 바라나시에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도시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중심가에서 사르나트로 가는 릭샤를 잡아 탔다. 여기서 사르나트 까지는 한 시간도 채 못되는 거리. 하지만 시내 구간에 비하면 나름 장거리라 그런지 오토릭샤가 참 반짝반짝 윤이 난다. 그동안 여행하며 수없이 많은 릭샤를 타봤지만 이렇게 상태가 좋은건 처음이다. 분명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더 빠른 느낌이 들 정도!


사르나트는 상당히 깔끔하게 꾸며진 도시였다


 사르나트는 석가모니가 처음으로 설법을 시작한 곳으로 룸비니, 부다가야, 쿠시나가라와 함께 인도의 불교 4대 성지로 불린다. 개인적으로 불교에 대해 자세히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학교에서 한국건축사 시간에 불교 건축을 공부하며 스투파와 사르나트에 대해 짧게나마 배운 기억이 난다. 인도는 현재 힌두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있지만 생활이나 문화 전반적인데 걸쳐서 불교의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시간이 좀 남아 편안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지만, 불자들은 성지순례를 위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했다. 불교의 탄생지라고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에게는 단순한 관광지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르나트 곳곳에는 이처럼 야자수들이 예쁘게 심어져 있다


 그날따라 날씨가 참 더웠다. 물론 8월의 인도는 어딜가나 찜통 더위와 싸워야 하는 곳이지만, 사르나트 곳곳에 심어진 야자수를 보니 비로소 그 더위가 실감이 난다. 생각보다 사르나트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뭔가 의식을 진행하거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례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는데 때를 잘못 맞춰온걸까나.









전혀 인도스럽지 않은 풍경들! 사르나트는 참 신기한 곳이다


 불자가 아닌 나같은 여행자에게, 사르나트는 말 그대로 커다란 유원지 같은 곳이었다. 사실 조금 놀랬다. 흔히 여행하며 봐온 인도의 전형적인 도시 풍경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심어진 조경수들, 유적지 전체를 휘감아 도는 인공 수로와 연꽃, 인도에서 그리 흔치 않은 군것질인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와 멀리 보이는 놀이기구들! 특히 놀이기구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인도에도 이런 깔끔한 공원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보기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사진을 찍기에도 좋고, 누나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나들이 나온 것처럼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인도의 젊은이들은 어디서 연애를 하나 했더니만...^^


 다른 곳에선 볼 수 없었던 사르나트만에 여유로운 풍경은 비단 우리눈에만 그렇게 보이는건 아닌듯 했다. 인도에서는 아직까지도 남자와 여자의 역할 구분이 확실해서 길거리에서 여자들과 손을 잡고 다니거나 연애하는걸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르나트 나무그늘 곳곳에는 하나같이 '연애'하는 커플들로 북적인다! 인도에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풍경이다. 재미있는건 그들도 부끄러운지 자꾸만 우리를 의식하는것 같았다. 우린 얼른 방향을 바꿔서 다른 길로 걸었다. 예쁜 사랑 하세요~

드디어 스투파 앞에 섰다


 무슨 비밀기지처럼 생긴 이 건물이 바로 '스투파'다. 쉽게 말해서 화장한 유골을 모셔두는 인도식 묘. 막상 앞에서 보면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나 내부 공간이 따로 있는건 아니다. 조형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종교적 건축물이랄까.

 한국건축사 시간에 불교건축을 다루며 배웠던게 바로 이 스투파다. 혹시 우리가 '탑'이라고 부르는 단어가 '스투파'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실제로 석가탑, 다보탑 같은 우리나라 불교건축의 탑 역시 스투파에서 유래된 같은 기능을 하는 건축물이다. 단 우리나라로 전래되면서 유골을 직접 모시는게 아니라 사리나 부장품을 담아두는 것으로 기능의 살짝 변화가 있었다. 단순히 불교적 의미의 건축물로 시작한 스투파지만, 크게 보면 에펠탑, 도쿄타워 같은 현대의 고층 타워들도 다 스투파가 그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책에서만 보던 스투파를 직접 눈앞에 맞닥뜨리니 기분이 참 좋다! 미리 공부를 해간것도 아니었지만 건축을 잘 모르는 누나한테 불교건축에 대한 즉석 강의(?)를 펼쳤다. 쉬지않고 술술 말하면서 나 스스로도 놀라울 따름! 인도를 여행하며 처음으로 건축학도다운 여행을 하는 날인것 같아 왠지 뿌듯했다.







스투파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렇게 흔적만 남은 유적지들이다


 스투파를 보고 나면 나머지는 말 그대로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이다. 마치 이탈리아의 폼페이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스투파의 도시 사르나트와 안녕하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사르나트 유적지 근처의 유명한 식당에서 뗌뚝과 뚝바로 점심을 해결할 요량이었다. 둘다 우리나라 입맛에 잘 맞는 네팔 음식이라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을 계획이기에 음식으로나마 맛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를 보고 어렵사리 찾아간 가게는 이미 문을 닫은지 오래란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가게를 찾아보려하는데 생각보다 밥을 먹을만한 가게가 보이질 않는다. 어찌나 마을이 작던지... 구멍가게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계획한 일정보다 훨씬 일찍 바라나시로 돌아왔다. 사르나트에서 하루를 다 보내기엔 인도의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간다. 오늘 하루 남은 시간은 여유롭게 가트를 걸어보기로 했다. 일단 주린 배를 좀 채운 뒤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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