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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고 많이 찾는 곳은 어디일까? 수도인 델리도 아니고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도 아니다. 정답은 바로 카주라호. 규모도 작고 인구도 얼마 없는 작은 도시지만 이곳에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그 뭔가가 있단다. 카주라호의 별명은 애로틱시티! 이름만 들어도 왠지 한번 가보고 싶은... 그런 도시였다고 하면 너무 속보이려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애로틱시티? 뭔가 아이러니한 조합!


 오르차에서 지친 몸을 카주라호에 오자마자 말끔히 풀었다. 사실 카주라호에는 점심때쯤 도착해서 첫날에도 둘러볼 여유가 있었지만 일부러 밖에 안나가고 푹 쉬었다. 덕분에 둘째날인 오늘은 이른 시간부터 팔팔하다! 애로틱시티 카주라호를 돌아보려면 이정도 체력비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응?)

카주라호의 사원군은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다


 카주라호는 다소 남사스러운 포즈의 정교한 조각들로 덮인 사원들이 가득한 곳이다. 도시 곳곳에 이런 사원들이 퍼져있어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경주랑 비슷한 느낌이다. 애로틱시티라는 별명이 붙은건 바로 이때문이다. 성행위 장면이나 다양한 체위를 묘사한 조각들이라는 다소 황당한(?) 사원들은 인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만점! 이런 카주라호의 개성을 잘 살려서 매표소 근처에서는 카마수트라를 파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보면 한없이 아름다운 사원들...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경주로 치면 대릉원에 해당하는 커다란 사원군이 마을 중심가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곳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전체적인 느낌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원에 가깝다. 인도의 관광지 치고는 나무나 꽃도 예쁘게 잘 심어진 편이고 규모가 커서 그런지 다소 한산한 느낌이다.

 먼 발치에서 보면 여느 인도의 사원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 하지만 조금더 가까이 다가가면 충격적인(!) 조각들에 놀라게 된다.





아직은 잘 감이 안오지만...더 가까이 가보면!


 전에 마운트아부 자인교 사원에서 본 조각들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다양한 작품들로 가득하다. 하나만 따로 떼어놔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을만한 조각들인데, 사원 외벽을 따라 수 천, 수 만개의 조각들이 있다. 가끔보면 커다란 땅덩어리 만큼이나 참 스케일이 큼직큼직한 나라다. 이걸 누가 다 조각했을까...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조각들! 와우 @_@


 누나와 함께 사원을 천천히 돌아보며 본격적인 숨은그림찾기(?)가 시작됐다.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야한(-_-) 조각을 찾아내는지 내기를 하기로 했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정말 신기할 정도로 모든 조각들의 포즈가 다 다르다. 신성한 사원에 어떻게 이런 조각들이 자리잡게 됐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한때는 카주라호의 이런 사원들을 놓고 너무 외설적이어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조각들은 외설이라기 보다는 확실히 예술에 가까웠다. 인물의 표정, 손가락 한 마디 마저 놓치지 않는 섬세함에 그저 혀를 내두를 지경.





꼭 조각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원의 전경


 애로틱 시티라는 이름때문에 내심 많은 기대를 하고 왔는데 생각보다 아름다운 조각들때문에 애로틱이라는 벌써 잊어버렸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들정도로 아름다운 사원들. 카주라호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지며 도시 전체에 특별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사원군 주변을 돌다보니 왜 카주라호가 외설논란에도 불구하고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는것 같았다. 확실히 내가 느낀 카주라호의 느낌은 외설보다는 예술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누가 이걸 보고 외설이라 할 수 있을까!


 카주라호 서부 사원군에서 내가 꼽은 가장 아름다운 조각이다. 다른 조각들에 비해서는 다소 투박해 보이지만 인물의 몸짓 하나, 손짓 하나, 표정까지도 너무 아름답게 묘사되어있다. 누가 이 조각을 보고 감히 야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조각 하나 하나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열심히 망치질을 했을 석공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해보려 잠시 눈을 감아본다.




카주라호에서 발견한 맛집!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서부 사원군을 빠져나와 중심가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카주라호가 참 신기한게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다양한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느낌이다. 우리가 자리잡은 식당은 정통 이탈리아 음식을 하는 유명한 곳이었다. 무려 이탈리아인 주방장이 직접 운영한다는데... 인도에서 이렇게 제대로된 피자와 파스타를 먹을 수 있을줄이야! 정말 맛있었다.


존과의 첫 만남!


 식사를 마치고 동부 사원군을 둘러보기 위해 반대쪽으로 길을 나섰다. 그런데 삼거리에서 도통 방향을 모르겠다. 가이드북을 들고 이리저리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 친구! 아래위로 새빨간 패션이 인상적인 꼬마의 이름은 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똑부러지는 말투와 유창한 영어덕분에 순식간에 친구가 됐다. 처음엔 길만 물어보려 했는데 이녀석 아주 앞장서서 우리를 가이드해주겠단다. 혹시나 나중에 돈을 요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밤에 밥한끼만 사달라고 해서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카주라호에서 또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





슬리퍼 자국을 따라 까맣게 타버린 발... 깜짝 놀랐다!


 존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니 카주라호 여행이 훨씬 더 즐겁다. 이녀석 한시도 쉬지않고 조잘조잘 엄청나게 말을 거는 덕분에 별별 얘기를 다한것 같다.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냐고 물어보니 관광객들을 통해서 조금씩 어깨너머로 배운게 전부란다. 카주라호에 얼마나 관광객이 많은지를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사원에서 바라보는 카주라호의 여유로운 풍경


 서부 사원군에 비해 동부 사원군은 훨씬 더 한가한 편이다. 특별히 공원처럼 묶여있는 것도 아니고 마을 군데군데 불쑥 솟아있는 형태로 퍼져있다. 그러다보니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게 필수! 서부 사원군에 비해서 조각들의 수위(?)도 조금 낮은 편이라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보기 좋은 그런 곳이다. 심심한 사원 대신 주변으로 펼쳐진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풍경이 참 맛깔나더라. 이런 사원에서라면 하루종일 예배를 드려도 지겹지 않을것 같다.



다른 사원에비해 조금 밋밋한 동부 자인교 사원


 마을에서 조금 더 떨어진 자인교 사원까지 모두 둘러봤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사원이라 그런지 다른 카주라호 사원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알고보니 소실된 사원의 나머지 부분을 복원한거라는데... 왠지 좀 아쉬운 밋밋한 사원이다. 존의 친절한 가이드 덕분에 생각치도 않았던 먼 이곳까지 순식간에 둘러볼 수 있었다. 이제 카주라호에서 둘러볼 관광지는 다 본것 같고 편안한 마음으로 쉬면서 도시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존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무슨 가족사진처럼 나왔다!^^


 요 맹랑한 꼬마녀석이 얼마나 붙임성이 좋던지, 순식간에 한 가족처럼 되버렸다. 생각하는 것도 깊고 말도 참 잘하는게 아주 똘똘한 꼬마다. 사원을 다 둘러보고나서 풀밭에 앉아 수다도 떨고 사진도 찍고 한참을 뒹굴고 놀았다. 인도에서는 참 신기한게 이렇게 유유자적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편안하고 좋다. 여기저기 둘러봐야한다는 강박관념 같은건 애시당초 인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맹랑하지만 참 똘똘한 녀석!


 그렇게 존 덕분에 하루종일 아주 구석구석까지 잘 돌아다녔다.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는 작은 사원은 물론이고 자기가 사는 마을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덕분에 사람사는 냄새 폴폴 나는 제대로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존에게 맛있는 한국 음식을 사주고 저녁을 함께했다.

 존과의 만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카주라호를 떠나는 그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했던 꼬마녀석. 지금은 또 얼마나 자랐을지, 또 얼마나 많은 한국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을지... 문득 보고싶어진다.(계속)


카주라호에서 만난 꼬마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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