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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참 빠르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내가 게으른건지 벌써 울릉도 여행도 어언 일 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한창 정신없고 바쁘던 그 해 여름, 나는 울릉도 도동항으로 떠나는 배 위에서 마냥 들뜨고 신이 났었다. 마침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며 '마라도'에 다녀온 감동이 채 가시기 전이었기도 하고, '나는 똑딱이 포토그래퍼다'라는 책의 저자로 이미 유명한 '정민러브'님과 다른 많은 분들이 '사진'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안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더욱 기대가 컸던것 같다.
 어쨌거나 많이 늦은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여정을 정리해보려 한다. 올해 가을, 마드리드로 교환학생을 떠나기전에 그동안 밀린 여행기를 모두 쓰고 떠나는게 목표! 채 끝마치지 못한 유럽과 인도 여행기는 잠시 미뤄두고 가까운 울릉도부터 떠나보자.


강원도 어느메를 지나던 무렵...


 울릉도 여행은 일반적으로 배편과 숙소를 묶어서 패키지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의 특성상 몇개의 메이저급 여행사가 독점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자유여행을 하기엔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패키지인 덕분에 서울해서 묵호까지 가는 전세 버스도 함께 묶여있어서 편한점도 있다.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새벽같이 출발한 버스는 점심무렵이 되어서야 동해 묵호항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배를 타야하는만큼 날씨가 은근히 신경쓰였었는데, 서울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묵호항에 도착해서도 그칠줄을 모른다.

 


묵호항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더욱 거세진다


한산한 묵호 여객터미널 전경, 정민러브님도 보인다


 주말이었음에도 묵호항 여객터미널은 제법 한산한 편이다. 아무래도 꾸물꾸물한 날씨 때문인듯 하다.
 대한민국의 동쪽 끝 울릉도까지는 여기서도 세 시간 가까이 페리를 타고 들어가야한다. 이미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상황이라 묵호항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배에 오르기로 했다. 여전히 창밖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별건 없지만 어찌나 맛있던지!




드디어 울릉도로 떠나는 배에 오르기 직전!


 그리 특별할건 없지만 바다내음이 물씬 풍기는 된장찌개를 한그릇 뚝딱 비우고나니 비로소 울릉도에 가까워졌음이 느껴진다. 내심 파아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을 기대하고 있었던 여행인터라 그칠줄 모르는 빗소리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밥은 술술 잘도 넘어간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와 드디어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표를 받았다.




이 커다란 배를 거의 전세내다시피 해서 타고갔다


 울릉도행 페리에 올랐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울릉도의 크기나 섬의 규모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다. 걸어서 30분이면 섬 한바퀴를 돌 수 있었던 마라도가 생각나서 였을까. 울릉도 역시 작은 섬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꽤 커다란 배가 들어간다. 울릉도 주민들로 보이는 몇몇 어른들은 생필품으로 보이는 박스를 이것저것 많이도 챙겨 오셨다.


창 밖이 잘 보이지 않을정도로 비가 세차게 내린다


 그렇게 세 시간여를 출렁이는 바다위로 달려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빗줄기는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하늘은 어두컴컴하기만 하다. 원래 배멀미를 거의 안하는 편인데 파도가 어찌나 거세던지 내내 메슥거려서 눈을 좀 붙였다.





우리의 울릉도 여행을 맡아줄 여행사 앞에 도착!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게 팻말이나 깃발 따라다니는 패키지 여행인데, 울릉도에선 나도 어쩔 수 없이 어미오리 뒷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기 오리랑 다를게 없다. 우리가 묶게될 대아리조트는 도동항에서 서쪽으로 조금 차를 타고 가야하는 거리에 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조금 남은터라 오늘은 가볍게 도동항 주변 산책로를 돌아보기로 했다.



의외로 다이나믹한 산책로 덕분에 허벅지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울릉도의 메인항인 도동항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는 해안 산책로가 조성되어있다. 분지 지형인 울릉도의 특성상 내륙으로 들어가면 산이 험해지는터라 가볍게 트래킹 하기에는 해안 산책로가 제격이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지라 한 손에 우산,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조심스럽게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조금만 한눈 팔았다간 파도에 홀딱 젖기 십상이다


 오늘 걷는 길은 도동항에서 행남 등대까지 이어지는 동쪽 산책로다. 파도는 많이 잠잠해졌지만 산책로가 바다랑 가까운지라 군데군데 파도가 산책로까지 넘어 들어친다. 마치 중국에서나 있을법한 바위를 깎아 만든 좁은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의외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며 파도와 함께 걸을 수 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저 멀리 수평선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산책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벗삼아 조용히 걸어보기 좋은 길이다.





행남등대로 열심히 걷는중...


 행남 등대까지는 도동항에서 한 시간 남짓.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조금더 일찍 도착할 수 있겠지만 도시의 소음을 잠시 잊고 천천히 걸어보길 추천한다. 하지만 그렇게 만만한 길은 아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것 처럼 가파른 절벽을 거의 '기어 오르는' 험한 길도 있고, 파도가 만든 작은 동굴들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기도 한다.






강한 바닷바람과 파도가 만든 울릉도의 지형은 다른 섬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다소 심심해 보이는 산책로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제법 다이나믹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옆에 끼고 걸어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머리가 상쾌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다만 콘크리트를 발라 잘 정돈한 산책로가 조금 아쉽긴 했다. 자연 그대로의 울퉁불퉁한 바위 위를 따라 걸으며 발끝으로 느껴지는 울릉도의 길을 기대했지만, 아무래도 안전문제때문에 포장도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것 같다. 그러고보니 군데군데 '낙석주의'라는 팻말도 꽤 많다.




잠시 고요해진 바다를 바라보며...


 도동항에서 1km 정도를 걸어왔다. 이제부터는 행남 등대까지 산 속으로 길이 이어진다. 잠시 쉬어가며 바다를 바라보고 멍하니 서 있었다. 아직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게 잘 실감나질 않는다.


바다를 보며 날씨를 걱정하고 계신 정민러브님


 날씨는 여전히 개일줄을 모른다. 울릉도에 머무는 3일중에 단 하루만이라도 파란 하늘을 볼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늘이 야속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오징어잡이 배를 보니 비로소 울릉도에 온게 실감이 난다


 산길을 따라 10분정도 걸어 올라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행남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행남등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저동항과 멀리 죽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지만 벌써부터 불을 환하게 밝히고 오징어잡이를 떠나는 배도 보인다. 여기가 정말 울릉도긴 울릉도구나!






산책로의 진가는 어슴프레 어둠이 내려앉았을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


 다시 도동항으로 돌아가는 길, 산책로에는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진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더욱 명암이 뚜렷해진 울릉도의 바위들엔 오랜 세월 파도에 부서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람이 세운 가로등이지만 멀리서 산책로와 함께 바라보면 나름 잘 어우러지는 멋진 풍경이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도동항에 가까워졌다. 잠깐의 트레킹이지만 벌써 배가 많이 고프다.





어두워진 도동항의 거리...


 다시 돌아온 도동항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숙소인 대아리조트로 떠나는 차를 탔다. 여전히 하늘엔 구름이 가득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빗방울은 그쳤다. 내일 날씨는 어떠려나...

울릉도의 최고급 숙소, 대아리조트! 사실 안에 들어가보면 별거 없었다...


 울릉도 대아리조트는 섬 전체에서 가장 크고 고급(?) 숙소에 속하는 곳이다. 그래봐야 육지랑 비교하면 유스호스텔 수준이지만 울릉도에 이만한 숙소가 없다고 하니 오늘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이내 방에서는 즐거운 술자리가 시작되고, 내일의 일정은 모두가 까맣게 잊은채 사진 이야기를 꽃피우며 그렇게 울릉도의 밤은 깊어만 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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