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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건 지난 제주도 자전거 여행에서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마라도'에 갔었을 때였다. 마라도가 우리나라 국토 최남단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섬이어서였을까, 이때까지 우리나라 여행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해외부터 동경했던 내 자신을 다시 되돌아 보게 된 계기였달까. 그렇게 마라도에서 배를 타고 다시 나오며 문득 떠오른 곳이 바로 울릉도와 독도였다. 그저 동해에 떠 있는 작은 섬, 오징어와 호박엿이 유명한 곳... 막연히 알고 있었던 울릉도, 바로 그 섬에 가고 싶었다.

묵호항 여객터미널에서 울릉도행 배를 기다리며,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사진을 조심스레 담아본다


 하늘이 도운걸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게 되었고, 마침내 지난 주말 그토록 꿈꾸던 국토의 동쪽 끝자락 울릉도에 다녀왔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고, 기상 사정때문에 독도는 볼 수 조차 없었지만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무려 천 장 넘게 찍었더라. 그리고 역시나 내 발을 찍은 사진도 많더라. 아래 짤막한 글은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왜 여행하며발 사진을 찍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을 옮겨둔 것이다.



발은 낯선 여행지(땅)와 직접적으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유일한 신체의 일부기도 합니다. 즉,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내 발이 어떤 풍경, 어떤 텍스처와 맞닿아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여행을 할 때면 생각 날 때 마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발 사진을 찍어두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비가 왔었는지 해가 강했는지, 돌 바닥이었는지 더러운 진흙탕이었는지, 신발은 신었는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따로 적어두지 않아도 발을 찍은 사진 한 장에는 모든 게 숨김 없이 드러납니다. 심지어 지쳐 있을 때면, 사진마저 기울어지고 어둡게 찍히고 말죠.  어쩌면 발 사진을 찍는 건 여행을 다니며 스스로 치르는 작은 의식일지도 모르겠네요. 인도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에서도 생각날 때 마다 틈틈이 찍어 두었답니다.



 어디든 여행하며 내 발을 찍은 사진을 남기는건 내 버릇이다. 물론 풍경도 찍고, 꽃들도 찍고, 사람도 찍기는 하지만 그러는 사이사이 마치 지도에 내 위치를 펜으로 콕 찍어 표시하듯 그렇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셔터를 누르곤 한다. 물론 나만의 이 작은 의식은 울릉도에서도 습관처럼 계속 되었다.

발 아래로 넘실대는 울릉도의 바다는 날이 흐려도 너무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울릉도로 출발하는 날 아침까지도 서울은 비가 많이 왔었다. 영등포 역에서 출발해 묵호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묵호항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멈출줄을 몰랐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여행에 대한 설렘 한편으로 괜한 불안감과 실망감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다행히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배가 뜨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싣고, 두시간 반 만에 울릉도에 도착했다.

비에 젖은 풀과 나무, 돌들은 훨씬 진하고 아득한 풍경을 만든다


 빗줄기가 그리 굵지는 않았지만 배에서 내려 걷는 해안 산책로는 꽤 미끄러웠다. 그러고보니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비오는 날에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간 기억이 거의 없는것 같다. 나가야 하는줄 알면서도 귀찮아 스스로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대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빗속의 울릉도는 너무나 아름다운, 신비의 섬 그 자체였다. 이따금씩 산책로 위로 올라오는 파도에 신발이 홀딱 젖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가끔 다른 사람의 발도 몰래 찍곤 했다, 사진속 주인공은 '나는 똑딱이 포토그래퍼다'의 저자 정민러브님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향남등대에도 올랐다. 망망대해에 우뚝 솟은 외로운 섬 울릉도에는 육지 위로만 구름이 뭉게뭉게 떠다닌다. 서울 하늘의 구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재미있다.

한 손에는 우산, 또 한 손에는 카메라. 비오는날의 출사 기본자세!


 우산을 들고 다니며 한 손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추억이다.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고는 이내 다시 해가 뜨고, 몇 발짝 걸으면 다시 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요상한 울릉도의 날씨. 덕분에 사진속 울릉도의 표정은 웃었다가 울었다가 참 다양해서 매력적이다.


옛길 트래킹코스를 걸을땐 우비를 걸쳤지만, 그래도 신발이 젖는건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울릉도에서 비쟁이다람쥐, 상상쟁이용 같은 새로운 별명도 얻었다. 그 이유인즉슨, 내가 가는 곳만 유난히 비가 내려서였다. 원래 용띠들이 비를 부르는 그런게 있다던데, 공교롭게도 함께한 사람들 중에서 나 혼자만 용띠였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웃어넘겼지만, 다니면 다닐수록 정말 내가 가는 곳마다 희한하게 정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산책로를 따라 걸을때도 내가 먼저 앞서가고 나면 뒤는 비가 안왔다고 하니 말 다했지 뭐...

여행 내내 빗물과 함께였지만, 그래도 물이 좋아 발을 담궈봤다


 그렇게 비를 쫄딱 맞고 다녀도, 또 막상 숲속을 따라 걷다가 계곡을 만나면 다시 물이 좋아 발을 담그곤 했다. 그대로 마셔도 좋다는 울릉도의 계곡물은 발만 담궈봐도 깨끗한게 느껴진다. 시원함을 넘어서 청량감마저 든다. 피로가 싸악 풀린건 물론!




뽀송뽀송. 울릉도에서 누리던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


 울릉도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다름아닌 도동항 어귀에 앉아 발을 뽀송하게 말리던 시간이다. 여행 내내 신발이며 양말이 푹 젖어있었던 덕분에 발은 허옇게 퉁퉁 불어있기 일쑤였다. 틈틈히 시간이 날 때마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바닥에 앉아서 쉬곤 했는데,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울릉도의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다가 구름 사이로 해가 살짝 고개를 내밀기라도 할때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었다.

울릉도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없다는 사실... 그래서 하나같이 이런 시멘트 바닥 뿐이다


 항상 여행을 하며 주위에 사진찍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눠지곤 한다.
 하나는 사진을 아껴 찍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멋진 풍경이나 정말 마음에 담고 싶은 장면을 만나기 전에는 쉽게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다. 찍어온 사진의 수가 몇 안되기는 하지만 하나같이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소위 '작품'들이다. 또 하나는 정말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들이다. 시시콜콜한 풍경들부터 오늘 점심에 먹은 메뉴, 길가에 지나가는 고양이나 강아지들까지 하여튼 여행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들에 일단 카메라부터 들이대고 본다. 

홍합밥을 먹으러 들렀던 보배식당 주인 할머니의 귀여운 손자, 이게바로 진짜배기 울릉도 발 사진이다!


 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이상한 부류인것 같다. 하지만 여기저기 여행을 하며 늘 깨닫는건 멋진 '작품 사진'들 보다는 시시콜콜하고 별거 아닌 '기록'들이야 말로 여행의 추억을 더욱 그윽하게, 그리고 더 오래 간직해준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내가 울릉도에서 찍어둔 발 사진들도 그런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전망대에 올라 마주했던 감동적인 풍경은 누구나 기억하겠지만, 그때 내가 서있던 땅에는 어떤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는지, 빗물은 얼마나 고여있었는지 발은 젖어있었는지... 이런걸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까.

 작은 기억들과, 소소한 추억들이 많았던 만큼 유난히 내 발을 찍은 사진도 많았던 그런 울릉도 여행이었다. 이제 사진도 정리하고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지을 일만 남아 다시한번 웃음이 난다. 함께 했던 다른 사람들의 카메라 속에는 또 어떤 즐거운,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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