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시작한지 채 한달도 안된 그야말로 초보 라이더다. 그래서인지 좀처럼 속도도 붙지를 않고 한 시간을 달려서 출근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졸음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 몇 일 타고 다녔다고 해서 눈에 띄게 더 건강해질리도, 몸의 변화가 생길리도 만무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변화는 출퇴근길이 즐거워 졌다는 사실. 매일 아침마다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며, 혹 버스라도 놓칠까 지하철 문이 닫힐까 노심초사하는 전쟁 아닌 전쟁을 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너무나 홀가분하다. 진작부터 이렇게 다닐껄 왜 그 고생을 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콩나물 시루같은 전철해서 책 한장 볼 여유조차 가지지 못했던걸 생각하면, 아침 공기도 마시고 풀냄새도 맡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여유롭게 출퇴근 하는 지금의 하루 하루는 참 행복하다. 행복하다는 말이 조금 과분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도림천 너머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퇴근하는 길


 살다보면 기회는 늘 뜻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오곤 한다. 이제 막 자전거가 몸에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 우연히 잡지 지면에 자전거 출퇴근에 대한 원고를 써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조금 망설였다. 이제 막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한 나보다 훨씬 더 멋지게 타는 선배 라이더 분들이 많을텐데 초보티를 아직 벗지 못한 내가 과연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단순한 자전거 출퇴근 요령에 대한 딱딱한 글이 아니라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즐거움'에 대한 글이라고 하니 왠지 자신감이 생긴다. 안그래도 요새 그 즐거움에 푹 빠져서 살고 있는 나이기에 누구보다 더 즐겁게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칙칙해보이는 굴뚝들도 썩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


 자전거를 탈때는 늘 메신져 백 한켠에 작은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를 넣어 가지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크고 무거운 카메라보다는 언제든 꺼내서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기에 출퇴근 하며 궁합이 참 잘 맞는것 같다. 원고를 쓰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먼저 해본다. 내가 자전거로 출퇴근 하며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였을까. 머리 위로 지나가는 지하철보다 내가 더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니면, 도림천 복개구간을 지나며 에어컨 처럼 차가운 바람이 땀을 식혀줄때? 물론, 이런 순간 역시 짜릿한 즐거움을 주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다름아닌 퇴근길에 멋드러진 석양을 마주했을 때다.
 반짝이는 강물 위로 서서히 넘어가는 태양은 푸르른 강가를 오렌지 빛으로 조금씩 물들이는데, 아무리 빠르게 달리다가도 이런 순간을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자전거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내들게 된다.

드디어 한강을 만나는 순간,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찬찬히 정리해본다


 DSLR 만큼 사진이 잘 나오지도, 화질이 그다지 좋지도 않지만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 만큼은 무슨 사진작가라도 된 양 그렇게 신이 나더라. 지하철로, 혹은 버스로 타녔으면 절대로 몰랐을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들.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풍경이지만 마치 나 혼자만이 즐기고 있는 듯한 감상에 젖어들기도 한다.

 날이 점점 더워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출퇴근 시간에는 그나마 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8월이 되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온몸으로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자칫 지루하게 반복될뻔 했던 나의 일상을 늘 새롭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자전거 출퇴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즐거움을 알고 함께 즐길 수 있게 되는게 나의 소박한 바람이다.


공유하기 링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