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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일이면 한강에는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는 가족, 연인, 친구들로 북적인다. 전국 지방선거일이었던 어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상시보다 배는 되어보이는 사람들로, 자전거가 나아가지 못할 정도였다. 이미 한강 자전거 도로는 포화상태다. 대부분의 구간이 2차선 정도의 폭으로 되어있지만, 초보 라이더들은 두 차선을 차지하고 휘청거리며 아찔한 곡예운전을 하기 일쑤고 갑자기 유턴을 하거나 튀어나오는 위험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한다.
 늘 똑같은 풍경, 복잡한 도로 사정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당신을 위한 새로운 코스! 바로 수도권 자전거 하트 코스다.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얼마전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우연히 하트 코스를 알게 되었고, 어제가 특별한 날이었던 만큼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치고 특별한 라이딩을 떠나보기로 했다.

수도권 자전거 하트 코스 주행 지도


 '하트 코스'는 말 그대로 관악산을 가운데 두고 한강-안양천-양재천을 따라 달리는 순환 코스다. 업힐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자전거 도로로 연결 되어 있어서 초보자용 코스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총 길이만 80km에 달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코스다. '하트 코스'라는 귀여운 이름이 붙게 된 까닭은 달린 궤적이 마치 하트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그렇단다. 조금 찌그러지긴 했지만 지도에서 보니 정말 하트 모양이다.
 취향에 따라서 반시계, 혹은 시계 방향을 선택해서 돌 수 있고, 출발하는 곳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순환 코스. 집에서 가까운 안양천 합수부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거쳐가는 행정 구역만 해도 9개(영등포구-구로구-금천구-광명시-안양시-과천시-서초구-강남구-동작구)에 달하고 아직 이렇다할 장거리 라이딩 경험이 없는지라 괜히 출발 전에 지레 겁부터 먹어버렸다.

처음으로 장거리 라이딩에 나서는 티티카카, 준비됐어?!


 늘 다니던 가양대교 근처 염강 나들목으로 한강 자전거 도로에 진입했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벌써부터 한강 도로에는 열심히 페달을 밟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들 투표는 하고 온거겠지...? 완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념사진 한장 찍고, 대장정의 출발점인 안양천 합수부로 향했다.

여기서 부터 안양천을 따라 출발!


비장한(?) 마음으로 리셋버튼을 눌렀다!


 안양천 합수부에 도착하고, 속도계의 리셋 버튼을 살포시 눌렀다. 주행거리가 0으로 바뀌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하트 코스 라이딩 시작이다! 일단 안양천에서 도림천 합수부 까지 약 5km정도는 출퇴근 하면서 늘 다니던 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달렸다. 안양천을 타고 끝까지 가면 의왕시 백운호수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곳 역시 예전에 여러번 가본 적이 있는지라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았다. 룰루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페달을 밟아본다.


도로 사정에 울고, 유채꽃에 웃고~


 전에 백운호수 라이딩을 가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안양천은 자전거 도로 상태가 썩 좋지 않다. 도림천 합수부를 지나면서 부터는 일단 확연히 사람들이 줄어든다. 덕분에 홀로 여유롭게 라이딩 하기에는 좋긴 하지만 울퉁불퉁 폭격이라도 맞은 것 처럼 패인 자전거 도로는 눈살을 찌뿌리게 만든다. 특히나 바퀴가 얇은 로드차나 내 미니 스프린터 같은 경우에는 샥까지 없어서, 달리는 내내 머리가 울린다. 으으으...

 도림천 합수부를 지나 구로구를 지날 즈음, 도로 한켠으로 너무 에쁜 유채 꽃밭이 보이길래 잠시 멈춰섰다. 서울에는 서래섬에만 유채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한가득이다. 못생긴 자전거 도로때문에 한껏 심통이 나 있었지만, 예쁜 꽃밭을 보며 다시 릴렉스. 물 한모금 들이키고 다시 핸들을 잡았다.

왠지 처량해보이는 뒷모습, 지하철을 탈 줄이야 누가 알았던가


 순조롭게 흘러가던 라이딩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긴건 안양천을 따라 8km쯤 왔을 때였다. 독산교 아래로 금천구청 옆을 통과하고 있을때 자전거 종합 안내 센터라는 팻말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핸들을 돌려서 갓길로 빠졌다. '서울시에서 자전거를 정책적으로 밀어준다더니 이젠 이런것도 생겼나보다'하는 생각에 둘러보는데, 센터는 보이질 않고 대신 자전거 펌프가 광장 한켠에 놓여져 있었다. 마침 공기압도 살짝 약해진것 같아서 타이어 밸브를 열었는데...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모두 빠졌다. 그순간 아차 싶었다.
 크게 자전거 튜브에 바람을 넣는 밸브는 두 가지 타입으로 분류되는데, 그 중에서 내 자전거는 '슈레더 방식'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펌프는 슈레더 방식과 호환이 되질 않는다. 전용 펌프를 사용하거나 아답터가 있어야만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치된 펌프는 슈레더 방식이 아니었다.

 결국, 바람이 완전히 빠져버린 자전거 앞에 우두커니 서서 별 생각을 다 했다. 120 다산 콜센터에 전화도 걸어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혹시 아답터나 펌프가 없는지 도움을 청해보기도 하고... 하지만 있는 자전거포도 문을 닫았을 6월 2일 공휴일. 30분 가까이 안절부절 한 끝에, 오늘도 문을 열었다는 한강 자전거 대여소에 가서 바람을 넣고 오기로 했다. 다행히도 금천구청역이 바로 옆에 있어서 곧바로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하, 잘 가고있던걸 왜 괜히 바람을 넣는다고 깐죽댔을까... 후회가 밀려오지만 딱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용히 자전거를 끌고 여의나루 역으로 향했다.

5초만에 바람을 넣고 쌩쌩해진 티티카카, 이렇게 간단한 것을...


 여의나루역에 도착해서 자전거 대여소를 찾았다. 한강을 찾은 시민들을 위해서 공휴일에도 열심히 일하고 계셨다. 한참을 고민했었지만, 문제의 해결은 너무나 간단했다. 전화까지 따로 주셨던 친절하신 직원분 덕분에 순식간에 빵빵하게 공기를 넣고 재정비 할 수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이미 내 몸은 여의도에 와 있을 뿐이고, 어느새 시간은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은데 배는 고프고. 그냥 오늘은 집에 돌아가고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아쉬웠다. 편의점에서 초코바를 하나 사서 입에 물고는 다시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에 올랐다. 금천구청역으로 돌아가서 계속 못다한 라이딩을 이어 나갈 생각에서 였다.

잘 가던 자전거 도로가 갑자기 이렇게 휑~하게 변하기도 한다


날씨 한번 참 좋다!


 한 시간 가까이를 그렇게 지하철 위에서 씨름하니 온몸에 힘이 다 빠져버렸지만, 그래도 계속 달렸다. 종전까지만 해도 평균 25km/h를 유지하면서 달렸었는데, 지하철에서 좀 끌고 다니는게 속도계에 인식되어 버렸는지 18km/h로 떨어져 버렸다.
 더 빨리 달리고 싶어도 안양천은 라이더들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모양이다. 중간중간에는 공사판이 벌어져 있어서 비포장을 달려야 할 때도 있고, 요리조리 우회하며 꼬여있는 덕분에 접촉사고가 날 뻔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달려서 안양시에 도착했다. 학의천으로 들어가면 이제부터는 안양 시내를 가로지르게 된다.


인덕원 교에 도착해서 한 장~


 학의천은 작은 개울이라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가 따로 없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주의를 기울이며 달려야한다. 머리 위로 다리가 한 8개쯤 지나가니 드디어 인덕원교가 보인다. 인덕원교를 지나서 계속 끝까지 달리면 백운호수에 이르게 되지만, 오늘은 하트 코스를 따라서 인덕원 교에서 차도로 올라왔다.
 아직까지는 업힐도 없고 쉬운 난이도였지만, 초보자가 하트 코스에 도전한다면 가장 부담스러운게 아마 지금부터가 아닐까 싶다. 인덕원 교에서 인덕원 역 앞을 지나서 정부 과천청사까지는 자전거 도로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상으로 자전거는 원래 차도로 다니는게 맞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한국의 운전자들이 자전거에게 차선을 내어줄 만큼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정신 바짝 차리자!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늘 북사면만 보다가 반대쪽을 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하트 코스의 중심에는 서울의 명산인 관악산이 있다. 그래서인지 달리는 내내 항상 한쪽에는 관악산이 우뚝 솟아있는걸 보게 된다. 관악산 기슭이라 그런지 인덕원 역에서 과천 시내까지는 약간의 업힐이다. 그래도 열심히 페달을 밟아서 30~40km/h를 유지하고 있는데, 뒤에서 버스가 빵빵대는게 장난이 아니다. 아무래도 내 자전거가 미니 스프린터라 몸집이 작아서 만만하게 보는거 같은데, 이럴때면 좀 기분이 그렇다. 큰 차, 큰 집, 뭐든지 큰거만 좋아하는 기질이 이럴때도 발휘되는건지...

살기 좋은 도시, 과천에 온걸 환영합니다!


 드디어 과천 시내에 진입했다. 국도를 따라 올라오다가 과천시내로 진입하려면 좌회전 신호를 한번 받아야 하는데, 바깥 차선으로 계속 달리다가는 자칫 놓치기가 쉽다. 무섭긴 해도 찬찬히 살피면서 안쪽 차선으로 들어와 좌회전 대시 차선을 차지해야 한다. 소심한 마음에 횡단보도로 건너야지 마음먹고 있다가 한참을 다시 되돌아 와야만 했다. 횡단보도가 없기 때문에 꼭 미리 준비해서 좌회전을 해야만 한다.

 말로만 듣던 과천시를 처음으로 와봤다. 서울대공원이나 현대 미술관은 알았어도 시내를 이렇게 와보는건 처음이다. 가장 살기좋은 도시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것 같다. 잘 정리된 도로와 한적한 풍경이 여유롭게 느껴진다. 이대로 시내를 통과해서 계속 달리면 양재천 상류를 만날 수 있다. 
 목이 너무 말라 물을 한 병 사 마시려는데, 물값이 한 병에 무려 600원이란다. 주머니에 500원밖에 없어서 가게 아주머니께 500원 짜리 물은 없냐고 여쭈니 그냥 내고 한병 마시라고 주신다. 오예~ 기분좋게 목도 축이고 다시 양재천에 진입했다.

물이 조금 탁하긴 해도, 양재천은 라이더들의 천국이다!


 양재천은 한번도 자전거로 달려본 적이 없는 길이다. 집에서 워낙 멀기도 하고, 따로 찾아갈 일이 딱히 없었는데 마침 잘 됐다. 얀양천 도로가 엉망이었던데 비해서 양재천은 자전거 타기에 노면상태가 최상이었다. 마치 시골길을 달리는 듯한 한적한 풍경도 마음에 들고, 한강 자전거 도로보다 더 좋은 재질로 마감된 노면은 바퀴가 구르는 소리마저 경쾌하게 만든다. 샤악-샤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평지에서도 30km/h는 가뿐하게 넘어간다. 덕분에 하트 코스 전체 구간중에서 가장 평속이 높았던 구간은 양재천이었다. 계속해서 30km/h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달렸다.

양재천을 달리는 내내 혼자 뿐이었다.


강남이 가까워지는게 느껴진다.


한강에 오긴 왔는데, 이제부터가 진짜 고비다!


 어느덧 60km 가까이 달렸다. 양재천은 강남을 빙 돌아서 동호대교 근처에서 한강과 만난다. 이쯤 오니 이제 슬슬 다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양재천에서 너무 속도를 내서 였을까. 동호대교에서 가양대교 까지 돌아갈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냥 지하철을 타고 갈까 꾀도 부려봤지만, 그러기에는 여의도까지 갔다가 돌아온게 너무 아깝고 억울하다. 오기로 이 악물고 그냥 끝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무슨 다리가 그리도 많은지~ 이건 아마 성수대교일텐데~


힘들땐 달콤한 초코바가 최고~


하지만 결국 잔디밭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결국 반포대교까지 와서 뻗어버렸다. 그늘 하나 없는 잔디밭이지만 신발까지 벗어 제끼고 대자로 누우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미리 챙겨두었던 초코바를 하나 더 먹고서는 잠깐 눈을 붙인다는게 30분 넘게 잠들어 버렸다.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이젠 정말 집에 돌아가야겠다.
 이제는 속도계가 20km/h 이상 잘 올라가질 않는다. 내가 페달을 돌리는건지, 페달이 나를 돌리는건지 모르겠다. 에헤라디야.

오오오! 드디어 완주!! 혼자서 장하다며 어깨 한번 쓰다듬어 줬다.


 드디어 감격의 순간!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하트 코스를 완주했다. 저 멀리 안양천 합수부가 보이기 시작하니 혼자 감상에 젖어서는 만감이 교차한다. 어디서 또 본건 있어가지고 마지막 순간에는 두 손을 들고 혼자 불끈 주먹도 쥐었다. 일단 코스는 완주했지만 여기서 집까지는 다시 3km정도를 가야 한다. 얼른 돌아가서 수박 한통 깨먹고 싶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가며 페달을 돌렸다.

 드디어 아침에 출발했던 염강 나들목에 도착했다. 하아, 선거가 마무리 되는 6시 이전에는 돌아오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아슬아슬하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중간에 여의도까지 자전거를 메고 끌고 다녀오느냐고 진이 빠졌던것 같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집으로 향했다.

 한적한 시골길 같은 풍경을 마주하며 여유롭게 라이딩을 하고 싶다면, 하트 코스를 강력히 추천한다. 비록 안양천은 노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지만 공사가 모두 끝나면 많이 나아지지 않을까. 다만, 나같은 초심자들은 각오를 단단히 하는게 좋을 듯 하다. 무턱대고 도전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코스였다. 다음에 언제 또 달릴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휴식을...^^


오늘의 라이딩 리포트

주행거리 : 74.12km
*순수하게 하트코스 한 바퀴만의 거리다. 집에서 나오는 거리를 합치면 80km정도가 된다.
평균속력 : 20.7km/h
*계속 25km/h정도를 유지하며 달렸었는데, 지하철에서 끌차하는 동안에 확 떨어져 버렸다.
최고속력 : 39.6km/h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마도 과천 넘어갈때 국도 위에서 였던것 같다.
주행시간 : 3시간 35분
*만족스러운 랩타임이지만, 중간에 쉬는 시간이 하도 많아서 전체 소요시간은 꽤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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