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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11일)부터 광화문 광장에서는 국제 스노보드 월드컵이 열린다. 평창도 아니고, 무주도 아니고 뜬금없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스노보드 대회가 열린다고 하니 내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말이 필요없다. 이미 대회는 내일로 다가왔고 복원공사중인 광화문 위로는 스노보드 점프대가 올라타버렸다. 사진을 보고 대개 사람들의 반응은 이게뭐냐, 믿지못하겠다, 왜그랬을까 등등 다양하다.

 세종로의 차들이 양옆으로 비켜나고 세종대왕님께서 그 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잡으셨을 무렵, 광화문 광장에 대한 포스팅을 올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올리질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내일로 다가온 스노보드 월드컵 소식을 듣고 얼른 포스팅을 마무리 지어야 겠다는 생각에서 짧은 생각들을 적어본다.


 광화문 광장 조성사업이 시작되면서 보행자가 접근하기 쉽도록 신호체계와 보행동선을 개편하겠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왔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게 맞다. 광장은 적어도 차들이 들어가는 공간은 아니니깐. 공사가 다 끝나고 다시 찾은 광화문 광장은 조금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차들은 주변으로 쌩쌩 달리고있고, 광장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마치 강을 건너듯 횡단보도를 건너야만 한다. 일단 광장에 '진입'한 이후에는 그곳에서 자유롭게 다시 빠져나오기는 그리 쉽지 않다. 광장이 아니라 섬을 만들어놓은 셈이었다. 물론 횡단보도도 새로 생기고 지하도도 있었지만 걸어서 광장으로 가기에는 내 앞으로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너무 많아보인다.

 오래 머무를 수 있고, 그래도 마음 편안해야 하는곳이 마땅히 광장인데 하물며 그걸 설계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어느정도 상상이 되는지... 하지만 광화문 광장은 세심하고 철저한 보행자에 대한 배려와 생각은 온데간데 없고 '여기 광장을 만들었소! 그러니 오던지 말던지 맘대로 하게~'하고 무책임하게 외치는듯한 텅빈 공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럴꺼면 차라리 차들이라도 쌩쌩 달리게 그냥 내버려 두지 그랬어...


 차라리 거기서 끝났더라면 나았을껄, 위대하신 '세종대왕'님께서 '세종로'에 제 자리를 다시 찾아오는 과정에서도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나는 왜 그 자리에 굳이 동상을 하나 더 들여야 했는지 그 배경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동상은 그 자리에 만들어 졌고, 나는 그 길을 걸어다니는 보행자기 때문에 보기싫어도 봐야만 하게 되어버렸다. 

 광장은 대개 방향성이 없는 공간이다. 사람들이 유입되는 방향이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일들에 따라 유동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게 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길쭉한 모양새때문인지 광화문 광장은 애초부터 약간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세종대왕님께서 고개를 들어 남쪽을 바라보고 앉으시면서 동상 뒷편은 그대로 죽어버린 공간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남사당패나 탈춤 공연을 생각해보자. 무대는 늘 원형이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있는 서양식 공연장과는 달리, 단을 만들어 높이 차이를 두지도, 무대와 객석을 분리하는 구분을 짓지도 않았다. 어느 곳에 서있더라도 공연을 볼 수 있고 배우들 역시 한쪽만을 바라보고 공연하지는 않는다. 서울시에서는 여러가지 행사나 퍼포먼스를 염두에 두고 광화문 광장을 계획했을테지만 이곳은 우리가 아는 둥그런 무대가 되기에는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양지바른 남향에 자리잡은 세종대왕 동상은 그쪽에서는 나름 사진빨도 잘 받겠지만 뒤에서 보면 예쁜 하늘을 가리는 흉물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의 다른점이다.
 지금이야 광화문이 공사중이어서 그쪽 문에서 세종로를 바라볼 일이 없지만, 내년에 복원이 모두 끝나고 광화문 아래를 통해 이쪽을 바라봤을때 어떤 황당한 풍경이 펼쳐질지... 한번쯤 생각은 해 보았는지 의문이 든다.


 스노보드 월드컵도 좋고, 전 세계로 한국의 도심 풍경을 생중계하는것도 좋다. 하지만 뉴스에 얼굴을 비추고 인터뷰하는 시민들이 왜 그렇게 안좋게 생각하는지 한번쯤 귀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멀리 보이는 서울 시내를 배경으로 푸른 하늘위로 설원을 가르는 스노보드 대회라... 참 사진빨 하나는 잘 받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전 세계 사람들이 방송을 보며, 저 스키점프대 아래로 서울의 찬란한 역사를 대표하는 광화문이 있을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사실을 알면 우습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광화문을 깔아 뭉개며 까지 스노보드 점프대를 만들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력을 말이다.

 얼마전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으로 광화문 세종로 일대가 처음으로 촬영장으로 허락되었다고 한다. 총도 칼도 들지 않았던 촛불집회때도 전경버스로 단단히 잠궈두었던 세종로가, 진짜 '총'을 들고있는 NSS 요원들에게는 너무나 쉽게 열렸다. 왠지 씁쓸한 웃음이 나오는건 왜일까.

 나의, 우리의, 서울시민의 광화문 광장은 누가 옮겨버렸을까. 정말 마음편하게 뛰어놀 수 있는 우리의 광장은 어디쯤 가야 만날 수 있는걸까. 더이상, 서울시 홍보용으로 만든 '세종로 야외 무대'에서 들러리나 하고픈 시민은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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