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년을 묵혀뒀던 인도 여행기. 이제는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이다. 그동안 밀린 여행기를 쓴답시고 하루가 멀다하고 여행사진을 꺼내어 보고, 또 다시 보고 그러는 시간들이 참 좋았다. 벌써 먼 옛날 일이 되어버렸지만 사진을 주욱 훑어보고 있노라면 마치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한데... 그래서 여행기를 마치는 것조차 아쉽다. 어쩌면 그래서 나도모르게 여행기를 천천히 썼던걸지도 모르겠다. 델리를 떠나던 그날 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름도, 얼굴도 서로 몰랐던 네 남녀가 함께 모여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나와 정민이형은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떠날 예정이지만 나머지 둘은 아직도 여정이 많이 남아있던 터. 우리는 우리대로 여행이 끝나는게 아쉬워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은 그들대로 다..
오르차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새벽 네시가 넘어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음식과 물이 맞지 않아 계속 힘들어하는 누나와 그 옆에서 마지막까지 정중히 부탁을 하는 가네쉬.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더 남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길 바라는 가네쉬의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그러기엔 누나의 몸상태가 자꾸만 악화되는게 눈에 보였다. 네시가 조금 넘어서 결국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늦은시간까지 우리와 함께있어준 가네쉬를 돌려보내려 했지만 막무가내다. 결국 가네쉬는 숙소 마당에 있는 해먹에 누웠다. 인도의 여름밤은 밖에서 자도 좋을만큼 덥지만 혹시나 모기가 있을까 걱정되어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해충방지 스프레이를 가네쉬에게 건네줬다. 오르..
오늘은 여행자가 아닌 인도 오르차 아이들의 영어선생님으로서 수업을 하는 첫 날이다. 그간 대학생활을 하며 과외 아르바이트는 꾸준히 해왔었지만 이렇게 '선생님'이 되어 여러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는일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됐다. 반면 여행을 마치고 곧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할 누나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착착 모든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르차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수업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전날 밤 늦게야 잠자리에 들었다. 나중에 아이들과 수업을 한 뒤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고 수업을 준비했던것 같기도 하다. 우리 둘다 그렇게 고리타분한 사람들은 아니지만서도 어느새 한국식 수업에 너무나 익숙해져있었던게 아닐까. 파란 하늘아래 흙바닥 교실에서 진행되는 오르차에서의 영어수업..
오르차에서의 둘째날 아침은 조금 특별했다. 오늘 아침도 문을 열고 나가면 어김없이 '짜이?' 하고 외치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똑똑똑... 나가기도 전에 먼저 문을 먼저 두드리는 주인장. 무슨 일일까? 내가 짜이를 좋아하는걸 알고 일부러 가져다 준걸까?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하며 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짜이 한잔을 들고 환하게 웃는 주인장이 떡하니 서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나를 찾아온 손님이 있다고 했다. 누굴까? 이역만리 인도땅 한가운데서 낯선 여행자를 찾아온 손님이라니... 그 손님의 이름은 '가네쉬'. 인도에서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을 가진 눈이 크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반갑게 한국어로 인사를 먼저 건네는 가네쉬. 인상은 ..
인도 우타르 프레타쉬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오르차.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작은 기차역이 마을 어귀에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객은 근처 잔시에서 릭샤를 타고 들어와야 할 만큼 작고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심심치 않게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반적인 배낭여행 코스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매력이 있는 마을이다. 처음 오르차에 가기로 마음먹은건 델리나 우데뿌르, 아그라 같은 대도시에 질려서였다. 사람들은 득실거리고 릭샤 한번 타려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흥정을 해야하는 탓에 지칠대로 지쳐있었던것 같다. 반면 제썰메르나 푸쉬카르같은 작은 도시들의 여유로움은 같은 길을 몇 번씩 다시 걸어도 좋을만..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인도 여행기를 계속 이어가고자 어젯밤 열심히 사진을 고르고 편집해 준비해두었다.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타지마할과 아그라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어쩐지 자꾸만 데자뷰 같은게 느껴진다. 어째 글 내용이 익숙하고 사진도 어디서 본건만 같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예전 글목록을 다시 살펴보니 이미 타지마할 이야기는 썼던게 아닌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 다른 사진을 가져올수도 없고 이래저래 오늘은 공치게 생겼다. 다시 인도의 향수속으로 푹 빠져보려고 굳게 마음먹었건만 하필이면 오늘 이런 실수를 하다니. 비록 여행기는 아니만 아쉬운 마음에 다시 여행기를 시작하며 간단한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사실 그동안 여행기는 잠시 멈추어 있었지만 내 마음속 인도에 대한 향수는 오히려 더 깊어..
지독한 고독, 혼자만의 사색에 잠겨보는 시간들이야 말로 긴긴 배낭여행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 서울땅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다보면 가만히 앉아 고민과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설령 시간이 지나 그때의 그 고민이 쓸데없는 잡생각이었다는 후회가 들더라도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어느새 나는 지구 반대편에 와있는, 그런 세상이다. 두 발로 찬찬히 한발씩 내 딛으며 여행을 하다보면 이따금씩 내가 어디에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하는데, 그럴때면 난 허리를 숙여 내 발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지금 두 발로 밟고 서 있는 바로 그곳의 좌표를 기억하는 일종의 혼자만의 의식인 셈이다. 와장창! 치토..
2년전 유럽을 여행할때만 해도 그렇게 한국음식이 그립거나 먹고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에서는 비싼 돈을 주고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고급 요리들을 매일같이 먹을 수 있었으니 굳이 더 비싼 돈을 줘가면서 까지 한국음식을 찾아 헤멜 필요가 없었던게 아닐까. 하지만 인도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코 끝이 찡해질 정도의 강한 향신료와 어딜가도 하나같이 짜고, 느끼하고, 맵고... 너무 강렬한 인도음식들만으로 여행내내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무리가 아니었을까. 처음 인도에 도착했을때는 매일같이 서민들이 자주 찾는 진짜 인도식 식당에 들어가 이것저것 먹어보면서 마냥 신났었던것 같다. 하지만 나역시 영락없는 한국사람인 모양이다. 일주일정도 지나고 나니 어느샌가 한국음식, 김치, 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