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이틀간의 짧았던 베를린과의 만남. 그 마지막은 파울, 우린이, 제시,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게될 새해 맞이다. 처음엔 우리가 머무는 토비의 아파트로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할 계획이었지만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많아져 장소를 바꿨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우리에게 열쇠를 전해주었던 윗집 제시도 파티에 함께 가기로 했다. 2011년 독일에서의 마지막 기록. 지금부터 새해 맞이 세 시간전으로 돌아가 다시 찬찬히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보자. 세 시간 전 집근처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파티장소로 가려는데 벌써부터 거리에는 폭죽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참 급하기도 하지. 사실 폭죽소리는 해질 무렵부터 베를린 전체에 서서히 울려퍼지기 시작했었다,. 심지어 지하철 역 안에서 마구 쏘아대는 철없는 젊은이들도 간혹..
맛있는 음식, 예쁜 선물,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욱 풍성했던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지나갔다. 원래 크리스마스 이후 우리의 계획은 베를린으로 올라가 그 곳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 하지만 막상 생각해보니 시간이 꽤 많이 남았더라. 어차피 멀리 가있는것 보다는 파울네 집에서 몇 일만 더 신세지는게 좋을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이제는 정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파울네 집 뒷마당에 있는 닭들이랑 인사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일기장에 끄적여 보기도 하지만 어쩐지 심심하다. 그래서 우린 스키장으로 향했다. 뒤셀도르프에서 가까운 곳에 '실내 스키장'이 하나 있다고 해서 전날 밤 잠깐 찾아봤었다. 나중에 들어서야 알았지만 우리나라에도(그것도 서울 근교에) 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침이 밝았다. 어느덧 독일에 온 지도 나흘째지만 빡빡한 학교 수업에 시달리던 마드리드에서와는 달리 딱히 할일이 정해지지 않은 편안한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독일에서의 시간은 더욱 느리게만 흘렀다. 날씨도 한 몫 단단히 했다. 파란 하늘과 쨍한 햇살이 익숙한 마드리드와는 달리, 어딘가 우중충 하면서도 빗방울을 가득 머금은 뒤셀도르프의 하늘은 늘 멈춰있는것만 같았다. 독일 사람들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란 우리나라의 설날과 견줄 만큼 큰 명절이다. 유럽에 오기 전까지는(더욱 정확히는 파울네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전까진) 몰랐지만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더라. 그런 점에서 난 참 행운아다. 멀리 마드리드에서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보낸것도 과분한데 독일의 가정집..
마드리드 공과대학교의 2011년 2학기 공식 종강일은 12월 21일 수요일. 그리고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기 위해 독일 뒤셀도르프로 떠나는 내 비행기표 역시 12월 21일 출발이었다. 다른 과목들은 일찍이 종강을 했지만 한국에서도 늘 그랬듯이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는건 설계스튜디오 과목이다. 강의 계획표 상에는 12월 19일 월요일 마감이었던게 어찌된 영문인지 21일 수요일로 일정이 변경되어버렸다. 마감 제출시간은 정오~오후 1시 사이, 뒤셀도르프로 가는 내 비행기표는 오전 11시 20분 출발. 결국 교수님께 따로 말씀드려 하루 일찍 마감을 하고서야 독일로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마드리드에서의 교환학기 마지막 할 일을 끝내고, 치킨과 맥주를 곁들인 소박한 종강파티 뒤에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오전 1..
여행을 하면서 매일 글을 쓴다는건 매우 의미있는 일이지만, 또한 그만큼 어려운 일도 없는것 같다. 시간 날때마다 기차에서 글을 조금씩 쓰려 생각했지만, 여행에 지쳐버린 몸은 이내 잠들어버리기 일쑤다. 사실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벌써 7월 11일. 프라하에서 빈으로 가는 열차 안이다. 뜨거운 태양아래 광장의 카페에 앉아서 여유롭게 커피한잔과 함께하는 시간, 아름다운 강가 잔디밭에 앉아서 있는 시간, 흔들리는 기차안에서 그림같은 풍경에 취해있는 시간, 어디에 있더라도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사람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아 힘들더라도 하루에 꼭 한번씩 내 기억과 생각의 일부를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기차안에서 이렇게 또 펜을 든다. 한국에서 여행계획을 세우면서, 남들이 다 가는 ..
유럽에서의 세번째 밤, 호스텔 복도의 작은 조명아래 앉아 맥주에 안껏 취한 채 펜을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본 야간열차는 생각보다 많이 편했다. 잠든 승객들을 태우고 밤새 국경을 넘는 야간열차. 피곤함도 잊은채 그 낭만에 젖어 둘째밤을 그렇게 보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리 편하기만 한것도 아니었다. 밤새 뒤척이며 이렇게도 누웠다가 또 저렇게도 누웠다가 하며 아마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든 것 같다. 아침이 밝았다. 뮌헨까지는 아직 한시간정도 남은 시각.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들판의 햇살로, 졸린 눈을 비비고 눈을 떳다. 확실히 침대에서 잔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온몸이 쑤셨지만, 마트에서 사 두었던 우유와 미숫가루로 아침을 해결하고 본격적인 독일에서의 하루를 힘차게 시작했다. 야간열차에서 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