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은 대중 앞에 내어짐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화려함의 이면엔 언제나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수많은 스태프들이 있다. 크레딧에 이름 한 줄 나올까 조마조마할지언정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그들의 노고를 어느 누가 하찮다고 여길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언제나 전시장에선 하얀 벽 이전의 모습이 더 궁금하고, 공연장에선 까만 장막 뒤편의 일들에 더 관심이 많은 나였다. God Knows.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와 인터뷰를 위해 뉴욕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그가 들려준 이야기다. '설마 이런 사소한 것까지 누가 알아볼까요?’라는 직원의 우문(愚問)에 거장 건축가는 '신은 알고 계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서 스태프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작은 것 하나 포기 않고 끝까지 물..
거리에는 아직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늘은 두 달 전 인천 앞바다에서 배로 부쳐진 전시물품들이 아침 일찍 미술관으로 반입되는 날이다. 대부분이 원목으로 만든 가구인지라 혹여나 작렬하는 적도의 태양 아래 틀어지거나 휘어지진 않았을까 내심 걱정하던 차였다. 아무래도 컨테이너에서 내리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봐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서둘러 호텔 문을 나섰다. 밀라노 도심 서쪽에 위치한 '트리엔날레 지구'는 거대한 녹지대를 중심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스포르체스코 성(Castello Sforzesco)과 다양한 미술관 및 박물관이 산재하는 곳이다. 내가 담당하는 전시가 열리게 될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박물관(Triennale di Milano)'은 그중 단연..
‘다시 유럽에 올 수 있을까?’ 스무 살, 유럽으로의 첫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모은 푼돈에 부모님의 지원금까지 보태어 무리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물론 여행지로서의 유럽은 충분히 멋지고 좋은 곳이었지만 그만큼 과분했다. 그곳에서 한 달간 수없이 마주했던 감동들은 마치 손 틈새로 새어나가는 모래알과 같아 다시는 쥐기 힘들 것만 같았다. 인생이 충분히 길다는걸 채 다 알지 못했던 그때, 나는 유럽에 다시는 오지 못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후, 나는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다시 유럽 땅을 밟았다. 생각보다 빠른 재회였다. 하지만 아직 학생이기에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 여기고 매 순간을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열정적으로 살았다. 무..
덜컹. 크게 한 번 출렁이는 차축의 진동이 창문에 기댄 내 머리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시 스무 살 나이에 유럽을 배낭여행 중이던 나는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니스'를 출발해 '생폴 드 방스'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순간 안내방송에서 들리는 '방스'라는 단어에 반사적으로 가방을 챙겨 버스를 내렸다. 하지만 이상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가이드북에 나온 마을 사진과 영 딴판인 게 아닌가. 분명 '방스'라고는 했는데 여기가 정말 '생폴 드 방스'가 맞는지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엔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친구들과 상의 끝에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생폴!'이라고 소리 지르며 열심히 손을 흔들었고, 운 좋게도 푸조 한 대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버스를 내린 곳은 ..
정말이지 시에스타는 스페인에나 있는 줄로만 알았다. 점심도 못 먹고 마르세유에서부터 열심히 달려왔건만 이 작은 마을에는 우리 부부 허기를 달래줄 빵 한 조각 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나마 문이 열려있는 식당들의 주방은 불이 꺼진 지 오래고 저녁 장사 전까지는 재료마저 없단다.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굶게 생겼다. 시계는 이제 막 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한낮의 찜통 같은 더위속에 체력만 허비한 채로 터덜터덜 차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시동을 걸자 내비게이션이 남은 길안내를 다시 시작했다. 최종 목적지였던 르 토로네 수도원(Abbaye du Thoronet)까지는 겨우 5km 만을 앞두고 있었지만 목적지 부근 지도상에는 눈 씻고 봐도 식당은커녕 작은 건물 하나 없음이 분명했다. 수도원 기행 중에..
군더더기 하나 없이 미끈한 맵시의 '그 다리'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브리핑 자료에 들어갈 근사한 '다리(bridge)' 이미지를 검색하던 중이었다. 부러질 듯 말듯한 조형, 군더더기 하나 없는 디테일, 중간 기둥 없이 물 위를 가로지르는 담대함 까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다는 '그 다리'는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와 정말이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작업은 무사히 끝났다. 조금 더 정보를 찾아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일상의 고단함에 떠밀려 버렸다. 그렇게 '그 다리'는 한동안 나의 뇌리에서 잊혀 있었다. '그 다리'를 다시 마주친 건 유니테 다비타시옹에서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구글 지도에서 마르세유 항구 근처의 주차할 곳을 찾던 중 어쩐지 낯익은 건물을 발견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계단은 층과 층을 연결하는 아주 기본적인 건축 요소이다. 기원전에 세워진 지구라트(Ziggurat) 정면에 긴 계단이 자리하고 있음을 떠올려보면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계단은 사실상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수 백 미터 높이의 초고층 건물이 전 세계에 천여 개가 넘고* 불과 수 초 내로 엘리베이터가 몇십층을 오르내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은 지금 사는 아파트나 근무하는 사무실의 계단실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가?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걸어 다니지 않는 이상 계단실에 들어가 볼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고층건물의 계단을 법에서 부르는 이름조차 '특별피난계단'이다. '특별히 피난할'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모르고 살아도 될 것..
건축하는 일은 곧 땅에 대한 존중과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설계 작업은 으레 그 땅을 직접 찾아가 두 발로 걸으며, 두 눈으로 면밀하게 살피는 일로 시작된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와 연필을 쥐기 전부터 건축가의 사유라는 것이 이미 시작되는 까닭이다. 내가 건축에 매력을 느끼는 건 자연과 인간이 서로 밀고 당기며 균형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지경계라는 가상의 선을 땅 위에서 찾아내고 이를 기준으로 집의 향과 배치를 결정하는 일부터가 당장 그렇다. 더욱이 본격적인 설계가 시작되면 중력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 자연의 힘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여야 하며, 건물이 높아지면 질수록 바람과도 싸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사가 시작되면 더욱 힘겨운 과정의 연속이다. 땅을 파고, 메우고, 벽을 세우고, 붙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