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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가운데에 돌이 우뚝 솟아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촉석루.
 촉석루라는 정식 명칭 보다는 '논개'라고 하면 아!하고 떠오르는 바로 그 곳이다.

 촉석루가 발 딛고 있는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무대이기도 하다. 손가락이 미끄러질까 열손가락을 깍지 낀 채 왜장을 안고 강물에 몸을 던졌던 논개의 충절을 떠올려보며 진주성을 찾아간다. 

 내가 진주성에 도착했을때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있었다. 희끄무레한 하늘 아래 황토빛 남강은, 진주성을 감싸 흐르며, 빗소리와 함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의암에서 바라본 촉석루


 진주성은 삼국시대에 본디 토성으로 쌓아졌었지만, 왜구의 침입을 대비해 돌로 다시 고쳐 쌓았다고 한다. 성의 남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청천, 북쪽으로는 못이 하나 있고 주위가 절벽으로 되어 지리적인 요건을 잘 갖춘 성이기도 하다.

 촉석루는 전쟁이 났을때 장수가 병졸을 지휘하기 위한 장소로 쓰였으며, 평소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였다.
 논개가 의암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뛰어내렸을 때, 촉석루에서는 승리에 취한 왜장들의 자축연이 한창이었다고 한다.

진주성의 촉석문, 촉석루와 가장 가까운 문이다


 촉석문을 지나 진주성 안으로 들어간다. 멀리 촉석루의 모습도 살짝 보인다.
 
 진주까지 오는 동안 내내 잠이 들었었다. 차에서 막 내렸을때는 잠이 덜 깬데다가 날씨도 흐려 기분이 별로였는데 이상하게도 진주성에 들어가면서 부터는 머리가 맑아지는 상쾌한 느낌이 온몸에 전해져 온다. 성 내에는, 고요함 가운데에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만 귓가에서 맴돈다.

진주성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촉석문을 들어서자마자 꽃으로 만든 예쁜 글씨판이 보인다.
 늘 하던식으로 플라스틱으로 된 간판이나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조각이 떡하니 있었으면 기분이 조금은 언짢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빨간 꽃, 하얀 꽃이 만들어내는 꽃 글씨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돌로된 성벽과 참 잘 어울린다.

왼쪽으로는 남강, 오른쪽으로는 촉석루가 보인다


 남강과 촉석루가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별 생각없이 지나칠 수도 있는, 그리 높지않은 성벽이지만 논개에게는 생과 사를 갈라놓는 경계였으리라.
  
 내 또래의 한국 아이들이라면 길고 긴 노래가사를 몽땅 외울정도로 즐겨 불렀던 노래가 있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가사를 외운지 벌써 10년도 더 되었지만 가사 한소절, 한소절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태정태세문단세
사육신과 생육신
몸바쳐서 논개
행주치마 권율
역사는 흐른다...

 무슨뜻인지도 모르고 멜로디가 흥겨워 따라부르던 노래, 그 노래에는 분명 논개가 있었다.
하지만 노래가사 처럼, 역사는 언제나 쉼없이 흘러가 버리고, 사람들의 머리에서 쉽게 잊혀지곤 한다.
 자칫 잊혀졌을지도 모를 우리 역사의 한자락을, 촉석루는 움켜쥔 작은 주먹처럼 그 자리에서 지키고 서 있었다.   

촉석루의 앞뜰


누각에 오르면 남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촉석루 앞 마당을 지나 작은 계단을 따라 뒷편으로 내려가면, 논개가 뛰어내렸던 바로 그 '의암'이 있다.
 진주성을 소개하는 책자를 보다 보면 하나같이 강 건너편에서 의암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사진도 예쁘고, 분위기도 있지만 아무래도 의암의 진정한 의미는 그 위에 서서 남강을 바라보았을 때에 비로소 알 수 있는건 아닐까.
그런 사진이 한장이라도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의암에서 바라보는 남강의 모습


 의암에 올라 남강을 바라본다. 논개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바라본 풍경이 이러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저 강물을 바라보았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자리다.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해 바위 위에 주황색 페인트로 칠해놓은 경계선은, 마치 내 눈엔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도 보여진다. 

 의암 옆에 있는 의암사적비에는 마음 한켠을 적시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유독 가파른 그 바위에 그녀 홀로 우뚝 서있도다.
그녀가 그 바위 아니었다면 어찌 죽을 곳을 얻었겠으며
바위인들 이 여인 아니었으면 어찌 의롭단 소리를 듣겠는가.
이 남강가의 높다란 바위에는 만고의 꽃 다운 마음이 서려있도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주위를 찬찬히 훑어보는데, 강위에 왠 나룻배 한 척이 보인다. 촉석루에 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가짜로 만들어 놓은 설치물이다. 한술 더 떠서 배위에는 엉성하게 만들어 놓은 노젓는 사람이 허수아비처럼 서있다. 다른 사진들을 찾아보니 처음에는 사람없이 배만있었던 것 같다.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심심한 남강 풍경에 나름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다.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의암, 그리고 최근에 만들어진 엉뚱한 조각품.
 한자리에서 보고있으니 기분이 조금 묘해지는 구석이 있다.

조그맣게 마련된 사당, 의기사


 촉석루 옆에는 '의기사'라는 논개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하나 있다.
 힘있으면서도 어딘가 슬퍼보이는 영정의 표정은 무얼 말하고 싶었던걸까. 
 

성벽을 따라 산책로가 나 있다


성벽에서는 오랜 시간의 켜가 느껴지는 듯 하다


 촉석루에서 나와 조금 걷다보면 이렇게 좋은 산책로가 진주성 성벽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매미가 한창 시끄럽던 무더운 여름날이었지만, 손으로 성벽을 하나씩 더듬으며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새 시끄러운 매미소리 대신 마음엔 고요함이 한가득 찾아오는 것만 같다.

성벽아래... 이름모를 들꽃


 나지막한 성벽 너머로 진주 시내의 북적이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보라빛 들꽃들은 마치, 도시의 시끄러운 소음을 피해 성벽 아래 숨어버린것만 같다. 

 힘없고 연약한 들꽃을 위해 온몸으로 바람을 막아내는 성벽의 모습은 논개를 닮았다.
 비록 이제 성벽은 낡고 더러워져 아무도 찾아주지 않지만, 마침내 예쁜 보라빛 꽃을 피워내는 걸 보며 웃고있지 않을까.
 산책을 마치고 진주성을 나오는 길, 어느새 하늘에 허연 구름은 걷히고 따사로운 태양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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