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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바다와 섬들이 만들어내는 비경으로 유명한 다도해.
 경상남도 통영은 남해안의 대표적인 관광지중 한 곳으로,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릴만큼 빼어난 경치와 볼거리를 자랑한다. 소매물도, 비진도, 욕지도 등 가까운 섬들로 나가는 배가 출발하는 곳이기도하고, 매콤하고 맛있는 충무김밥과 뜨끈한 시락국하면 생각나는 곳이기도 하다.
 파란 바다위에 떠있는 초록빛 섬들을 돌아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가볼곳이 많은 통영이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바닷가의 조그만 달동네 한 곳이 통영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통영의 '강구안항'을 바라보며 우뚝 솟은 언덕에는 조그마한 달동네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미 관광객들에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동피랑 마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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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에서 바라본 통영 '강구안항'의 모습


 '동피랑'
 어째 우리나라말이 아닌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어색한 마을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 해본다.
 동피랑이라는 마을 이름은 '동쪽의 벼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작고 오래된 마을, 왜 그런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간다.

 통영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이곳이 대체 무슨 사연으로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될 수 있었던 걸까. 동피랑의 작고 꼬물꼬물한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이 동네가 산동네라 해서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지 않는 이미지였거든요.
근데 바닷가에서 쳐다보니까 예쁜 그림들이 막 그려진 거예요. 아, 너무 예쁘다" - 정인숙 (47, 통영시민)

"난 예전에 동피랑 살고 지금은 아나는데, 가본께 벽에 그림도 그려놓고.
뭐꼬 동피랑은 옛날엔 길이 안났는데 새 길 나갖고 공원이 들어선다 하대요.
달동네가 돼갖고. 그런께 개발을 할끼랍니다." - 고춘자 (64, 중앙시장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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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서 바라보면 언덕위로 동피랑 마을이 보인다


 
동피랑은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삶의 터전이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서야 겨우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길을 물으러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동피랑을 찾냐며 먼저 물어오시는걸 보니 다른 사람들도 동피랑을 찾기위해 꽤 애를 먹었던 모양이다.

 관광지로 알고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이 많지만, 조그만 골목길을 따라서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동네.
 멀리 언덕위로 보이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이 바로 동피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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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서면서 부터, 축대에 그려진 벽화들이 눈에 띈다


 동피랑을 평범한 달동네에서 통영의 관광명소로 바꾸어 놓은건 다름아닌 이 '벽화'들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골목 입구부터 형형색색의 벽화들로 마을 전체가 마치 커다란 캔버스 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바로 이 벽화를 보기위해 먼 길을 달려 통영의 작은 마을 동피랑까지 찾아오고 있었다.

"내가 물어봤거든. 이걸 우에 알고 여까지 오요? 이라니깐 인터넷 봐서 참 좋단기라. 하하하. 억수로 좋단기라.
정신없어 죽갔는데 뭐이 좋냐고 하니까 엄마가 그림볼줄 몰라서 그런다 카대요." - 배영임 (6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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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하고 좁은 골목길에도 어김없이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너무나 낙후된 지역이어서 통영 시민들 조차도 외면했었던 달동네 동피랑.
 낡고 지저분한 집이며 벽이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든곳을 캔버스 삼아, 작년 가을 전국의 미대생들이 함께 모여 담벼락에 정성스레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구불구불 그 끝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도 알 수 조차없는 좁은 골목길들은 그렇게 조금씩 아름다운 벽화들로 채워져 나갔다. 작은 손길이 모여 지금의 아름다운 마을 동피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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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색으로 칠해진 시멘트 블록들은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듯 하다


 한 사람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런지, 집집마다 그려진 벽화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어린이 동화책을 보는듯한 서정적인 그림에서부터 과격한 그래피티까지. 조금씩 다른듯하면서도 어우러지는 벽화들을 구경하는게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끔은 벽화를 그린사람의 이름이 조그맣게 써있기도하고, 재미있는 문구가 반갑게 맞아주기도 한다.

 마을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하지만, 사람들은 벽화를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에 푹 빠져, 힘든것도 잊은 채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모두들 입 주위에는 살며시 미소가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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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많은 벽화들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을 구석구석 한곳도 빼놓지 않고 그려진 벽화들에는 저마다 그린 사람의 정성이 가득 담겨져 있다.
 벽화가 없었다면 그 누구라도 눈길한번 주지 않고 지나쳐 버렸을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작은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지금의 동피랑을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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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마음에 들었던 코끼리 그림


 수많은 벽화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이 코끼리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담벼락 속에서 튀어나와 살아 움직일것만 같은 섬세한 그림솜씨는 물론이고, 무더운 날씨에 골목길을 오르다 발견한 파랗게 칠해진 담벼락은 바라보는 이에게 시원함까지 덤으로 선사하고 있었다. 더운 날씨 탓인지, 저 코에서 시원한 물줄기라도 한바탕 쏟아져 나왔으면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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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반가워! 안녕!'하며 소리쳐 인사하고 싶어진다


 낑낑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사진속의 귀여운 캐릭터와 마주친다.
 굴뚝에 걸터앉아 손을 흔들며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잠시라도 벽화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주는 이런 작은 재미들이 마을 곳곳에 숨어서 관광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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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에 붙어있는 조그만 판대기, 오래된 편지함.
 무엇하나 놓치지 않고 저마다의 느낌을 살려 벽화의 일부로 다시 태어났다.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던 미대생들도 달동네 풍경에 조금은 당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래된 마을을 이루고 있던 흔적들, 작은 물건들 하나까지도 자신의 손을 거치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점점 더 그림을 그리는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았던 그들의 섬세한 손길이 지금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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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땅을 배경삼고, 새하얀 벽을 캔버스 삼아 그려진 벽화들은 이미 벽을 넘어서 골목길 풍경과 어우러지며 마을 구석구석을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어 놓았다.
 작은 붓질 하나 하나가 모여 만든 아름다운 기적, 그림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의 모습이 아름답게 통영의 한켠을 장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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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에 정신이 팔려있었지만, 잠시 눈을 돌려보면 허름한 판자집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듯 마을을 둘러보고 가는 관광객들에게는, 동피랑이 그저 '아름다운 벽화가 있는 마을' 정도로 기억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 벽화가 그려지기 까지는 깊은 사연이 얽혀 있었다.

 전국을 휘몰아친 재개발의 바람을 동피랑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통영시에서는 낙후된 달동네인 동피랑을 없에는 대신 이곳에 도로와 공원을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수십년의 역사와 함께해온, 주민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마을이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였다.

"나 14살 묵어 여기 동피랑 올라왔다. 나이 71인데, 여서 얼마나 오래 살았노.
지금 나는 잠이 안오는데 철거되고 어디 가나 싶어서. 나는 몬 나간다.
우린 갈 데가 없어. 가서 전세도 못 얻고. 서민아파트 준다하지만,
벌이가 없는데 관리비를 어떻게 책임질 거고. 그러니께는 몬 하는기라." - 이양순 할머니 (7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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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간에 사이좋게 피어있는 진짜꽃과 가짜꽃 한송이


 갈 곳없는 형편의 주민들이 재개발을 막기위해 택한 방법은 바로 '그림'이었다.
 피켓을 들고 현수막을 걸어 농성을 하는 대신, 낙후된 달동네 동피랑을 '한번쯤 찾아가보고픈 아름다운 마을, 동피랑'으로 새롭게 만드는 새로운 발상이었다. 그리고 작전은 대 성공이었다.

 '푸른통영21'이라는 단체의 주도로 이루어진 '동피랑의 색과 그림이 있는 골목 만들기' 프로젝트는 사라질 위기에 처할 동피랑을 지켜냄과 동시에 통영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또하나의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저번에 기릴라카다가 고마 내 안기렸거든. 안기렸는데 우리집 아들이 보고
우리집에만 안 기리놔놓으니께 이상하다, 기리라케싸서 그래 기리는 거지.
뜯길긴가 안 뜯길긴가 모르지만 뜯긴다 해쌌는데. 꽃동산 맨든다 하면서.
이 좋은데를 세상에 뜯기면 어뜨카노." -김윤선 할머니 (6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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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의 삶의 고스란히 녹아있는 동피랑은 이제 '없에선 안될'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다.
 남들과 다른 새로운 생각을 통해 마을도 지켜내고 유명세까지 타게된 동피랑은 이제 통영의 또하나의 관광명소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 동피랑을 찾아오고, 기억할 것이고 동피랑은 오래오래 그 자리에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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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피랑에 꿈이 살고있습니다'
 주민들의 소망과, 아름다운 대학생들의 꿈이 모여 만들어낸 통영의 아름다운 기적.
 개발로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한 주민들의 삶터, 달동네 동피랑의 낡고 허름한 담장은 알록달록 새 옷을 입고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색과 그림이 있는 골목길엔 늘 행복과 웃음이 피어나고 동피랑에선 웃음소리가 연일 끊이지 않고 피어오른다.

많은 벽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는데,
이분들에겐 또 다른 변화라고요.
꼭 보기 싫어 없에야 될, 불편한 그런 곳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단지로써,
관광지나 공원이란 것도 사람들이 더불어 지낼 때, 바른 게 되는 거지.
그냥 공원만 조성해놨다고 해서 그게 과연 좋은 걸까.
이분들이 계속 이 마을에서 생활 하실 수 있도록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성들여 그린 그림 다 없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아깝잖아요. - 정인숙 (47, 통영시민)


 벽에 써있는 말처럼, 모두의 꿈이 소중히 간직되는 마을 동피랑.
 아름다운 마을 동피랑이 언제까지나 그 모습을 간직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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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
 동피랑의 벽화들은 가로등 불빛아래서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늦은 저녁시간, 주황색 가로등 불빛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벽화들을 감상해보자.


 


인터뷰 출처
http://blog.daum.net/oh_happy_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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