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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보리밭, 고창읍성, 선운사, 고인돌마을...
 전라북도 고창에는 가볼곳도 많고 즐길것도 많다.
 게다가 풍천장어와 복분자술 한잔이 함께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곳이 어디 있으랴.

 헌데, 작년 초부터 고창에서 둘러봐야 할곳이 한곳 더 생겼다고 하는데, 이미 신문, 잡지 등 매스컴을 통해서 한껏 유명세를 타고있는 안현 '돋음볕 마을'이다.

 '돋음볕'은 해돋이 무렵 처음으로 솟아오르는 햇볕이라는 예쁜 뜻을 가진 순 우리말이란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지만 왠지모르게 정감가는 따스한 느낌의 말이다. 이렇게 예쁜 이름을 가진 '돋음볕 마을'은 과연 어떤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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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들어서면서부터 조금은 다른 풍경에 눈이간다


 얼핏보면 여느 시골마을과 다를바 없어보이는 소박한 풍경.
 하지만 어째 마을 초입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것같은 하얀 벽은 도화지가 되어 있었고, 그 위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국화꽃이 한송이, 한송이 씩 심어져 있었다.

 본래 돋음볕 마을이 있는 이곳 선운리는 미당 서정주 선생이 생가가 있는곳으로 유명하다. 그의 생가와 외가가 모두 이곳에 아직까지 남아있고, 가까운곳에 미당 시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선운리는 안현, 진마, 신흥 이렇게 세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안현마을이 바로 이곳 '돋음볕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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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을 따라서 계속 이어지는 국화꽃의 향연


 마을 전체의 담벼락은 물론이고, 지붕이나 집 벽에 그림을 그려놓은 곳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벽화 길이를 모두 더하면 무려 1km에 이른단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벽화가 그려지게 된 것일까.

원래 이곳 안현마을은 국화꽃으로 유명한 마을이란다. 가을이면 마을 주위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국화꽃이 무려 100억송이에 달한다고 한다. 미당 시문학관을 들렀다가 국화꽃을 보러 잠시 들르는 곳이었던 안현마을은 계절이 지나면 시들어버리는 국화꽃을 대신해서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을 불러들일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렇게 해서 하얀 담벼락 도화지 위에 그려진 국화꽃 '벽화'가 태어나게 되었다. 조그만 시골마을인 이곳이 지금은 연 10만명 이상이 다녀가는 고창의 명소가 되었다고 하니 나름 성공적인 작전이었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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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던 집은 미당의 시한수로 새롭게 태어난다


  나름 정성을 들인 벽화가 그려진게, 허옇게 칠해진 벽이 멀뚱멀뚱 서있는것보다는 훨씬 낫다.
 마을 사이사이마다 숨겨진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 한편씩 찾아보는것도 재미있겠다.
 시는 책속에만 있는줄 알았지 이렇게 담벼락에서 씌여져서 관광객들에게 읽히고 있을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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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하게 그려진 노란 국화꽃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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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형태로 그려진 된 하얀 국화꽃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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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림'같은 국화꽃도 있다


 시와 어우러져 담벼락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국화꽃들. 그 모습도 가지가지다.
 아직은 7월이라 주변으로 푸르른 풀들만 무성하지만, 국화꽃이 만발하는 가을에 이곳을 다시 찾으면 '진짜 국화꽃'들 사이에 피어난 '가짜 국화꽃'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이 묘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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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초상화 뒤로, 노란 원고지위에 흩뿌려진 국화송이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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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할머님께서 거울보는걸 굉장히 좋아하셨나보다


 미당의 시와 국화꽃 말고도 아직 재미있는게 한가지 더 남아있다.
 그 어디에서도 보지못했던 초대형 초상화들. 놀랍게도 벽에 그려진 초상화의 주인공은 그 집에 살고계신 아버님, 어머님이란다. 누가봐도 그집에 어떤사람이 살고있는지 한눈에 보이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벽화.

 우리가 돋음볕마을을 찾았을때는 너무 이른 아침이라 그랬는지 마을에는 밖에 나와계신분이 한분도 없었지만, 관광객들이 단체로 찾아오고 그럴때면 가끔씩 집앞에 나와서 그림에대해 설명도 해주시기도 한단다. 인터넷을 조금 뒤져보면 집주인 어르신계서 초상화 앞에서 함께 찍힌 사진이 종종 보이는데, 깜짝 놀랄정도로 실물과 그림이 똑같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대학생들이 그려준 그림이라고 하는데 정말 실물과 똑같다고 한다.

 너무 이른시간만 아니었으면 직접 주인 어르신들도 만나고 얘기도 들어볼 수 있었을텐데 그냥 나와야 해서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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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의 아름다운 초상화 한 점


 집집마다 제각각 재미있는 표정, 멋진얼굴을 담은 초상화들이 많았지만 이 젊은 부부의 초상화가 가장 예쁘게 보였었다. 일부러 심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랫쪽 화단에 핀 다홍색 꽃들위로 수줍게 머리를 내밀고 있는 부부의 모습과 그 뒤로 보이는 옅은 하트모양이 잘 어울린다.

 잘은 몰라도, 왠지 금슬좋게 오래오래 행복하실것만 같은 두 분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 주인공들은 사진속 뒤로 보이는 집 안에서 주무시고 계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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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것 없어서 더욱 정감이 가는 돋음볕마을의 풍경


 작고 소박한 집과 그 앞으로 옅게 채색된 파스텔톤 국화꽃들.
 어울리는듯 안어울리는듯 나란히 함께있는 모습이 이곳 돋음볕 마을의 매력인듯 싶다.

 지붕밑에 매달린 마늘과 그아래 조그만 새끼강아지 한마리, 사람사는 냄새가 폴폴 이곳까지 풍겨오는게 어릴적 좋아했던 시골 외할머니댁이 생각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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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평범한 일상이 펼쳐져 있다


 돋음볕마을은 40가구 정도만이 살고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어서 삼십분 정도면 충분히 마을을 한바퀴 둘러볼 수 있다. 지금이 가을이면 주변으로 논길을 따라 국화꽃 향기라도 맡아보러 가겠지만, 한여름 이른 아침에는 고요한 아침안개만 마을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하도 유명세를 타서 굉장히 특별한 마을일줄 알았지만, 길 바로 옆으로는 이렇게 여느 농촌 마을과 다를바 없는 소박한 일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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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향기를 맡은 나비한마리가 벽화속으로 따라 들어왔나보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의 경치나, 멋진 볼거리를 가진 관광지라 할지라도 일단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고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오게되면 처음의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기가 쉽다. 관광객들을 계속 유치하기위한 속보이는 싸구려 정책들, 관광객보다 더 많은 잡상인과 음식점, 이것저것 자꾸 덧붙여서 의미가 퇴색해버린 볼거리... 이런 모습에 눈살을 찌뿌리던 경험이 많았던게 사실이다.

  돋음볕 마을을 그런 '관광지'로 알고 찾았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벽화가 그려져 있다는걸 빼면 여느 작은 농촌 마을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는 곳이기에 특별한 볼거리를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나에게는 훨씬더 정감있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돋음볕, '해돋이 무렵 처음으로 솟아오르는 햇볕'은 결코 강렬하지 않다.
 흐릿한 미명의 아침안개 저편에서 수줍은듯 조심스레 얼굴을 내미는 햇볕, 그 은은한 햇볕이 바로 돋음볕이다.

 돋음볕 마을은 아무것도 없는 마을에 억지로 벽화를 덧칠해서 관광객들을 불러보으려는 '관광지'가 아니다.
 미당을 찾아왔다가 국화꽃 꽃길을 걸어보고, 걸어보다 국화꽃 향기에 취해 이 마을까지 찾아온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는게 바로 벽화가 해야할 일이다.

 벽화를 보기위해 돋음볕을 찾지 말고,
 국화꽃 향기속을 헤메이다 한편의 시가되어 담벼락에 피어난 '국화 한송이'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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