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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는 낮은 인구밀도에 비해 다양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중 하나다. 라오스 정부내 공식 인정된 소수민족은 49개지만 하위민족은 160개 정도로 추정되며, 학자에 따라서는 800여개 이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라오스의 소수민족은 대부분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험준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지역간 교류가 드물었던 환경에 기인한다. 우리가 정글 촬영을 했던 우돔싸이의 남깟 지역은 그 중 크무(까무) 족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까만색 바탕에 빨간 장식으로 된 복식을 주로 하는 이들은 현지에서 농업이나 관광업에 종사하며 부족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크무족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인형


인형의 정체를 찾아 정글로 들어가는 컨셉이었다. '영상앨범 산'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면 절대로 착각이다


크무족과의 만남

방비엥에서 신나게 놀던 두 젊은이가 어떻게 하면 크무족과 만나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PD님은 고민이 깊으셨던 것 같다. 루앙 프라방에서 우리가 푸시산에 올라가 새를 날리는 사이, PD님은 가게에서 작은 인형을 하나 사왔는데 크무족의 전통 복장으로 만든 헝겊 인형이었다. 당초 연출은 우리가 우연히 기념품점에서 이 인형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크무족을 찾아 정글로 들어온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그런 연출의 대사를 담은 장면을 찍기도 했지만 방송에는 나오지 못했다. 대신 정글을 탐험하던 중 우연히 바나나 잎을 수확중인 크무족 보판씨를 만나게 되고, 그를 따라 정글 구경을 하다가 마을로 초대되어 오는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논두렁을 가로질러 크무족 마을로 들어가는 길


드론으로 촬영한 크무족 마을 전경


전통 재료와 양식을 엿볼 수 있는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크무족이 살고있는 마을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 대략 4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습하고 비가 많이오는 동남아지역의 전통 가옥과 마찬가지로 1층을 들어올려 원두막 형식으로 지은 집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생각보다 깨끗한 모습에 당황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남깟 욜라파 리조트는 우돔싸이 정글의 상당수를 토지로 소유할 정도로 거대했다. 애초 리조트를 개발할 당시 이곳에는 이미 크무족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개발로 인해 그들의 삶의 터전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때 리조트 측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내게 된다. 리조트를 개발하는 대신 크무족 마을을 온전히 새로 만들어 그들의 삶을 보전해주고, 대신 농지와 일터를 잃게된 이들을 리조트의 종업원으로 고용한다는 생각이었다. 덕분에 이들은 집과 일자리를 잃지 않아도 되었고 리조트를 찾는 관광객들 역시 가까운 거리에서 크무족 사람들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참 괜찮은 방법이었다.



우릴 마중나온 크무족 주민들의 행렬


방비엥에서 경험했던 바시 의식이 다시 한 번 진행됐다


같은 의식이지만 뭔가 스케일도 더 크고 그랬다


어느새 손목엔 명주실이 주렁주렁


마을 여자들이 광장에 모여 군무를 추기 시작한다


이 역시 손님을 환영하는 의식의 일부란다


마을 남자들은 한쪽에 모여 신명나는 음악을 연주한다


광장에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광장은 더욱 시끌벅적 해진다


빙글빙글 돌며 춤과 노래가 해지도록 계속됐다


마을을 찾은 우리를 위해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 성대한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크무족의 전통 방식대로 조상신을 불러 내 축복을 빌어주는 의식행렬부터 방비엥에서 경험했던 바시 의식, 노래와 춤과 술을 곁들이는 환영식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이번엔 줄다리기 판이 벌어졌다


로프가 아니라 진짜 나무줄기를 가지고 한다


우리도 남성팀에 합세!


젖 먹던 힘까지 써보았지만...


결과는 여성팀의 승리!


기억에 남는 이벤트는 다름아닌 줄다리기였는데 나일론 줄이 아닌 진짜 나무줄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었다. 남자와 여자로 편을 나누어 진행되는 것도 이색적이었는데, 여자가 이겨야지만 그 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럼 남자가 이기면 어떻게 되느냐 반문했더니, 여자가 이길때까지 무조건 재경기를 한다고 했다. 아니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들이 또 있을까?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니 이겨도 좋고 져도 좋은 행복한 경기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의 한국처럼 남녀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을 반성하게 만드는 멋진 모습이었다.



춤주고 노는 사이에 해가 저물고


이제는 다함께 술을 마시는 시간!


한 잔, 두 잔 잘도 넘어간다


항아리에 든 술을 빨대를 꽂아 다 같이 나누어 마시는데


모양새는 조금 우습지만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정말 재미있었다


으허, 주모 한잔 더!


모닥불이 꺼질 때 까지 흥겨운 술자리가 계속됐다



또 한가지 재미있엇던 건 전통 술을 나누어 마시는 의식이었다. 항아리에 가득 담긴 술은 곡식을 발효해서 만드는 술이라고 했는데 맛을 보니 약간 시큼한 산의 맛이 나면서도 막걸리와 비슷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둘러 앉아 하나의 통에 여러 개의 대나무 빨대를 꽂아 나누어 마시는 모습이 사뭇 정다워 보였다.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마시다보니 금새 술이 동났는데, 통 안에는 술지게미가 가라앉아 있어 계속해서 물만 부어주면 밤새도록 마실 수 있다고 했다. 깔깔 웃으며 남녀노소 서로 얼굴을 보며 마주앉아 밤새 술을 마시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크무족이 이토록 낙천적일 수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술에 흥건하게 취해버린 우리 둘 역시 춤을추고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라오스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얼굴 벌겋게 땀 뻘뻘 흘리는 모습은 오히려 편집당해 다행이었을까.



다음날 아침 마을을 다시 찾아 보판씨 집을 구경하기로 했다


단촐하지만 아늑한 내부의 모습. 우릴 초대해준 보판씨는 딸을 하나 둔 가장이다


귀여운 딸이 그린 그림들을 잠시 구경했다


건축가 컨셉으로 열심히 설명해봤으나 내용이 부실해서 편집!



다음날 아침, 보판씨 집 구경

라오스에서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마지막 촬영을 위해 다시 크무족 마을을 찾았다. 내내 우리와 함께 했던 보판씨의 집을 구경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였다.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전통가옥은 바람이 집 전체를 관통하며 잘 통하게 되어있었고, 1층을 높여 비가 많이 와도 습기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자그마한 주방이 있고 곧바로 방이 나오는데 큰 원룸형 구조에 작은 부속실들이 빙 둘러서 여러 개 붙은 구조였다.



사다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주방이 있다


주방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이 물건의 정체는?


정답은 라오스 사람들의 주식인 찹쌀밥을 하기 위한 도구


뚜껑을 덮지 않아도 수증기만으로 금방 밥이 쪄진다


밥을 나누어 먹으며 보판씨 가족과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집구경보다는 전통 방식으로 찹쌀밥을 하는게 이날 촬영의 주제였다. 압력 밥솥 같은것도 없이 삿갓처럼 생긴 나무 발 위에 찹쌀을 올려 불 위에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새 밥이 완성되었다. 그대로 바나나 잎 위에 쏟아놓으면 라오스인의 주식인 찹쌀밥 완성이다. 찰기가 있어 손으로 조물조물 해서 먹으면 참 맛있다. 한국의 찹쌀밥보다는 조금 더 건조하고 밋밋한 맛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었다. 보판씨의 귀여운 딸이 재롱까지 부려줘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촬영을 마쳤다.



촬영 내내 한 몸처럼 움직였던 우리 팀. 운전기사 캄이 떠나기 전 찍은 단체사진이다


극진한 대접으로 우릴 감동시켜준 남깟 욜라빠 직원들


그리고 크무족 친구들의 대장같은 랏싸미


 

작별

물심양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리조트 관계자들과도, 산이며 정글을 함께 뛰어다니며 정들었던 크무족 친구들과도 이제는 작별해야할 시간이 결국 오고 말았다. 그중 우리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크무족 청년 랏싸미의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라오스에 우리 크무족 처럼 소수민족이 살고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줘’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에서 나고자란 나에게 있어서 소수민족인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다 이해하는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번 쯤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볼수 있어서 의미있는 기회였던건 분명하다. 나 또한 그들에게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출연자가 아닌 일반 관광객 신분으로는 쉽게 만나지 못했을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공항으로 가는 길, 므앙싸이 시내에서 짧은 마지막 촬영이 진행됐다


방송에서는 므앙싸이에 처음 도착한 씬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순서


우릴 비엔티안으로 다시 데려다 줄 귀여운 비행기


문이 열리고, 이젠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


어느새 비행기는 정글 위로 유유히 날고 있었다


 

므앙싸이 공항에서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작은 국내선 프롭기가 이륙했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정글은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강하고, 거칠고, 아름다웠다. ()



세계테마기행 라오스편 촬영후기 연재목록

(1) 그들은 어쩌다 라오스에 가게 된걸까?

(2) 패러모터와 핼리캠으로 방비엥의 하늘을 누비다

(3) 블루라군에서 수중동굴까지, 방비엥에서 물 만났다

(4) 루앙프라방 찍고 우돔싸이 들어가던 날

(5) 푸야카산 등반기, 은하수 아래 정상에서의 하룻밤

(6) 계곡을 지나 폭포를 건너, 우돔싸이 정글 탐험기

(7) 크무족과의 짧았던 인연, 그리고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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