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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스 꼴가다스(Casas colgadas), 매달린 집들이라는 뜻이다

 

 다시 11월이다. 살다 보면 지난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자주 잊곤 한다. 올해도 그랬다. 이른 아침 출근길 코 끝 스치는 한기에서야 새삼 겨울이 문턱까지 와 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문득 스페인의 작은 도시 꾸엔까에서 나의 코 끝을 스쳤던 그 때의 바람이 생각났다. 이제는 거의 3년 전 이야기가 되어버린 오래된 여행기다. 

 

 

여행은 떠나기 직전까지가 제일 즐거운 법이다

 

 이야기는 지난 글, '세계일주 여행자 신현재와의 기막힌 동거(http://ramzy.tistory.com/349 )'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마드리드에서의 교환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 전까지 신나게 여행할 일만 남아있던 무렵이었다. 세계일주 중인 후배 신현재와 마드리드 내 집에서 잠시 동거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스페인 여행을 함께하게 되었다. 겨우 한달 남짓한 시간 동안 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까지 욕심을 냈었다.

 

 우리 마음대로 일정을 짜고 내키는 대로 다니면 되는 여행이었다. 다만 아직 마드리드에서 해야할 일들이 남아있는 나의 일정을 고려해 연속된 여행이 아니라 마드리드를 베이스캠프 삼아 서너번의 작은 여행으로 나눠 다녀오기로 했다. 오랜 여행으로 피로가 누적된 현재에게도 베이스캠프를 두고 휴식하며 여행하는 조건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모든 여행의 출발은 아또차(Atocah) 역에서 부터 시작된다

 

 2012년 새해 첫날에 조우한 우리는 마드리드에서 며칠간 휴식하며 여행계획을 세우는데 몰두했다. 사실 말이 계획이지 지도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공부와 즐거운 상상을 하는게 다였지만 말이다. 마침내 첫번째 여행지로 까스띠야 라 만차의 작은 도시, 꾸엔까(Cueca)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1월 10일, 우리는 마드리드의 아또차(Atocha)역에서 발렌시아(Valencia)행 기차에 올랐다.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파란 하늘!

 

 기차는 라 만차(La mancha)의 메마른 고원을 지나 지중해를 향해 달렸다. 마드리드 역시 고원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터라 시내를 조금만 빠져나와도 이내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학기중에 하루짜리 짧은 여행 몇번 외에는 마드리드 생활에 충실했던 나였기에 참 오랜만에 여행다운 여행이었다. 1월 스페인의 하늘은 한국의 가을 하늘처럼 참 맑고 청명했다.

 

 

기차는 꾸엔까(Cuenca) 역에 멈춰섰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한 덕분에 모든 철도와 도로가 만나는 중심점이 된다. 즉, 마드리드에서 출발하면 스페인 전역(더 나아가 이베리아 반도) 어디로든 쉽게 갈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마드리드에 베이스캠프를 둔 우리의 여행계획에 적극 반영되었다.

 

 우리가 타고 온 기차는 중간 도시인 꾸엔까를 거쳐 지중해 연안의 발렌시아가 최종 목적지다. 중간에 다른 곳을 경유하지 않고 마드리드에서부터 발렌시아까지 동쪽으로 향하는 노선이다. 첫번째 조각여행은 이 노선을 따라 꾸엔까를 당일로 여행하고 발렌시아로 가서 하루를 더 묵고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단 하나의 왕복 기차노선을 세 번에 나눠서 타게 되는 셈이다.

 

  

 

 

 

꾸엔까 구시가의 집들은 이렇게 암석 위에 지어졌다

 

 유럽의 여느 도시들 처럼 꾸엔까 기차역 역시 신시가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신시가에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지만 구시가지(Casco antiguo, 까스꼬 안띠구오)까지 기차역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꾸엔까는 인구 5만 정도의 작은 마을이지만 말 그대로 깎아지는 절벽같은 큰 암석지대 위에 마을이 올라탄 모양새를 하고 있어 많은 여행자의 발길을 끄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절벽 위에 세워진 몇 개의 집들을 통틀어 '까사스 꼴가다스(Casas colgadas, 매달린 집들)라고 부르는데 이 도시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다.

 

 파리의 에펠탑을 보기 위해선 에펠탑 앞이 아니라 멀리 세느강변을 찾는게 정답이다. 까사스 꼴가다스 역시 높은 절벽에 매달린 집이다 보니 절벽 위의 구시가 보다는 절벽을 올려다볼 수 있는 먼 조망점을 찾는 편이 좋아보였다. 우리는 론니 플래닛에서 추천하는 조망점인 싼 빠블로 다리(Puente de San Pablo) 향해 방향을 틀었다.

 

 

 

 

겹겹이 성채처럼 늘어선 집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신시가 옆으로 절벽과 함께 늘어선 구시가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연 다른 곳에서 쉽게 볼수 없는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중세에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였으리라.

 

 풍경감상에 잠시 길을 잃어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동안 익힌 짧은 스페인어 실력으로 말을 걸었는데 어찌나 친절히 대답해주시던지 감사하다 못해 죄송할 정도였다. 여행을 하며 그 나라의 언어를 할 수 있다는건 이럴 때 참 기분좋은 일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저기요' 하면서 나에게 한국어로 길을 물어오는 상황이 아닌가. 물어본 길의 방향 뿐 아니라 이 도시의 다른 볼거리와 맛있는 식당까지 모두다 일러주시던 할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구시가로 연결되는 싼 빠블로 다리(Puente de San Pablo)

 

 드디어 싼 빠블로 다리에 도착했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철교였지만 주변 지형이나 풍경이 워낙 특이하다보니 갸냘픈 구조물조차 아름답게 보일 정도였다. 높이가 꽤 높은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곧장 구시가지로 진입할 수 있다.

 

 신시가지에서도 한 참을 산쪽으로 깊숙히 들어왔다. 몇십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절벽으로 위요된 곳이다보니 바람소리만 간혹 들리고 마냥 고요했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꾸엔까의 절경을 조용히 감상하기엔 더 없이 좋은 곳이었다.

 

 

 

까사스 꼴가다스, 바위에 매달린 집들이 보인다

 

 암석위로 3개층 정도의 목조 발코니가 붙어있는 곳이 까사스 꼴까다스의 대표 건물이다. 어디까지가 건물이고 바위인지 구분이 안가는 것이 참 오묘하다. 마치 커다란 바위 표면에서 발코니가 솟아나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무려 16세기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내부에는 현재 고급 레스토랑이 운영중이라고 한다. 최근들어 우리나라도 구 서울역사 등의 근대 건축물에 용도를 부여하여 사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비단 꾸엔까 뿐 아니라 스페인 전역에서는 이처럼 문화재들을 새로운 용도로 바꾸어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잠시 모든걸 잊고 그네타기에 재미가 들렸었다

 

 암석을 뚫어서 만든 작은 문을 지나면 비로소 구시가지에 들어서게 된다. 밖에서 보던 위엄있는 요새의 모습과는 달리 안쪽 구시가의 풍경은 여느 유럽의 성채도시와 마찬가지로 작고, 앙증맞고, 아기자기했다. 길들이 좁고 구불구불해 자동차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걷기에 참 좋은 날씨와 딱 좋은 풍경이다. 그냥 지도도 주머니에 넣어버리고 길을 걷다가, 물도 마셨다, 사람구경고 하고,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고...

 

 

 

 

광장과 함께 마을의 중심을 구성하는 까떼드랄(Catedral)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까떼드랄(Catedral, 대성당)이 있는 중심 광장에 다다르게 되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빼닮은 못습이지만 규모가 작아 확실히 꾸엔까 다운 면모가 있었다. 여러 시대에 걸쳐 보수와 복원이 반복되었고 무데하르 양식도 일부 섞여있지만 까데드랄 중에서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별로 잘난것 없는 성당이라는 건데... 오히려 그런 점이 이 작은 도시의 스케일과 잘 어울리는 요소가 되었다. 더 멋진 까데드랄이 있었더라면 자칫 주변을 둘러보기도 전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행히 이 곳 광장에는 까데드랄 보다 더 멋진 풍경이 주위에 가득했다.

 

 

 

 

 

구시가의 구석구석을 담으며...

 

 구시가의 좁은 골목들은 도시 뒷편에 위치한 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멋진 풍경을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것도 멋지지만 한 번쯤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싶어졌다. 걷는 내내 등 뒤를 비추는 햇살이 얼마나 따뜻하고 좋던지.... 이 좋은 풍경을 털이 덥수룩한 선머슴 둘이서만 즐겨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아...

 

 

 

할 말을 잊게 만든 절벽 아래의 절경

 

 구 시가의 골목이 거의 끝나는 무렵에 작은 절벽이 있어서 조심스레 그 위에 올랐다. 발 아래로 방금 지나온 소소한 풍경들이 한 눈에 펼쳐진다. 때마침 불어오는 귀를 스치는 강한 바람 소리에 마음이 더욱 벅차올랐다.

 

 이 곳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너무 좋아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도 한동안 최고의 여행지로 꾸엔까를 꼽았었다.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는 지인들에게도 꾸엔까는 꼭 가보시라 몇 번씩 추천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말을 듣고 이 곳을 찾았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잊지 못할 멋진 도시곳이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 그냥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절벽에서 내려와 한 참을 다시 걸어서 구시가를 빠져나왔다. 론니플래닛이 추천하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음료와 따빠스(Tapas, 스페인식 안주요리)로 저녁을 해결하고 발렌시아로 향하는 기차에 오를 계획이었다. 그런데 여섯시가 조금 안되어 식당에 도착하니 아직 문도 열지 않은게 아닌가. 저녁식사를 느즈막히 하는 스페인의 문화때문에 보통 레스토랑들은 여덟시 가까이 되어야 저녁식사 첫 주문을 받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작전을 바꿔 마트에 들렀다. 바게뜨 빵과 하몬, 치즈를 사서 기차역 플랫폼에 앉아 여행자 식 보까디죠(Bocadillo,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날이 조금 추워진것을 빼고는 철로 위로 지는 노을을 감상하며 저녁을 먹는 것도 제법 근사한 경험이었다.

 

 

아름다운 꾸엔까의 노을을 뒤로하고...

 

  여유있게 도착한 덕분에 한 시간 정도 기차역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노을지는 하늘이 얼마나 예쁘던지 시간가는줄 모르고 구경했다. 하늘이 어둑어둑 해질 무렵 드디어 발렌시아행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섰다. 발렌시아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적막조차 아름다웠던 꾸엔까에서의 여유도 잠시, 우리는 도시의 어딘가에서 오늘 밤을 보내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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