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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안에는 어젯밤 펑크패치를 붙여보려 안간힘을 쓰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타이어를 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 나에게 주인아주머니는 침대보 더럽힐 생각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었다. 샤워기로 깨끗이 씻어가면서까지 몇 번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 칙- 하는 소리와 함께 번번히 흐물해지는 타이어와 씨름하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아침

 

 

 아침 일찍 상주 시내에 나가 튜브를 교체해올 계획이었기에 눈꼽만 대충 떼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모텔 바로 앞으로 어제 사건의 무대였던 낙단보가 보인다. 하마터면 빗속에서 조난까지 당하는 줄로만 알았었다. 일정까지 바꿔가며 허둥지둥댔지만 그 이유가 고작 펑크라니 조금은 꼴이 우스웠다.

 

상주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아침이 되어보니 이제서야 마을 생김새가 눈에 들어온다. 생각치도 않았던 숙박지가 된 이 곳은 '낙동읍'이었다. 폰으로 지도를 확인해보니 의외로 아주 시골마을은 아닌 모양이었다. 시가지에서 겨우 몇백미터 남겨두고 조난이니 뭐니 했던 우리가 생각할수록 부끄럽다. 하지만 다 잘 해결됐으니 이제는 그저 안주거리일뿐. 허허허...

 

 시내까지 삼사십여분 걸린다고 했는데 버스가 자주 있지 않아 일찍부터 나와 기다려야했다. 자전거 국토종주 중에 시내나가는 버스를 타게 될 줄은 또 몰랐다.

 

 

바퀴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며...

 

 시내에 나가는 목적은 단 하나. 어젯밤 펑크난 튜브를 교체하는 것이다. 어차피 국토종주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곳 낙동읍으로 돌아와야 하므로 모텔에 잠시 자전거를 맡겨두고 바퀴만 들고 나왔다.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어르신들 눈에는 바퀴만 달랑 손에 든게 이상해 보였으려나. 하도 버스가 안와서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빈 속을 달랬다.

 

 

순식간에 새 것으로 교체!

 

 상주에는 처음이지만 바야흐로 스마트폰 시대에 자전거포 하나 찾는 것 쯤은 일도 아니었다. 버스가 시내에 들어자마자 적당히 내렸는데 운 좋게 정류장 건너편으로 삼천리 자전거포가 보인다. 이제 막 가게문을 여신 아저씨께서는 우리가 내민 바퀴를 받으시고는 뚝딱뚝딱 일 분도 채 안되어 튜브를 갈아 버리셨다. 뭐 간단한줄은 알고 있었지만 겨우 이것때문에 하룻밤 발이 묶여버리다니... 장거리 여행에서 준비라는게 이래서 필요한건가 싶었다. 마지막으로 공기압까지 확실히 체크하고 혹시 몰라 예비튜브도 하나 구매했다. 남은 일정 중 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다행히 완주까지 더 이상의 펑크는 없었다.

 

 

버스시간을 빙자해 한 번 더 아침을 먹고

 

 수리는 금방 끝났지만 다시 낙동읍으로 돌아가는 버스까지는 한 시간도 넘게 남아버렸다. 이왕 시내에 나온김에 좀 돌아보려 했지만 상주는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게다가 아직 아침이라 가게들도 꼭꼭 문을 닫고 바람마저 시렵더라. 가지고 온 옷 중에 제일 두꺼운것으로만 껴입었지만 그래도 버스정류장에 서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결국 핑계김에 못다한 아침식사를 김밥천국에서 마저 하기로 했다. 오늘도 자전거를 많이 타야하니 열량보충을 해야한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대며 배불리 잘 먹었다.

 

 

조금 늦었지만 오늘도 출발!

 

 다시 모텔로 돌아와 수리해온 앞바퀴를 끼우고 출발준비를 마쳤다. 빵빵하게 다시 부풀어 오른 바퀴만큼이나 마음가짐도 새롭다. 처음 계획했던 4박5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하루 평균 120km 정도를 타야했었다. 대충 평균속력 15~20km로 환산해보면 오전중에는 최소 서너시간씩 달려야 계산이 맞는다. 해가 진 뒤로는 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다. 하지만 오늘은 출발하기도 전에 오전 나절을 날려버렸다. 그리하여 일정을 대폭 수정해서 하루를 추가해 5박6일이 되었다. 덕분에 오늘 오후에 가야할 거리는 조금 줄었고 대구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게 되었다.

 

 

 

더이상 비는 맞고 싶지 않다... 이번엔 진짜 해가 나겠지?

 

 동남아에 온 것도 아닌데 하루에도 열두번씩 날씨가 오락가락한다. 하도 여러 번 속에서 이제는 신경도 안쓰이지만 눈 앞에 보이는 빛내림과 뭉게구름에 또 한번 속고 만다. 그래도 하늘이 참 예쁘다. 구미보 근처에서는 길마저 좋아서 오히려 지루할 정도였다.

 

 

 

 

자전거로 물 위를 달리는 기분이란!

 

 구미시에 들어가기 직전, 갑작스레 자전거길이 강 위로 이어진다. 국토종주를 하다보면 강 근처에 갑자기 높은 지형이나 험한 지대가 나올때 길이 달라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빈도수로는 내륙쪽으로 우회해서 국도를 경유하거나 마을길을 지나는 일이 많은데 그리 편하지는 않다. 반면 위 경우처럼 과감하게 강 위로 인공 구조물을 건설하고 데크를 깔거나 별도 포장을 해서 자전거만 통행하게 만든 곳도 있다. 주로 우회 구간이 짧거나 경치가 좋아서 특별히 조성한 경우다.

 

 자전거만 겨우 지나갈정로 좁게 건설된 다리기때문에 교각 높이가 낮아서 거의 물위를 달리는 기분이 든다. 땀이 삐질삐질 날 때쯤 한번씩 달리면 기분이 꽤 괜찮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그리 반갑지 않은 도시, 구미

 

 구미 시내로 들어섰다. 산업도시 답게 길가로 큰 트럭들이 쌩쌩 달려 위험한 상황이 여러번 연출되었다. 더 달리다보니 트럭 뿐 아니라 일반 승용차들도 이상하게 운전이 거칠다. 점심을 먹기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도시로 들어 왔건만 공장이나 주차장만 잔뜩 보이고 그 흔한 국밥집 하나 없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밥도 안먹나... 아니면 우리가 길을 잘 몰라서 그런건가. 그렇게 헤메다가 쌩뚱맞게 '이마트'를 찾았다.

 

 

 

 

햄버거도 뭐 나쁘지 않지...

 

 이마트 안에 버거킹이 있길래 와퍼 세트를 시켜 먹었다. 자전거를 밖에다 묶어 놓는 바람에 마음이 불안해서 여유있는 식사는 못했다. 대신 질 좋은 커피를 한잔 후식으로 하는 것으로 점심식사를 갈음했다. 고열량 식사를 한 덕분에 한 동안은 배가 든든했던 기억이 난다. 

 

너는 라이더냐 은행강도냐?!

 

 보너스컷. 밥을 다 먹고 이마트를 나서는 친구 Y의 모습인데 이건 영락없는 '이마트 무장강도'의 차림새다. 사진을 찍고 나서도 둘이 한참을 웃었다. 사진찍는 나 역시 비슷한 옷차림이었을테니 행인들 눈에는 꽤 이상하게 비췄을 터. 햄버거만 먹고 후다닥 나와서 다시 구미 시내를 빠져나갔다.

 

 

 

칠곡보의 저 초승달은 무슬림을 상징하는 것일까 설마?

 

 난폭한 차들에 잔뜩 겁먹었던 구미 시내 이후로는 딱히 흥미로운 구간이 없었다. 목적지인 대구까지도 여유가 있어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간만에 편안한 라이딩을 즐겼다.

 어느덧 칠곡보에 도착했다. 오늘 코스상에서는 마지막 도장 찍는 곳이다. 칠곡보는 역시 예상대로 난해한 디자인으로 되어있었다. 이쯤되어서는 제법 보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무뎌졌던것 같다. 이제는 무관심으로 일관...

 

늦었지만 새재 종주 인증도 받고

 

 구간별 인증 스탬프는 무인 부스에서 찍을 수 있지만 구간 종주 인증을 위해서는 반드시 상주 근무자가 있는 '유인 인증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어제 완주한 새재 자전거길에는 유인 센터가 한 곳도 없는 바람에 칠곡보까지 와서야 종주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알록달록

 

  여유가 생기니 풍경도 눈에 잘 들어오고 한결 라이딩이 편해졌다. 이쯤 되면 어제 일때문에 일정이 하루 늘어나게 된 걸 반가워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발목 근처가 시려서 양말을 치켜올렸더니 괴상한 패션이 되어버렸다.

 

 

 

 

 

대구시내가 별안간 한 눈에 들어왔다

 

 낙동강은 어느새 한강 만큼이나 넓어져 있었다. 길을 달리던 중 멀리 신기루 같이 뭔가가 눈에 확 들어오더라. 알고 보니 대구시 전경이었다. 초등학교 사회시간부터 '대구는 분지다' 귀에 못이박히도록 들었는데 이렇게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건 또 처음이었다. 멀리서 본 대구는 정말이지 산 속에 폭 파묻힌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울촌놈들의 실수, 첫번째

 

 낙동강 자전거길에서 대구방향으로 진입하면 금호강을 앞두고 다사읍이 나온다. 대구 지하철 대실역 근방이다. 시내 깊숙히 들어가면 내일 아침에 또 귀찮아질것 같아 다사읍 시내에서 숙소를 잡아보기로 미리 마음먹었었다. 서울 촌놈 아니랄까봐 큰 실수를 하나 했던게 다사'읍'이라는 지명때문에 여기가 정말 시골의 읍사무소 소재지 정도의 거리일줄 알았다. 고개를 하나 넘어 짠 하고 시가지가 펼쳐지는데 영락없는 일산이나 분당 정도의 신도시였다. 얼마나 놀라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베드타운이라 그런지 허름한 여관같은건 아예 없었다. 아니 숙박업소가 전무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깨끗한 찜질방으로 숙소를 정했다. 

 

막창 먹으러 가는 길, 발걸음도 가벼웁게!

 

 친구 Y는 찜질방에서 자본 적이 없다고 조금 망설였지만 이내 나의 유혹에 넘어갔다. 수안보에서 온천욕 했던 기억을 떠올려주니 또 탕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금새 오케이. 대신 오늘은 맛있는걸 먹기로 했다.

 

 대구에는 전에 내일로 여행을 하며 와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안지랑에서 먹었던 막창이 생각났다. 진짜 대구사람들은 안지랑에서 막창 안 먹는다고 하지만 어차피 객인 몸 무엇인들 맛이 없으랴. 찜질방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안지랑역으로 출발. 대실역에서 부터 생각보다 먼 거리였지만 자전거 여행자의 식탐 앞에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울 촌놈들의 실수, 두번째

 

 전에 들러본 '안지곱창'에서 '곱창한바가지' 메뉴를 시켰다. 한번 더 서울촌놈 실수를 한게 나도 모르게 '참이슬 후레쉬'를 달라고 해버렸다. 정말 아무런 의심없이 그렇게 말해버려서 나 조차 깜짝 놀랬다. 다행히 주인 아저씨는 시크하게 '여긴 참소주 먹어'라며 살얼음 곱게 앉은 참소주를 꺼내주셨다. 부끄러울 새도 없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곱창에 술이 술술 넘어간다. 작년보다 가격이 살짝 올라버린건 아쉬웠지만 그 맛과 푸짐함은 변함없었다. 낙단보에서 펑크가 아니었으면 못왔을 곳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대구의 밤이었다.(계속)

 

주행거리: 86.0km/주행시간 4시간 39분/ 평균속력: 18.4km/h/ 최고속력: 38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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