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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개월간의 나의 마드리드 교환학생 생활은 크게 세 파트로 구분지을 수 있다. 시즌 1은 처음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한 학기를 열심히 다니며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시기, 시즌 2는 학기가 끝나고 세계일주 여행자 신현재와 마드리드에서 한 방에 한 달 넘도록 함께 살았던 시기, 그리고 마지막 시즌은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을 준비하던 시기.

 

 그동안 여행기만 주구장창 써왔으니 오늘은 잠깐 사이드로 빠져서 교환학생 생활의 시즌 2를 가볍게 정리해볼까 한다.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시즌 2는 세계일주 여행자 신현재가 마드리드 내 방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부터 시작된다. 신현재라는 친구에 대한 소개는 지난 포스팅(http://ramzy.tistory.com/341)으로 대신하겠다.

 

 

 

마드리드에 처음 와서 이것저것 신기해하는 신현재군, 독특한 패션센스가 인상깊다

 

 일주일간의 짧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함께 마드리드로 입성했다. 그때가 1월 초였으니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친구는 멕시코 어딘가에서 세계일주를 계속하고 있다. 마드리드 내 방에서 함께 살기로 한건 마드리드를 베이스 캠프 삼아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등 주변 국가를 여행하기 위해서였다. 마드리드가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이라 주변을 여행하기에 지리적으로 편한 것도 있고, 오랜 여행에 몸도 마음도 지친 현재에게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결과적으로는 썩 계획대로 되진 못했지만) 만들기 위한 것도 있었다. 일단 매일 같이 잠자리를 바꿔다니는 여행자에게 있어서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베이스 캠프가 생겼다는 사실 만으로도 상당한 마음의 안정이 있지 않았을까.

 

 나는 나대로 또 미뤄뒀던 스페인 여행을 함께할 여행 메이트가 생겨서 좋고 한국말로 수다떨 수 있는 말동무가 생겼으니 서로 윈-윈 하는 나름 정략적인(?) 만남이었던 셈이다.

 

 

세 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그렇게 둘이 살게 되었다

 

 현재와 한 방에서 함께 살게 되었으니 혼자서 쓰던 내 방 구조도 2인용으로 급하게 개조했다. 벽을 바라보고 있던 책상을 돌려 둘이 앉을 수 있게 만들고 의자도 하나 더 마련했다. 침대는 1인용 작은 사이즈라 남자 둘이 자기는 좀 그렇고, 급한대로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고 현재가 잘 자리를 마련해줬다.

 마드리드에서 내내 혼자 생활하는데 익숙해 있었는데 24시간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게 처음엔 조금 걱정도 되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곧 씻은듯이 사라져버렸다. 다만 남자 둘이 좁은 방안에서 함께 지내다보니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다는걸 제외하면...

 

둘이 살게 되니 신발도 두 개...

 

음식을 해도 두 접시...

 

쌓여가는 술병도 두 배 빠르게...

  

빨래는 세 배쯤?

 

 일단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모든 일거리가 두 배로 늘었다는 점이다. 밥을 해도 두 그릇을 준비해야 하고, 세간살이도, 빨래도, 신발도 모든게 두 배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쌓여가는 술병의 숫자도 두 배다. 갑작스럽게 생활 규모가 두 배가 되어버리니 평화롭게 천천히 흘러가던 일상이 순식간에 정신없게 휙휙 지나가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이건 계산에 없었던건데!?

 

 두 배가 된건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배출하는 쓰레기마저 두 배가 되었으니(실제로는 두 배 이상의 시너지가 있었지만) 방안이 더러워지는건 시간 문제였다.

 

 

이렇게 깔끔하고 정돈되어있던 내 방은...

 

몇 일 만에 이렇게 되고 말았다

 

 비포 앤 애프터를 비교해 보시라. 평소 내 방은 남자방치고 엄청 깨끗하고 깔끔하기로 마드리드에 정평(!)이 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남자 둘의 동거생활이 시작되고 아래 사진처럼 변하는데는 채 며칠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와 함께 마드리드에 머무는 동안엔 방에 있는 시간 보다 여행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가정 살림에 신경을 제대로 못쓴 것도 원인이었다. 지금 보니 저기서 어떻게 살았나 싶기도 한데 당시에는 나름 어지르는걸 즐겼던것 같기도 하다.

 

 

  

 

 

 

 

 

 

현재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특식들!

 

 둘이 함께 살면서 가장 많은 공을 들였던건 한국 요리 만들기. 물론 요리는 내가 하고 현재는 주로 마늘까는 일을 담당했지만 같이 장도보고 메뉴도 정하고 하면서 꽤 재미있었다. 7개월 넘게 여행중인 현재는 한국요리가 매우 그리운 상황이었고 마침 내가 요리를 좀 할 줄 아니 쿵짝이 잘 맞았던 셈이다. 간단하게는 라면부터 스페셜 요리인 연어초밥과 회덮밥 까지. 처음 현재에게 약속했던 것 만큼 많이 해주지 못해서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도 남은 여행을 하는데에 내 요리들이 큰 힘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오랜 고민끝에 확정된 1월 여행 계획표. 허술해 보여도 실속은 그만이다

 

 둘이 같이 한 방을 쓰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건 다름아닌 '여행 계획 짜기'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린 마드리드를 베이스 캠프 삼아 여행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남은 일정을 잘 분배해서 효율적으로 다니는게 중요했다. 여행으로는 잔뼈가 굵은 두 사람이 한데 모였으니 내 방의 풍경은 흡사 여행사 사무실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일정 분배부터 예산 계획, 비행기표 예약까지 모든 일은 내방 책상 위에서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마드리드에서 같이 있는 동안엔 여행 계획을 짜고, 여행을 다녀오고, 다시 돌아와 다음 여행 계획을 짜고... 휴식과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디쯤 있을까나, 이 형이 다 보고있다!

 

 3개월 전 나와 그렇게 마드리드에서 머리를 맞대고 유럽 여행루트를 짜던 현재는 지금 멕시코에서 남미 대륙을 향해 여행을 계속하는 중이다. 비록 생각했던 것 만큼 많이 챙겨주지도, 보태주지도 못한 못난 형이지만 이 글을 통해서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힘든 여행길에 조금이나마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공적인 세계일주를 기원하며 신현재 군에게 이 글을 바친다.

 

 다음 편부터는 다시 여정을 따라 이야기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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