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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퀘테레의 다섯번째 마을 몬테로소에서의 행복했던 만찬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기차에 올랐다. 생각보다 몬테로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탓에 일정이 조금 빠듯해져 버렸다. 다섯 마을 사이를 오가는 기차는 그리 자주있는 편이 아니라 시간표를 잘못 조합했다가는 다섯 마을을 다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다시 우리가 향한 곳은 세번째 마을인 '코르닐리아(Corniglia)'였다.

 



코르닐리아의 기차역은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코르닐리아는 다섯 마을중 유일하게 바다에 직접 면하지 않은 마을이다. 하지만 기차역이 바닷가에 있기 때문에 마을까지는 걸어서 십오분 정도 열심히 언덕을 올라야만 한다. 높은 바위 언덕위에 있는 마을이기때문에 이번 여름 쓰나미 피해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던 마을이기도 하다.

 

구시가지로 올라가는 언덕에는 온통 포도밭이다

 

코르닐리아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포도를 재배하던 지주 코르넬리우스의 어머니 코르넬리아에서 유래했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폼페이 유적에서도 '코르넬리아 와인'이라고 쓰여진 유물이 발굴될 만큼 와인으로 유명한 마을이라고 한다.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을 마주하는 커다란 언덕이야말로 포도를 키우는데에 최적의 조건이었으리라.

 가이드북에 의하면 기차역에서 마을까지 다니는 셔틀버스도 있다고 하는데 우린 포도밭을 따라 걸어가기로 했다. 자동차도 거의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언덕을 올랐다.

 



마을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느낌이 가득하다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을 여행하는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마을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찾아보는 일. 코르닐리아의 개성은 '아기자기함'이다. 마을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지도판 부터 형형색색의 독특한 개성이 물씬 묻어나온다. 1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지만 집들이나 가게들 모두 아기자기한 포인트들로 꾸며진게 인상깊었다.

 



코르닐리아산 와인을 맛보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

 

 바닷가가 아니라 바위 언덕위에 위치했다는 점을 빼고는 맨 처음 들렀던 몬테로소 구시가지와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와인으로 유명한 마을인 만큼 와인을 사거나 맛볼 수 있는 자그마한 샵들도 눈에 띈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으면 산책로부터 걸어보리라!

 

 지난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들은 기차 외에도 산책로를 통해 연결되어있다. 사실 말이 산책로지 가파른 언덕위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라 대부분 한 시간 이상의 코스로 조성되어있었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올레길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것 같다. 시간만 충분했다면(물론 그 당시에는 체력도 고갈된 상태였지만) 한 코스 정도는 꼭 걸어보고 싶었는데 입구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아직 새해맞이 풍경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의 모습

 

 계속해서 코르닐리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관광지로 꽤 유명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기척을 쉽게 찾아보기 힘든 마을이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기념품 파는 가게 하나 없을 정도로 조용한 골목골목. 그래서 오히려 더 편안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곳이었다.

 


 

 다음마을로 가는 기차시간이 다 되어 급하게 마을을 빠져나왔다. 아까 올라올때는 이런 계단이 있는걸 몰랐는데 알고보니 기차역에서 곧바로 마을로 질러들어오는 계단이 있었다. 이 위에서 바라보는 기차역의 풍경이 정말 장관이다. 오른편으로는 지중해를, 왼편으로는 가파른 산을 끼고 시원스레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철로가 마음까지 뻥 뚫어주는 것만 같았다. 사실 기차를 놓칠까 노심초사하던 순간이었는데 사진을 안 찍을래야 안 찍을수가 없어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저 바위뒤로 펼쳐지는 마나롤라의 풍경은 과연 어떨런지...?

 

 가까스로 기차에 다시 오른 우리는 두번째 마을인 '마나롤라(Manarola)로 향했다. 마나롤라는 앞의 두 마을과는 또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는 마을이다. 기차역에서 내려보니 마을은 온데간데 없고 사방으로 기암괴석이 가득한 절벽 뿐이다. 그렇게 둘러보다가 발견한 커다란 바위산에는 마치 바위에 조가비가 달라붙은 것처럼 건물들이 올라타 있었다. 절벽 밑으로 뚫린 터널을 따라 걸어들어가면 비로소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아직 새해맞이 풍경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의 모습

 

 마나롤라는 12세기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계획적으로 커다란 바위 위에 만든 마을이라고 한다. 중세에는 교역을 통해 부를 쌓았던 마을이기도 하다는데 아직도 배를 타고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아보였다. 아기자기한 풍경들도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마나롤라가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알고보니 마나롤라의 매력은 마을 안이 아니라 마을 밖에 있었다. 내리막을 따라 항구 근처까지 나가면 마을 반대편 절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하나 있다. 우린 서둘러 산책로로 향했다.

 





마치 미니어처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마나롤라의 풍경

 

 마을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 문득 뒤를 돌아본 순간, 마을 안에서는 조금도 상상못했던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청명한 바다와 파스텔 톤의 건물이 마음속으로 그리던 유럽의 작은 마을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라는 묘사는 바로 이 장면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아,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자연이 만든 바위와 인간이 만든 집들이 어울려 만드는 풍경은 친퀘테레 다섯 마을중 가히 최고였다.

 


신기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풍경

 

 가지고 갔던 35mm 단렌즈 카메라의 답답한 화각이 아쉬울 정도였다. 마나롤라를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 산책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막상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도 없고 조용하니 고즈넉한 분위기다. 마침 산책로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서 둘이 동영상도 찍고 셀카도 찍고 마음껏 풍경을 즐겼다.

 어느덧 해는 수평선에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친퀘테레 여정의 마지막으로 첫번째 마을인 리오마조레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새해맞이 풍경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의 모습




남자 둘이 걷기에도 썩 나쁘진 않았던 '사랑의 길'

 

 마나롤라에서 첫번째 마을인 '리오마조레(Riomaggiore)'까지는 해안을 따라 걸어갈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있다. 일명 '사랑의 길(Via dell'Amore)'라고 불리는 친퀘테레의 명물이다. 길이 시작되는 입구부터 여기저기 매달린 자물쇠들은 얼마나 많은 연이들이 이 곳을 걸어갔을지를 짐작케 해준다. 계속 안타까운 사실(!)은 이 사랑의 길 역시 남자 둘이서 걸어야 한다는...

 



아직 새해맞이 풍경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의 모습

 

 사랑의 길을 따라 리오마조레까지 걸어가는 동안 해는 뉘엿뉘엿 지중해 아래로 넘어가고 있었다. 주황빛으로 물드는 석양을 바라보며 바닷소리를 벗삼아 산책로를 걸었다. 친퀘테레의 다른 산책로들에 비해 길이도 짧고 30여분이면 걸을 수 있어서 부담없이 걸어볼 수 있는 좋은 코스다. 바닷가로 나 있기 때문에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진 점도 매력적이다.

 




친퀘테레의 집들은 대부분 이런 파스텔 톤이다

 

 마나롤라에서 부터 시작된 사랑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친퀘테레의 첫번째 마을인 리오마조레가 있다. 다섯 마을중에서 가장 최근에 조성된 마을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무려 8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다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가파른 언덕을 따라 지중해를 바라보고 옹기종기 자리한 집들이 대부분이다.

 



날이 맑아서 노을도 참 예쁘더라

 

 라 스페치아로 돌아가는 기차시간이 촉박해서 마을을 여유롭게 둘러보지는 못했다. 대신 항구쪽에 이르렀을때 아름다운 지중해의 해넘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어젯 밤 내내 우리를 괴롭혔던 친퀘테레까지의 힘들었던 여정, 그리고 하루만에 다섯 마을을 돌아보기 위해 요리조리 바쁘게 움직였던 하루 일과를 차분한 마음으로 노을과 함께 정리해본다.

 

짧지만 강렬했던 친퀘테레의 추억을 뒤로하고...

 

 터널 저 편에서 기적소리와 함께 라 스페치아로 향하는 기차가 들어왔다. 친퀘테레와의 짧았던 인연을 뒤로하고 우리는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밀라노를 향해 출발했다. 오늘 저녁은 밀라노에서 편하게 두 발 뻗고 잠을 청할 수 있으리라는 달콤한 상상을 하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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