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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퀘떼레(Cinque terre). 이탈리아어로 '다섯(Cinque)개의 땅(Terre)'이라는 뜻의 친퀘테레는 리오마조레, 마나롤라, 코르닐리아, 베르나차, 몬테로소 이렇게 다섯 마을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이 다섯 마을들은 이탈리아 북서부 해안을 바라보고 가파른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있다. 일반적인 관광지들과 차마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들이지만 유럽 여행자들에게는 의외로 꽤 알려져있는 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도 등록되어있단다. 흔히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럽에서 제일 아름다운 마을'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1, 2위를 다투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

 

 해안가의 조그만 다섯 마을이 이토록 유명해지게 된건 자연적, 지형적인 특성 때문이다. 지중해의 세찬 바람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절벽 위에 위치한 탓에 과거엔 가파른 산길을 따라 도보로만 움직일 수 있었고 결국 다섯 마을들을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지금은 해안을 따라 기차가 다녀 비교적 접근이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일단 찾아가는 과정부터가 녹녹치 않다. 그래서 여행기는 아름다운 마을 사진이 아닌 친퀘떼레까지 찾아가는 힘든 여정부터 시작된다.

 

내 생전 이렇게 복잡하고 귀찮은 환승여행을 밤새 할줄이야...

 

 이탈리아 동부해안의 베네치아(Venezia)에서 서부 해안의 친퀘떼레까지 가는 길은 정말 멀고도 험난했다. 그간 여행하며 겪었던 이동과정 중에서 '귀찮음 난이도'로는 아마 최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단 오전 시간에는 베로나(Verona)에 도착해 관광을 좀 하며 시간을 떼웠고, 본격적인 일정은 그날 밤 베로나 포르타 누오바(Verona Porta Nuova)역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대략 일정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선 베로나에서 밤 9시에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 후에 볼로냐(Bologna)에 내린다. 역에서 두 시간을 버티다가 밤 열두시 사십분에 다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파르마(Parma)에서 내린다. 파르마 역에서 또 두 시간 반을 기다린 뒤에 포르노보(Fornovo)로 가는 버스(이게 문제였다)를 탄다. 버스로 30분 후면 도착하는 포르노보 역에서 다시 라스페치아(La spezia)행 기차를 탄다. 기차로 두 시간 후면 드디어 아침 일곱시 반, 비로소 친퀘테레 다섯 마을로 들어가는 기차를 타게 된다.

 

 

볼로냐 스파게티의 본고장 볼로냐, 하지만 우린 그저 스쳐 지나갈 뿐

 

 일정을 다시 정리해 쓰는 것만으로도 손이 아플 지경이다. 역무원 아저씨께서는 기차표와 일정표를 프린트 해 주시며 우리에게 'Good luck'이라고 한마디 건네셨다. 말씀은 너무 감사하지만 과연 이 험난한 여정을 잘 버틸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겨우 하룻밤의 여정이라고는 하지만 환승만 무려 네 번, 게다가 바로바로 환승하는 것도 아니고 역마다 두세시간씩 텀이 있어서 꼼짝없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게 될 운명이었다.

 

햄버거 세 개는 충분했지만 마실게 없어 식수난(!)이 났던 기억이...

 

 잠을 길게 푹 잘 수 없기 때문에 중간중간 배가 고파지는 것도 미리 생각해야 한다. 인적 없는 깊은 새벽에 음식을 살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우리들이 선택한 야식은 맥도날드 1유로짜리 햄버거였다. 한 사람당 세 개씩(원래는 더 살 계획이었지만 그 돈마저도 아끼기로 했다) 준비하고 스프라이트 한 병도 챙겼다. 밤 열두시가막 넘어가고 첫 번째 햄버거 봉지를 뜯을때 까지만 해도 나름 버틸만 했던것 같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사진을 찍어두는 직업병(?)이란!

 

 마지막 햄버거는 포르노보로 가는 버스 안에서 먹었다. 그땐 이미 새벽 다섯시가 넘은 시각. 1월 달 북부 이탈리아의 미칠듯한 추위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서 노숙을 하며 버스시간을 기다린 시간 덕분에 미각은 이미 상실한 시점이었던걸로 기억된다. 햄버거가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 지도 모른채 그냥 '살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입에 쑤셔넣었다.

 

새벽 다섯시의 버스 안에서 우린 완전히 정신을 잃고 잠들었다

 

 생각해보면 하룻밤의 여정에서 가장 힘들었던건 중간에 갈아탄 버스였다. 유럽은 기차 여행의 천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원칙적으로는 친퀘떼레까지 기차만으로도 환승해서 갈 수 있지만 하필이면 이때 선로 일부구간이 운행 중지된 상황. 파르마(Parma)에서 포르노보(Fornovo)까지는 열차 운행이 일시 중단된 상태였고 대체 셔틀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마저도 없었으면 꼼짝없이 기차역에서 덜덜 떨며 아침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세계일주 여행자도 무릎꿇게 만드는 환승 일정!

 

 세계일주를 하며 이미 여행에 잔뼈가 굵어진 현재에게도 이번 여정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그래도 잠이 많은 녀석인데 차가운 철제 의자에 억지로 몸을 뉘여 자던 모습은 너무 안쓰러웠다. 물론 난 저 사진을 찍고서 의자 옆 맨 바닥에 그냥 쓰러져 버렸다. 입 돌아가지 않았던게 천만 다행이다.

 


고생 끝에 도착한 라 스페치아, 밝아오는 아침 하늘이 유난히 예뻤다

 

 아침 일곱시 반. 어찌되었든 그리하여 우린 무사히 라 스페치아(La spezia)역에 도착했다. 추운 밤, 힘든 여정을 함께한 서로에게 감격에 겨운 박수를 보내며 우린 그렇게 친퀘떼레에 가까워져 있었다.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은 그 규모가 너무 작아서 이곳 라 스페치아에서 부터 따로 기차표를 끊어 돌아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자동차로 이동할 수 없는 가파른 절벽 지형이라 기차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다섯 마을들은 기차로 5분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마치 우리나라 제주도의 올레길처럼 마을들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쓰여오던 산책로, 등산로가 있어서 트래킹 매니아들에게는 인기가 꽤 좋다고 한다. 하지만 우린 이미 트래킹보다 더 힘든 밤을 보내고 이곳에 도착했기에... 순순히 기차표를 끊어서 마을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기차안이 갑자기 푸르게 물드는 이때의 감동이란! 피곤이 싹 사라지는 순간

 

 친퀘떼레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시원스런 지중해를 옆에 끼고 달리는 열차안에는 어느새 푸른 빛으로 가득하다. 사실 간밤에 힘든 여정을 견디며 '생각했던 것 보다 친퀘떼레가 별로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스런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차가 달리기 시작하고 창 밖으로 지중해가 한가득 들어온 바로 이 순간, 그런 걱정은 어느새 씻은듯 사라져 버렸다. 아, 사진으로 채 담을 수 없었던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친퀘테레 여행의 시작은 다섯번째 마을인 몬테로소에서 부터 시작됐다

 

 다섯 마을을 지나다니는 기차는 딱 한 노선 뿐이다. 라 스페치아에서 가장 가까운 리오마조레 부터 제일 멀리있는 몬테로소까지. 기차 시간표를 잘 조합하면 꼭 순서대로 다닐 필요 없이 마음대로 마을 사이를 돌아다닐 수 있다. 다섯 마을을 순서대로 지나는 기차 라인이 있으니 찾아가는 순서를 내맘대로 정할 수 있는건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도 뭔가 마냥 즐거웠다. 어디부터 가볼까, 그 다음엔 어디로 옮겨갈까 하는 행복한 고민이 있달까.

 우리는 제일 먼저 라 스페치아에서 가장 멀리있는 마을인 몬테로소(Monterosso) 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사실은 기차 옆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너무 멋져서 다른 네 마을을 지나는 동안 미처 내리질 못하고 몬테로소에 도착해버렸다.

 

 


 

 

날씨가 좋아 더욱 상쾌했던 몬테로소의 해변

 

 친퀘떼레의 기차역들은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조그만 간이역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일단 몬테로소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닷가부터 찾아갔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굽이굽이 병풍처럼 이어지는 절벽, 그리고 그 사이사이 조그맣게 자리잡은 마을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몬테로소는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들 중에서 가장 크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걸어서 이십분이면 다 돌아볼 정도로 앙증맞은 마을이다.

 

 


 

  

이렇게 낭만적인 해변을 남자 둘이 오게 되다니! 분하다!

 

 지중해 위로 솔솔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마냥 좋았다. 헌데 남자 둘이서 청승맞게 바다를 보고 서있자니 옛 추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여행메이트 현재와는 유난히 여행하면서 바다를 같이 간 일이 많다. 한국에서 무작정 1박2일로 인천 앞바다에 놀러갔던 일 부터 아프리카 잔지바르에서 지중해를, 포르투갈 로까곶에서는 대서양을, 그리고 이곳 이탈리아에서는 지중해를. 세상에 온갖 좋은 바다들은 다 우리 둘이서 다닌셈이다. 이제는 신혼여행처럼 좀 달콤한 여행 메이트와 이런 바다를 보러다녀야 하지 않겠냐며 한참을 껄껄거리며 웃었다.

 

 

지난 여름의 아픈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몬테로소의 신시가지는 생각보다 그리 아름답지 않다. 특히나 바닷가에 수북히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가 눈에 띄었다. 사실 이 쓰레기들은 지난 여름 쓰나미가 몰려와 마을을 덮친 흔적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중해를 끼고 바다에 인접해있는 다섯 마을들은 지난 여름에 엄청난 수해를 입었다고 한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 대부분 복구가 되었지만 다섯 마을중 네 번째 마을인 베르나차는 아직도 관광객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었다. 얼른 아픈 상처가 아물었으면...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는 사진속의 자그마한 터널로 연결되어있다. 어마어마한 절벽 아래로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한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있는게 인상적이다. 인도가 따로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옆으로 지나가는 차소리가 크게 울려서 조마조마하다.

 



 

 

군데군데 보이는 바리케이트 옆에선 수해복구 공사가 아직 한창이었다

 

 역시 신시가지보다는 구시가지가 훨씬 정감가도 예뻤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다섯 마을들이지만 서로 다른 풍경을 하고 있는게 친퀘테레의 매력. 몬테로소는 다섯 마을중에서 그나마 가장 평범한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스케일의 골목이라던지 언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앉은 집들이 나름 볼만했다. 항구에서 바라본 구시가지의 모양은 얼핏 울릉도 저동항을 쏙 빼닮은 것 같기도 하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늘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몬테로소를 가장 아름답게 즐기는 방법은 구시가지 절벽위에 있는 세레 요한 성당(San Ciovanni Battista)에 오르는 것. 신시가지에서 들어올때 지나온 터널 위로 절벽을 따라 산책로를 오르다보면 자그마한 성당이 보인다. 이 곳에서 왼쪽으로는 신시가지, 오른쪽으로는 구시가지의 풍경을 한 눈에 담아볼 수 있다. 원체 높은 곳을 좋아하는 편이라 별 생각없이 올라갔었는데 풍경이 너무 좋아 한참을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보면 볼수록 울릉도를 닮았다

 

 보면 볼수록 친퀘테레는 울릉도랑 참 닮았다. 울릉도 독도 전망대에 오르면 눈 아래로 펼쳐지는 도동항의 풍경과 쉽게 구분하기 힘들 정도. 다음 편에서 등장하는 '사랑의 길'은 울릉도나 제주도의 해안 산책로와도 또 비슷하다. 어쨌거나 결론은 몬테로소에서는 꼭 높은 곳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 보시라는 것.

 

 절벽을 조금 올랐다고 금새 배가 고파져버렸다.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은 규모도 작은데다 인구도 적은 편이라 마땅히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마침 신시가지에서 봐둔 레스토랑이 하나 있어서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친퀘테레의 음식은 어떤 맛일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오늘의 점심은 지난밤 기차에서 새우잠을 자며 고생한 현재를 위해 특별히 내가 쏘기로 했다. 1유로짜리 맥도날드 햄버거만 먹어가며 여행하는건 너무 우울하니까!

 

 이탈리아도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메뉴' 개념이 있어서 그걸로 2인분을 시켰다. 작은 시골마을의 레스토랑이니 가격 대비 맛은 조금 관대하게 즐기고 넘어가기로 했다. 친퀘테레라는 멋진 마을에서 식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를테니 말이다.

 


그리 특별할 건 없지만 간밤에 고생한 우리 둘에겐 그야말로 진수성찬!

 

 메뉴판이 이탈리아어로 되어있어서 한참을 헤멘 끝에 주문을 했다. 첫번째 요리로는 라자냐와 바질페스토 파스타, 두번째 접시로는 모짜렐라 치즈 샐러드와 각종 생선 절임 요리가 나왔다. 사실 해산물로 된 요리를 먹고싶어서 '생선'이 보여 얼른 시킨 요리였는데 그냥 생선이 아닌 '절인 생선'이 나와서 살짝 실망했다. 뭐 어쨌거나 그럭저럭 맛이 꽤 괜찮았기에 충분히 괜찮은 식사였다. 사실 요리보다 더 우릴 만족시켜 줬던건...

 

이 한잔의 와인 만으로도 너무나 멋진 만찬이었다

 

 이렇게 눈앞으로 펼쳐지는 푸르른 지중해를 벗삼아 점심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 몇 년 전부터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친퀘테레에서 그렇게 낭만적인(남자 둘이라 썩 로맨틱 하지는 않지만) 식사와 와인 한 잔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냈다. 회 한접시를 먹더라도 노량진 수산시장보다는 주문진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먹는게 맛있는 것처럼 친퀘테레에서는 꼭 지중해를 바라보며 만찬을 즐겨보시길!(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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